2021.12.06 (월)

  • 맑음동두천 -0.9℃
  • 맑음강릉 5.8℃
  • 맑음서울 2.9℃
  • 맑음대전 1.1℃
  • 구름조금대구 2.4℃
  • 맑음울산 5.3℃
  • 맑음광주 4.9℃
  • 맑음부산 7.8℃
  • 맑음고창 0.2℃
  • 구름조금제주 7.7℃
  • 맑음강화 -1.4℃
  • 맑음보은 -2.0℃
  • 맑음금산 -1.3℃
  • 흐림강진군 1.6℃
  • 맑음경주시 1.6℃
  • 구름많음거제 6.3℃
기상청 제공

[학보사 고인물 비망록 ①] 너가 학보사 힘들다 그랬지만

URL복사

학보사 3년차, 곧 4년차 고인물의 학보 아카이빙 프로젝트

 

왜 학보사 기자가 됐을까? 공들인 만큼 대가가 확실하다거나, 대학언론에 임했다는 이유로 대학 졸업 후 탄탄대로를 걷는다는 보장은 없는데 말이다. 배부대에 처량하게 남은 지난 호 뭉탱이를 바라보며 과연 독자들이 존재하긴 한 건지도 의문일 때가 많다. 우리들의 텍스트가 공허한 외침은 아닐지 걱정이 태산이다. 도대체 왜 우리는 학보사 기자를 했을까.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기자 일을 제대로 할수록, 그래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은 있었다. 대학사회가 나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라며, 기사를 써 내려 갔다. 아마추어긴 하지만, 명색이 기자인데, 하는 마음에 기성 언론 기자 뺨이라도 쳐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꽤나 학보에 진심인 편.

 

인턴기자 한 학기, 정기자 한 학기를 보내고는 부장 딱지를 달았다. 어쩌다 데스크가 됐다. 막막했다. 내 기사 쓰기도 바빠 죽겠는데, 다른 기자 피드백까지 해야 한다니. 처음에는 부장직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헤맸다. 평기자와는 다르게, 데스크이므로 기획 회의에선 나름대로 카리스마도 겸비해야 했다(했는진 모르겠지만).

 

부장 한 학기를 마칠 때쯤, 차기 편집국장으로 내정됐다. 초고속 승진. 필자가 국장 깜이 되냐는 고민을 잠깐 했다. 결국, 좌우간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수락했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학보사 특성상 체계적인 인수인계는 사치다. 그러다 보니 무슨 결정을 내릴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하… 이게 맞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라며 한탄했던 신입 편집국장은, 어느새 일 처리에 능숙한 국장이 됐다. 그러곤 1년이 훌쩍 갔다. 이만큼이면 많이 했다는 생각에 자리를 물러났다. 차마 애증의 학보를 떠날 수 없어 취재에만 전념하는 선임기자로 전직했긴 했다만…

 

 

편집국장으로서 완벽했냐는 질문엔, 고민 없이 ‘예’라고 답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발버둥 치는 시간이었다. 월 지면발행 사이클(기획 회의▷취재▷기사작성▷데스크 피드백▷조판▷발행)을 돌 때마다 필자의 <동아대학보>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대학언론 존재 이유를 고민하며, 사각(死角)에 있는 구성원을 생각했다.

 

80년대 무렵 <동아대학보> 지면에 실린 본지 기자 모집 광고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고생 한번 안해 보시렵니까?’라며 ‘그만큼 어려운 난관과 시련을 잘 극복한 사람만이 훌륭한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시각에는 ‘노오오력’이라는 폄하의 말로 치환할 수 있겠다만, 학보사를 하면서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꼈다. 필자의 인생을 ‘학보사 이전’과 ‘학보사 이후’로 구분지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학보사 고인물 비망록> 연속기획을 시작한다. 필자의 시행착오가 휘발되지 않기 위해서. 2년간 겪은 학보사 생활로 하여금 대학언론을 새롭게 시작하는 자, 취재에 치여 사는 대학 기자, 그리고 처음 데스크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꽤 시원찮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이 글이 여러분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 아카이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우리가 왜 대학언론을 하는지 같이 논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편집국장을 그만둘 당시 소회를 밝히며 프롤로그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할 수 있길. 냉혹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기를.

 

새벽을 괴로움으로 가득히 채웠어도 나를 항상 깨어있게 했다. 앞으로 더 나아가게끔 도왔다. 이젠 이 생활을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마음 같으면 기자증을 더 차고 다니고 싶다. 그러나 어쩌겠나. 살면서 무언가를 내려놔야 하는 게 이치라는걸.

 

앞으로도 이 일과 비슷한 걸 하며 살아가고 싶다. 애증의 일을. 다가올 그 일을 사랑할 준비가 됐다.

 

박주현 기자 (동아대학보 선임기자)

프로필 사진
박주현 기자

취재에 성역이란 없습니다. 발로 뛰는 기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