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코로나19 이후 완화된 평가 방식으로 대학가의 평균 학점은 높아졌다. 높아진 학점은 대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안겨준 듯 보인다. 그러나 모두가 높은 학점을 받는 현실에서 A 학점은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학생들은 성적이 아닌 또 다른 기준을 찾아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경쟁을 없앤 것이 아니라 경쟁의 무대를 성적표 밖으로 옮겨 놓은 셈이다.
<대학알리>는 이러한 ‘A 학점의 역설’을 추적했다. 대학알리미 성적평가 데이터를 비롯해 학생과 인사담당자,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학점 인플레이션 이후 대학생들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성적표가 잃어버린 의미와 신뢰를 되짚어본다.
높아진 학점은 대학생을 더 자유롭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성적표 밖에서 또 다른 경쟁을 시작하게 했을뿐일까.
기말고사가 끝난 날, 세종대학교 인공지능융합대학 재학생 김민지(가명·23) 씨는 강의실을 나서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낸다. 친구들과 시험 문제를 맞춰보기 위함이다. 같은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답이 나오자 김 씨의 표정이 굳어진다. 시험은 끝났지만 김 씨의 계산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출석은 다 채웠고, 기말 과제도 냈는데 시험을 얼마나 잘 봤는지 모르겠어요. A가 나올지 B가 나올지 계속 계산만 하게 돼요.”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씨는 굳은 표정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킨다. 떨리는 손으로 출석 점수와 과제 점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반영 비율을 차례대로 계산한다. 시험에서 맞힌 문항 수를 다르게 가정해 점수를 입력할 때마다 화면에 표시되는 예상 학점도 계속 달라졌다. 그는 숫자를 몇 번이나 지웠다가 다시 입력하며 자신의 등급을 가늠한다. “이번 시험이 어려웠다”거나 “평균이 높을 것 같다”는 글을 읽으며 자신의 등급을 짐작한다. 객관적인 점수가 공개되기 전까지 다른 학생들의 반응은 성적을 예상할 수 있는 단서였다.
성적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모습은 김 씨만의 일이 아니다. 기말고사 직후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번 과목 A 비율이 얼마나 될 것 같냐”, “평균이 높으면 B도 어려운 것 아니냐”, “전공은 다들 열심히 해서 예측이 안 된다”는 글이 이어졌다. 종강 이후에도 학생들은 답을 맞춰보고 평균 점수를 추정하며 자신의 등급을 가늠한다.
A 학점 비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학생들의 불안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김 씨는 “A가 많다고 해도 내가 그 안에 들어간다는 보장은 없다”며 “다 같이 잘하는 수업에서는 조금만 밀려도 등급이 내려갈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상대평가 과목에서는 자신의 성취도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성취도도 최종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 씨가 가장 신경 쓴 과목 역시 전공 수업이다. 팀 프로젝트가 많았고, 수강생 대부분이 과제와 발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수업이다.
“내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남들이 더 잘했으면 밀릴 수도 있잖아요.”
성적 공개일이 가까워질수록 학생들의 계산은 촘촘해진다. 강의평에는 교수의 채점 방식, 시험 난이도, 과제량뿐 아니라 학점을 후하게 주는지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남는다. 학생들은 수강신청 전부터 해당 정보를 확인한다. 김 씨도 다음 학기 시간표를 짤 때 강의평을 먼저 본다.
“듣고 싶은 수업이어도 학점이 너무 짜다는 말이 많으면 고민돼요. 장학금이나 취업 생각을 안 할 수 없으니까요. 결국 배우고 싶은 과목보다 학점 관리가 쉬운 과목을 먼저 보게 돼요.”
일부 대학에서는 절대평가 과목의 확대와 완화된 성적 기준이 학점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성균관대 학보사 <성대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2024년 2학기 전공과목에서 평균 A0 이상을 받은 성균관대 재학생의 비율은 61.1%에 달했다. 학생 10명 중 6명 이상이 전공과목에서 A0 이상의 평균 성적을 받은 셈이다.
김 씨는 “다들 A를 많이 받는다고 하면 B도 낮게 느껴진다”며 “성적표 숫자는 올라갔는데 마음은 더 편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점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해서 학생들의 불안이 줄어드는 것만은 아닙니다. A학점이 보편화될수록 학생들은 같은 A학점 안에서도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인턴이나 자격증, 대외활동과 같은 또 다른 기준을 쌓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경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성적표 밖으로 이동한 셈이죠.”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H 씨는 학점 불안을 학생 개인의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학점이 장학금과 취업 등 진로와 밀접하게 연결된 상황에서 학생들이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설명이다.
성적표가 공개된 뒤에도 김 씨의 계산은 끝나지 않았다. 예상보다 높은 성적을 받은 과목을 확인한 그는 안도할 틈도 없이 곧바로 다음 학기 수강편람을 열었다. 어떤 전공과 교양을 선택할지 어느 수업에서 부족한 학점을 만회할 수 있을지 다시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종강은 한 학기의 끝을 알리지만 학생들에게 성적표는 또 다른 시작점이다. 김 씨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여전히 성적 계산기와 강의평 앱이 번갈아 떠있다.
홍다인 대학알리 기자 (hongdain74@gmail.com)
김준희 대학알리 기자 (huii1225@naver.com)
조예원 대학알리 기자 (yewon021075@gmail.com)
최민혁 대학알리 기자 (fhtsgy71@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