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4 (일)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혼자서도 잘해요, 여성의 자위 이야기 #01 '밝히는 여자'라는 누명 떳떳할 수 없는 '자위'라는 죄

때는 중학생 시절, 보건 시간에 건강 조사 비슷한 걸 했다. 일주일에 아침을 며칠이나 먹는지, 일주일에 컴퓨터를 몇 시간이나 하는지 등등 평범한 질문들 사이로 내 심장을 덜컹하게 만든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일주일에 자위를 몇 번이나 하는가. 어렸던 그때의 나에게 그 질문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뭐라고 답할지 깊은 고민에 휩싸였던 그 억겁 같던 찰나! 나는 누가 볼까 무서워 결국 '하지 않는다'에 동그라미를 쳤지만, 사실은 그 전날에도 자위를 했었다.

솔직할 수 없다는 두려움과 떳떳하지 못하다는 죄책감이 뒤엉킨 보건 시간이 끝나고, 한 남자애가 대뜸 다가와 물었다. "여자들도 자위해?" 나는 당황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소리 쳤고 내 친구들은 "여자는 그런 거 안 한다"며 "더럽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남자애들은 '딸딸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서슴없이 야동을 공유하던 시절이었다.

이 강렬한 기억은 내게 오랜 시간 자위에 대한 죄의식을 안겨주었다. 친구들이 분명 여자는 그런 거 안 한댔는데, 난 여자였고 그런 걸 했다. ' 역시 나는 더럽고 밝히는 변태인 걸까?!' 지금 생각하면 참 덧없는 생각을 그땐 머리 싸매고 진지하게 고민했더랜다.

그렇게 나는 줄곧 자위 안 하는 '척'을 했다. 여자의 자위는 마치 금기이자 악인 것처럼 먼저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설사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나는 안 해"라며 바로 전날밤에도 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나를 모른 체 해야만 했다! 하지만 좀 이상했다. 다 같이 모여 야동 이야기도 하고 섹스 이야기도 하는데, 그 중 자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그 의문의 해답을 찾은 건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같은 방을 쓰던 친구가 내가 자는 줄 알고(친구야, 나 사실 그때 안 잤어...) 이불 속에서 짧은 시간 끙끙대던 것이다. 자위였다. 너, 나한텐 자위 안 한다면서. 그때 알았다. 하는 사람도 안 하는 사람도 모두 '안' 한다고 말한다는 걸. 나도 그 친구도 자위를 하지만 헤픈 여자로 볼 주위의 시선이 무서웠던 것이다.

 

여자는 자위하면 안 되나요?

실제로 텐가코리아와 한국리서치가 2017년에 서울 및 6대 광역시에서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한민국 자위' 실태조사에서 약 78%가 남성의 자위는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분위기'라고 답한 반면, 약 70%는 여성의 자위는 '수용하기 힘든 분위기'라고 답했다. ‘한국사회에서 자위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렵거나 불편하다’는 응답이 전체 88%인 것을 고려하면 그 중에서도 여성의 자위를 논하기란 얼마나 어려울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영향을 준 걸까? 실제 자위 경험이 있는 비율은 남성 98%, 여성 70%로 역시나 여성이 더 낮았다. (실태조사 전문 http://selfpleasurereport.com/)

 

남성의 자위는 어느 정도 이해되는데, 왜 여성의 자위는 수용 받기 힘든 걸까? 그건 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 교육부가 개발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초등학교 1, 2학년 교재를 보면 ‘남성은 성에 대한 욕망이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여자는? 여자의 성욕에 대한 언급은 없고,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니 여자가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성추행 대처법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무도 ‘여자도 성욕이 있고 자위를 한다’는 간단한 사실을 가르쳐준 적이 없다. 설사 가르쳐준다 해도 그건 성교육이 아니라 그저 ‘음란교육’ 취급을 받기 일쑤다. 또 한 번 여고 시절 일화를 빌려 말해보자면 성교육 강사가 칠판에 큼지막하게 ‘Sex is good!’을 써놓고 “여러분이 느끼는 성욕, 당연한 거예요! 자위해도 돼요!”라고 전교생에게 외친 적이 있었다. 기개가 남달랐던 강사님의 ‘진짜’ 성교육에 나는 한껏 매료되었지만 선생님들은 “미친 거 아니야?”라며 수근댔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해 성교육은 어느 나이 지긋한 강사의 ‘순결 교육’으로 바뀌었다. (한술 더 떠 내가 졸업한 이후인 그 다음해 성교육은‘동성애 혐오 교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미디어가 여성의 자위를 비추는 모습도 한 몫 한다. 포르노 속 여자 배우들은 카메라를 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성기를 애태우듯 어루만진다. 현실의 자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다시 말해 포르노를 보는 이들의 자위를 위한 자위인 셈이다. 그나마 보이는 여성의 자위마저 성적 주체는 커녕 성적 대상으로 노출되고 소비되니 자연스레 여성 자위는 음란한 행위가 되었다.

심지어 아주 무지한 몇몇은 "여자도 성욕이 있어?"라는 웃기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에 자칫 잘못하다간 '야한 여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라 자위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렇게 아무도 여자의 자위라는 금단의 영역에 대해 말하지 않으니 자위하는 여자는 자취를 감출 수밖에. 이쯤 되니 '전설로 내려오는' 자위하는 여자들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터넷에 '여자 자위'를 검색해보면 "자위하는 여자 꼴불견인가요?", "자위하는 제가 수치스러워요.", "저 변녀인가요?" 같은 제목의 글들이 아직도 심심찮게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위는 결코 부끄럽거나 나쁜 행동이 아니다. 자위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위다. 자위를 하는 여자? 헤프고 밝히고 문란한 변녀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여자다. 좀 더 거창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자위는 내 몸을 알아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내가 나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자위를 하면 실제 섹스에서 얻는 만족감도 더 크다. 이렇게 좋은데 왜 하지 말래? 이만하면 자위의 성역을 무너트릴 때도 됐다.

(물론 자위는 철저히 자신의 선택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것이 맞다. 이 글의 의도는 자위를 하지 않는 이에게 자위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2편에서 계속~

키득이 기자 (hufsalli@gmail.com) 

**기사의 의도와 달리 색안경 끼고 볼 이들을 우려해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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