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0 (수)

대학알리

미디어 비평

‘말 따로, 마음 따로’ 한 소년의 회색빛 소통법

영화 <파수꾼>

 

글러브에 안착하는 야구공처럼 캐치볼을 하고 있는 세 친구의 관계는 끈끈해 보인다. 이렇듯 기태, 동윤, 희준은 우정을 다지며 추억을 쌓아나간다. 하지만 괜한 자존심에, 마음은 그게 아니지만 자꾸만 엇나가는 행동에 좋았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하고 한 친구는 죽음을, 한 친구는 전학을, 한 친구는 자퇴를 하며 추억은 비극으로 전환된다. 기태의 죽음의 이유를 알기 위해 아버지가 친구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이는 추리소설의 전개 방식과 비슷해 보인다. 죽음으로 영화가 시작돼 죽음의 이면을 추리하는 서사 방식은 유명한 고전영화 <시민 케인>을 떠오르게 한다. 섬세한 심리묘사,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죽음 뒤 숨겨진 이면을 나타낸 영화 <파수꾼>은 2011년에 개봉된 윤성현 감독의 독립영화 데뷔작이다.


윤성현 감독은 <아이들>, <여행극>, <바나나쉐이크>까지 그동안 남성 위주의 관계에 대한 서사를 얘기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렇기에 <파수꾼>은 2008년부터 찍혀져 온 단편영화의 연장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약 3편의 영화를 함께한 변봉석 촬영감독은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방식으로 진행시켜 현실감과 사실감을 생동감 있게 나타내주었다. 끊이지 않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대사와 배경, 미술, 편집을 최소화한 그의 연출은 리얼리티라는 단어가 확 와닿을 정도로 우리의 삶의 단면을 떠오르게 한다.
 
감독은 “내가 보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얘기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자기 안에 잠재돼있는 트라우마와 상처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영화에 진정성과 진심이 담겨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만들어 나갔고, 연기가 중요하다 보니 배우들과 수많은 인터뷰 작업을 거쳐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마치 눈앞에서 보듯 생생한 표정과 내 옆에서 듣는 듯한 대사 한마디가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으로 만들었다고 느끼게 하지만, 윤성현 감독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닌 살아오면서 느꼈던 외로움, 죄의식 같은 파편적인 감정들을 모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기 전, 여자들은 미묘하고 사소한 것 하나만으로도 쉽게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남자들은 만남과 이별이 단순하며 관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파수꾼’은 남녀에 관한 선입견을 뒤집어 놓았고, 소년들 간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추억과 상처들을 되짚어 보게 하였다. 

 

 

소년들의 만남과 이별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큰 테마로 보인다. 세 소년의 이별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보자면 기태는 동윤과 희준에게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너한테 사과 받고 싶지도 않고”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후 기태는 어느샌가 현실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기태는 왜 두 친구에게 이별을 선고받았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의견을 얘기해 보자면 약해 보이고 싶지 않으려는 자존심과 더불어 강한 인정욕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태는 항상 무리의 우두머리 자리에 있다. 그러한 기태의 권력 욕심은 두 친구의 관계에서도 작용한다. 존중받고 싶어서, 최고가 되고 싶어서라는 인정욕구로 인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희준은 기태로 인해 살짝 기가 죽은 상태로 등장하고, 동윤은 기태에게 거의 맞춰주다시피 관계를 이어 나간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기태는 마음과 다른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희준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동윤에게 세정이는 몸을 파는 애였다며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한 기태의 행동과 말에 두 친구는 돌아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이 기태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텅 빈 거실 속 혼자 소파에 앉아있을 때, 아파트 풍경을 베란다에서 홀로 바라볼 때 보이는 그 뒷모습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 외로워’, ‘나도 사랑받고 싶어’라는 그 마음이 진짜이지만, 기태는 외롭지 않은 척, 다 가지고 있는 척 마음과 다르게 행동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 동윤은 기태를 상상하며 혼잣말을 주고받고 희준은 끝까지 기태의 아버지에게 최선을 다한다. 비록 두 친구는 기태가 죽기 전 절교를 선언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동윤과 희준이 기태를 진심으로 미워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받은 상처보다 기태와의 추억이 분명 더 컸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바다. 


그렇다면 왜 기태의 죽음을 선두로 영화는 전개되었을까. 뉴스 기사나 TV로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상황만 떠올리게 되고 죽음의 뒷이야기는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감독은 죽음을 일차원적인 의미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 죽음의 이유를 파고들어 그 이면과 상황을 알게 되는 서사로 전개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죽음은 증발되는 것이 아니라 묵직한 기억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감독은 죽음의 이면을 찾아가는 서사를 만들기 위해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면서 전개되는 교차편집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쭉 카메라를 들고 찍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기법은 윤성현 감독의 개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움직이는 화면이 있었기에 주인공들의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직선을 그리라고 하면 우리는 일직선이 아닌 빼뚤빼뚤한 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서투름의 감정묘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찍는 방식으로 접근했던 것은 아닐까.


<파수꾼>에는 노란 조명이 많이 등장하는데 호박빛 색감은 옛 추억을 회상케 한다. 감독은 GV 당시 과거의 향수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더불어 옛 시절의 기억이기에 관객 또한 자연스레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란색은 발랄한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스포츠 규칙상 옐로카드가 있듯이 정지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빛바랜 노란 색감은 소년과의 우정, 그리고 이별을 모두 상징하는 색깔로 적합해 보인다.


작품에는 가로등이 곳곳에 등장한다. 퇴근 후 밤길을 거닐며 지나치는 가로등, 홀로 벤치에 앉아 마주 보는 가로등을 떠올리게 하기에 영화 전반에는 우울하고 슬픈 정서가 드리운다. ‘파수꾼’은 기찻길, 소년, 교복 등 청춘영화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발랄한 청춘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청춘영화는 씩씩해야 하고 밝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이러한 시도가 새로운 도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첫 장면, 초점은 날아가 있고 화면은 이리저리 흔들린다. 모든 화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첫 장면은 왜 초점이 날아가 있을까. 10대들의 세계에는 비행과 탈피, 그리고 폭력이 권위의 상징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그때는 좋기만 했던 권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를, 그리고 비극의 감정을 안겨다 주기에 그러한 슬픔을 말해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허세와 권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함께 말해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동시에 흐릿한 장면은 기태의 심정이기도 하다. 마음은 여리고 사랑받길 원하지만 폭력을 저지르는 겉과 속이 다른 자신을 보며 괴로워하는 마음을 상징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 왜 동윤이 기태에게 “네가 최고다”라고 말해주었으며, 동시에 기태의 환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동윤은 기태에게 상처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태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냥 한번 져줬으면’, ‘눈감아주고 넘어갔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라도 기태를 상상하며 “네가 최고다”라고 기를 세워주는 말을 한 것이다.


기찻길에서 캐치볼 놀이를 하는 세 친구를 보며 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공은 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는데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그러한 관계를 공으로 대신하여 상징한 것이다. 기찻길의 상징도 생각해보건대, 길이라는 것은 어디로 갈지, 어느 방향으로 갈라질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또한 사람 일이기에 그러한 우리들의 삶을 기찻길로 표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금껏 살아온 기억만 해도 대인관계가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관계를 고민하곤 한다. 그로 인해 작품에 더 많이 공감하게 되는 게 아닐까. 힘들고 아플 때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고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다. <파수꾼>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구나 겪었을 법한 관계와 소통의 부재를 보여주어 다시금 과거를 떠오르게 해주고, ‘나도 그때 그랬었지’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해주어 마음을 위로해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관계'라는 소재와 추리소설 형식으로 전개되는 독창적인 전개 방식이 만나 독립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학창 시절, 필자는 학교라는 틀 안에서 소외된 존재였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기대어 삶으로써 나의 삶이 가치가 없다고 느껴지곤 했다. 이 영화를 보고 큰 위로를 받았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한 편의 영화가 큰 위로와 극복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파수꾼>을 보고 다시금 마음을 치유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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