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3 (일)

대학알리

[학식 먹고 한 페이지] 게으름을 찬양할 수 있는 사회

떼지 못하는 ‘쉬었음 청년’의 낙인
쉼의 이유보다 결과를 먼저 판단하는 사회
“쉬었다=게으르다”로 단정하지 말아야

기록을 깨기 위해서 쏜살같이 달리거나 또는 비행기를 타고 전속력을 내는 어른은 아무것도 못 봅니다. - <게으름의 찬양> 중

 

어느 순간부터 ‘쉼’이라는 말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한국은행 고용분석팀에 따르면, 2024년 청년층 ‘쉬었음’ 인구의 28%만이 자발적 사유로 쉬고 있다. 72%의 청년은 불가피하게 일을 멈추고 쉰다는 의미다.

 

우리는 언제부터 ‘쉬는 사람’을 하나의 통계적 집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까. 2003년 1월, 통계청은 경제활동인구조사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쉬었음’ 상태가 하나의 통계 범주로 설정했다. 비경제활동인구의 ‘주된 활동’도 세분화하며 ‘쉬었음’을 별도의 범주로 포함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쉬었음’ 청년이 크게 늘어 이제 이 지표는 하나의 정책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쉼’을 재충전이 아닌 공백으로 여기는 사회, 우리는 왜 쉬는 것을 이토록 불편히 여기게 될까. 어쩌면 문제는 ‘쉬었음’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일해야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1936년 11월 17일, 벨기에 자유 학술원 공개 회의에서 러끌레르끄(Jacques Leclercq)가 발표한 입회사를 정리한 책 <게으름의 찬양>은 제목부터 통념을 거스른다. 러끌레르끄는 게으름을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일하고 생산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지며, 인간에게 노동만큼이나 여유와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쉬는 시간을 낭비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게으름은 오히려 잃어버린 삶의 시간을 되찾는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제대로 인간적이려면 - 마냥 한가롭기만 해야 할 것은 없지만 - 거기에는 느림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일의 찬양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이나 힘씀은 역시 쉼에서 비롯되고 쉼에서 그쳐야 하는 법이고, 위대한 업적이나 크나큰 기쁨은 뛰면서는 이루어질 수도 음미될 수도 없는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 <게으름의 찬양> 중

 

오늘날에도 우리는 바쁘게 살아야 성실한 사람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쉬었음’이라는 단어에조차 낙인을 찍는 지금의 모습은 어쩌면 90년 전 그가 비판했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자꾸 뭘 하고만 있으면 뭐가 돼도 되겠지. 우선 해놓고 나중에 봅시다”하고 현대인은 말합니다. 옛날엔 양반이면 아시다시피 일하기를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떻습니까. (중략) 이제는 양반이면 아무것도 안 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부질없는 것을 피해 마음의 저 깊이를 되찾게 하는 한가로움을 부끄러워해서야 되겠습니까. - <게으름의 찬양> 중

 

그렇다고 모든 ‘쉬었음’을 긍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말 재충전이 필요해 잠시 멈춘 사람도 있지만, 노동을 피하고자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무작정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쉬었음 청년’이라는 다섯 글자만으로 그 사람이 왜 멈췄는지, 얼마나 오래 멈춰 있었는지, 다시 움직일 의지가 있는지까지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쉬는 것이 언제나 옳다”가 아니라, “쉬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을 게으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쉼의 이유보다 결과를 먼저 평가하고 있다. <게으름의 찬양>이 말하는 것도 ‘게으름’을 무조건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만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쉼의 가치’를 되찾자는 데 있다. 얼마나 오래 쉬었는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묻기 전에 왜 쉬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쉼이 한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해 잠시 멈추는 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쉬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라, 쉬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게으르다고 판단하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송연주 대학알리 기자 (thdduswn8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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