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4 (월)

대학알리

미디어 비평

불신의 세상 속 변치 않는 마음

영화 <가려진 시간>

 

영화 <가려진 시간>속에는 의심에 익숙한 시선과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는 시선이 충돌되어 나타난다. 몸만 커서 어른이 되어 돌아온 성민과 그를 믿어주는 단 한 명의 소녀 수린의 관계를 세상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른들은 그들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여기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친구’라고 여기고 있다. 비록 그들만의 세상일지라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정과 신의를 꿋꿋이 지켜내었기에 그 모습이 빛나 보였다. 세상이 냉정하다고 한들 따뜻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마지막까지 서로를 찾는 두 사람의 눈동자를 보며 그들의 시선으로 두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고난 속에서도 성민과 수린이 서로의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온전히 사랑의 감정만으로 그 관계를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성민은 고아원에서 자랐고, 수린은 엄마를 잃고 아빠와 단둘이 살았기에 두 사람 모두 외로움이라는 결핍이 마음속에 존재했다. 비슷한 결핍을 가지고 있기에 비로소 공감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성민과 수린은 서로를 좋아했지만 사랑의 감정보다도 서로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더욱 컸다. 그렇기에 서로는 서로를 버팀목으로 인식했고, ‘서로가 없으면 안 될 존재’가 된 것이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울 때, 성민은 수린에게 다가와 주었고, 몸만 커서 어른이 되어 돌아온 성민에게 수린이 다가와 주었다. 각자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서로를 위로해 주는 모습을 보며 결코 무너지지 않을 믿음에 계속해서 눈길이 갔다.

 

사람인(人)이라는 한자는 두 사람이 기대고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 성민과 수린을 볼 때면, 사람인(人)이라는 한자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돈다. 비로소 서로가 있어야 치유될 수 있는 관계이기에 세상에 억압당할지언정 관계가 빛나 보이는 것이다. 한자의 형상이 언제까지나 불변하는 것처럼, 비록 만날 수 없다고 해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불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른들의 의심은 계속해서 커져가지만, 아이들의 믿음은 변치 않기에 두 사람의 믿음을 믿고 싶었다. 이해가 어려울지라도 믿음만큼은 흔들림이 없었으니까. 사람인(人)의 문양처럼 두 사람의 관계 또한 하나의 형상으로 굳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이 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다. 

 

 

“시간 속에 갇혀 몸만 커서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라는 명제만 본다면 믿을 수 없는 사실로 인식된다. 하지만 명제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그 속을 잠시라도 들여다본다면 이해할 여지가 생겨난다. 그렇기에 ‘왜?’라는 물음이 중요하다. 왜 그러한 말을 했으며,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파악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문제를 문제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사연을 이해한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잡아보면 어떨까. 우리의 사고는 어떠한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에, 머리로 이해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수린은 벼랑 끝에 떨어지려는 성민을 구하기 위해 두 팔을 벌리며 그를 보호하려 한다. 그리고는 간곡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한 번만 제 말 좀 들어주세요.”라고. 수린의 말을 듣고 ‘한 번쯤은 귀를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세상이 냉정할지언정, 사람은 마음이라는 존재를 품고 있으니까. 

 

어른이 되어가면서 많은 사회경험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심과 순수함을 잃어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이들은 많은 사회경험은 없지만 순수한 마음과 깨끗한 양심을 간직하고 있다. 성장할수록 겪는 것들이 많으니, 의심하게 되고, 계산하게 되고, 자연스레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그때의 순수함을 상기시키며 세상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냉철하고 이성적인 시선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선을 가지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가려진 시간>의 주인공 모두가 어린아이들인 이유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시간이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말을 빌려, 세상의 시선보다도 아이들의 세계에 집중했으면 한다.

 

 

영화의 초반부까지 <가려진 시간>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성민이가 겪은 고통의 시간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지막 장면, 수린과 성민은 결국 배 위에서 다시 재회한다. 두 사람의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간이 멈췄으면 싶었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의 만남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제목 속에 깃들어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재회하는 두 사람의 눈동자는 슬퍼 보였지만 슬픔 속에는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이 담겨있다. 마치 바다 표면에 비치는 윤슬처럼, 두 사람의 모습이 아련하고도 아름다웠다. 비록 둘만의 시간, 둘만의 추억, 둘만의 사랑일지라도 수많은 의심 속에서 서로의 믿음은 변치 않았기에 그 모습이 더 빛나 보였다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두 사람을 범죄자와 피해자로 인식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우정을 결코 져버리는 법이 없다. 세상은 둘의 관계를 범죄라고 단정 지으며 사실로 만들어버리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변치 않는 진실이다. 영화를 보기 전, 의심과 믿음, 두 시선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영화를 본 후 믿음의 편에 서고 싶어졌다. 진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짓이 없으므로 그 진심을 언제까지나 마음에 되새기고 싶다.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보다 가장 중요한 것도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진실은 가려졌을지라도 변함이 없으므로 <가려진 시간>을 세상에 억압당한 고통보다도 두 사람의 아련한 일기장으로 인식하고 싶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