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3 (월)

대학알리

사람

[인터뷰] 한 사람의 일생을 진실하게 담아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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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춘언니" 이수정 감독

 

“재춘언니”는 보편적인 노동 영화와 다르게 자극적인 장면 없이 각자만의 방법으로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조명하고 있다. 인물들 간의 대화에 비중을 두고 있으며, 노동 운동보다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수정 감독은 관객이 투쟁 현장에 대해 좀 더 쉽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에 즐거운 방식으로 안내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시위보다는 문화, 예술 행위의 장면에, 시위 자체보다는 주인공에게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였다. 

 

이수정 감독은 영웅적이지 않더라도 방황 속에서 크나큰 노력을 다한 모습을 담고 싶었다며 임재춘 님의 캐스팅 계기를 내세웠다. 개개인의 정서와 마음이 느껴지는 진실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며 “재춘언니”의 제작 의도를 설명했다. 그녀는 임재춘 님의 이야기가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사회적인 메시지를 계속해서 세상에 던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영화를 통해서 노동인권, 윤리의식뿐만 아니라 해고노동자의 삶을 집중해서 살펴보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Q. 부당 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11년 한진중공업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을 응원하러 가는 희망버스를 탄 적이 있다. 그때,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됐다. 특히 임재춘 님은 투쟁 기간 중 변화하는 모습이 가장 뚜렷해서 주인공으로 삼게 됐다. 

 

Q.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여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혹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다. 

 

처음에는 농성천막에서 지내는 사람들 모두를 등장시켜서 영화를 구성하려 했다. 누구 하나 빠트리면 서운해 할 것 같기도 했고 저마다의 사연이 다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관객도 고려했을 때, 매력적인 한 사람을 내세워서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파고들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이 영화 속으로 들어와 이들이 거쳐 온 시간을 같이 느끼고 감응했으면 싶었다.

 

Q. 투쟁 기간은 흑백으로, 투쟁 기간이 끝나고 나서는 컬러로 영화가 전개된다. 흑백과 컬러로 색감을 대조하여 표현한 이유가 궁금하다.

 

임재춘 님을 중심으로 투쟁 13년을 스토리로 만들다 보니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가 생각났다. 동시에 경제 대공황 시기, 집 없이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겹쳐지기도 했다. 그래서 무성영화처럼 흑백으로 색을 지우고 주인공의 말이나 글을 블랙 화면에 텍스트로 넣는 방식으로 편집했다. ‘왜 흑백인가?’ 스스로 질문해보건대, 13년 동안 가족을 떠나 살아야 했고 해고 노동자로서 사회적 존재가 희미해지는 시간 일 수 있어서 그것이 흑백영화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 임재춘 님께서 자기 노동으로 밥벌이를 할 때는 꿈에서 현실로 돌아왔다는 변화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컬러를 선택했다.   
 

 

Q. 인상 깊었던 임재춘 님의 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말씀 부탁드린다. 

 

임재춘 님의 농성 일기 중에 ‘나에게 돈이란’이라는 글이 있다. 그 일부를 전작 <시 읽는 시간>에서 임재춘 님의 낭독으로 쓰기도 했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해고는 살인이다. 특히나 장기 해고 노동자에게는 더욱 모진 살인이다. 딸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 가며 학교를 졸업했다. 대출금도 갚아야 하는데.... 한 남자가 가정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 모두 돈이 한 일이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공기, 물, 나라, 달과 태양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걸 살 수 있고,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그 돈이 나에게 왕창 생긴다면 몇 달 동안 술 마시고, 자유를 누리고 싶다. 나라를 사고,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차별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돈을 던지고 싶다. 돈이 웬수다.”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돈은 화두이다. 그는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다른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해고 노동자가 되어 돈벌이를 못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적 자리가 박탈당했다고 느끼자, 자본 만능의 시대 전지전능한 신이 된 돈에 대해 절망하고 있다. 그다음, 임재춘 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돈이 왕창 생기면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자유를 누리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그것이 이루어지고 나면 돈을 던져 버리고 싶다고 했다.

 

Q.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엇인가.

 

최종으로 편집된 버전은 몰입되고 재밌었던 장면들을 중심으로 구성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유일하게 촬영하지 않은 2009년 아카이브 장면이 있다. 대전 콜텍 공장 마당으로 들어가는 드라이브샷(차 안에서 찍은 장면)부터 시작되는 시퀀스이다. 갑자기 폐업과 정리해고를 당한 기타 노동자들이 드럼통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웅성웅성 서서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장면인데, 임재춘 님의 10여 년 전 모습도 나온다. 그 무렵 문 닫은 공장에는 여전히 기타를 만드는 기계들과 해외로 수출하는 기타 포장 박스가 쌓여있었다. 유난히 많은 주름관들이 늘어져 있는 기타 공장 내부를 카메라가 훑는데, 임재춘 님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그 기타들을 설명한다. 자기 손을 거쳐 간 상품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후 장면에서는 2009년 1월 달력을 배경으로 이인근 지회장이 앳된 얼굴로 “올해는 꼭 승리하는 해가 됩시다. 투쟁!”이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나온다. 투쟁 초기, 정리해고무효 소송에 대한 기대로 조합원들의 단결된 모습이 보이지만 그때만 해도 이렇게 길어질 줄 아무도 몰랐을 테고, 지금 거꾸로 과거의 모습을 바라볼 때 전유진 음악 감독의 배경음악 ‘Promising Possibility'와 함께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져서 볼 때마다 울컥하는 시퀀스이다.

 

 

Q. 임재춘 님께서 긴 시간 동안 시위를 벌인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임재춘 님께서 긴 시간 농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알게 된 여러 친구들과의 우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딸들이 그만두고 내려오라고 할 때도 그러지 못했던 것은 동료들과 함께 농성을 끝마침 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라는 인식 때문이지 않았을까. 공장에서 일할 때는 알지 못했던 사회, 국가, 노동현실에 대한 깨달음 또한 반성하게 되면서 자식 세대에게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 세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이 아닐까. 

 

Q. 임재춘 님께서 도로에서 엎드리면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며 ‘간절함’이 크게 전해졌다. 시위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하다.

 

추운 겨울날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농성을 1년 넘게 하고 있었던 파인텍 해고노동자들에게 연대하는 오체투지 행진이었다. 꼭 사업장 문제만을 갖고 싸우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서로 서로 연대하는 게 필요했기에 임재춘 님 역시 여기에 함께 한 것이다. 노동자의 투쟁은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고공에 오르고 땅바닥을 기어야만” 사람들이 쳐다봐준다는 임재춘 님의 말이 적확하다.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세상에서 노동자들이 하늘 감옥에 오르고 차들이 다니는 길을 오체투지를 하며 기어가는 방식의 시위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장면을 보면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졌을 때, 그들을 외면하고 엎드려 있는 사람들을 넘어가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나온다. 마음이 복잡해질 수 있는 장면이다. 장애인 출근길 이동권 투쟁도 같은 맥락이다. 잠깐 불편을 초래한다고 그것을 ‘비문명적 시위 방식’이라고 욕해야 하나. 이 야만적인 사회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 질문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영화 속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인상 깊었던 임재춘 님의 모습이 있다면.

 

콜밴(콜트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에서 까혼(드럼의 일종인 리듬악기)을 맡게 된 임재춘 님께서 아주 쉬운 박자를 맞추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안 해보던 것을 하다 보면 누구나 힘이 들 텐데 30년 동안 기타만 만들어왔던 임재춘 님께서는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밴드에서 까혼을 연주하고, 연극을 하고, 농성 일기를 쓰고 했던 일들을 어떻게든 노력해서 해낸 임재춘 님께 박수를 보낸다. 그는 자기에게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하려고 애썼기에 존재의 변화를 이루었다.

 

 

 

Q. 위계질서, 차별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을 깨기 위해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에 관련하여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다른 사람을 대한다면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로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타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자기 돌봄, 자기 배려가 된다. 

 

Q. 다음 차기작은 무엇인가.

 

2020년부터 촬영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2022년에 완성하고자 하는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 그동안 약 10년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주제로 다큐 작업을 해온 셈인데, 이번에는 ‘풀’이라는 제목으로 식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비인간에게 관심이 많이 생겨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재춘언니>는 단지 투쟁하는 노동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왜 그런지는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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