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학내노동자] 코로나19라는 핑계, 누군가의 지워진 목소리

  • 등록 2020.11.27 18: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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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대학은 1학기에 이어 2학기에도 오프라인 강의 대신 온라인 강의를 진행했다. 이제 오프라인 강의보다 온라인 강의가 더 익숙해졌고, 캠퍼스의 풍경은 우리에게 잊힌 지 오래다. 하지만 사라진 건 캠퍼스의 낭만뿐만이 아니다. 부당함을 외쳤던 누군가의 목소리는 코로나19라는 팬더믹 상황 아래 지워졌다. 일상어가 돼버린 코로나19는 모든 논의를 무마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 코로나19로 인한 운영상의 어려움…? 환경미화 청소 노동자의 이야기

 

 2020년 대부분의 대학에서 전면 온라인 강의를 운영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학교 캠퍼스를 실질적으로 방문할 계기 자체가 대폭 줄었다. 또한 감염 예방을 목적으로 많은 곳의 건물들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방문할 기회도 없어졌다. 이와 같은 대학의 폐쇄적 운영 조치로 캠퍼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불 꺼진 학교, 문 닫은 학교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은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에 학내 노동자들의 업무량이 줄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코로나19는 오히려 학내 환경미화 청소 업무에 방역 노동을 더한 셈이 됐다. 학교의 건물 폐쇄 공지를 듣고 건물의 문을 일일이 걸어 잠가야 하는 건 청소 노동자들의 몫이다. 건물마다, 강의실마다 손 소독제가 떨어지지 않도록 수시로 확인하고 이를 채워놓는 일 역시 포함이다. 손잡이를 소독하고, 소독 티슈를 배치하고 혹시라도 강의실을 이용한 사람이 생기면 그 강의실 전체를 소독하는 일이 상시업무가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이 건물을 이용하지 않는 관계로 여타 업무들은 생략되거나 축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 개인의 업무량 축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한 “고용 중단” 때문이다. 학내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청소 용역 업체는 정년 등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퇴직 후 발생한 빈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건 기존에 남은 청소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임금 동결”이다. 대부분 대학은 환경미화, 경비 등의 업무를 외부업체와의 계약으로 해결하고 있다. 즉, 학내 노동자의 고용이 간접 고용의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학교는 외부 업체에 계약금을 주고, 외부업체는 이 계약금을 가지고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는 구조다. 매년 올라가는 최저임금에 맞춰 이들의 임금도 매년 논의를 거치게 된다. 하지만 2020년 숭실대 환경미화 청소 노동자의 임금은 동결됐다. 또다시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이유가 됐다.

 

 민주노총 산하 서울일반노조 숭실대 시설 분회에 속한 숭실대 환경미화 청소노동자 유하진 분회장과 홍순이 사무국장은 사측에서 내놓은 임금 동결의 이유가 핑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2020년 용역에 관한 계약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2019년에 이뤄졌다. 코로나 19는 2020년 계약금 상정에 있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업체 측에서는 코로나19를 근거로 임금 동결을 주장했다.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는 적었다. 사측에서는 이미 노동자들에게 코로나19의 장기화를 빌미로 고용 축소를 엄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잘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임금 동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업체는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이득을 본 셈이다. 코로나19는 업체가 빈 일자리를 채우지 않고 임금을 동결하는 것에 힘을 실어줬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은 노동자들의 업무량은 증가시켰고, 사측의 고용비 지출은 감소시켰다. 업체 측에게 코로나19는 과연 재난 상황이었을까.

 

 

# 학내 노동의 과도기적 현장


 위와 같은 사측의 이기적인 행보를 저지하는 역할은 주로 노동조합이 담당한다. 숭실대 환경미화 청소 노동과 관련해서는 두 개의 노조가 있다. 제1 노조는 숭실대 환경미화 용역 업체의 이름을 딴 ‘미환 노동조합’(이하 미환 노조)이고,  제2노조가 ‘민주노총 산하 서울  일반노조 숭실대 시설 분회’(이하 민주 노조)이다. 유하진 분회장과 홍순이 사무국장은 제1 노조인 미환 노조가 사실상 어용 노조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숭실대의 미환 노조는 노동자를 위한 노조가 아닌 회사를 위한 노조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단 용역 회사의 노무관리를 대신해주는 역할이다.

 

 어용 노조의 성격이 강한 미환노조가 제1 노조를 유지하는 까닭은 사측의 꼼수 때문이다. 사측은 청소 노동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미환 노조의 가입을 교묘하게 종용한다. 청소 노동자는 고령 친화적인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민감한 것이 “정년 연령”이다. 얼마 전 숭실대 내에서는 경비 노동자 내 여론 주도자가 두 노조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킨 사례가 있었다. 경비 노동자들의 여론 주도자를 필두로 청소 민주 노조 측에 가입을 요청하고 노동조합 가입 원서를 받아간 뒤, 이를 가지고 용역 업체에 찾아가 거래를 시도한 것이다. 해당 노동자가 정년으로 퇴직할 상황에 놓이게 되자 정년 이후의 업무를 촉탁받으려는 것이 그 이유로 보인다. 회사는 이를 마다하지 않았고, 상황은 민주 노조 측의 기운을 빼버리는 꼴이 됐다 .

 

 이외에도 업체는 노노 갈등을 유발해 사측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어용노조의 성격이 강한 노조의 조합원들에게 더 편한 업무를 지시하고, 부수입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한다. 이와 같은 업체의 노조 간 차별 대우는 노조 활동을 더 어렵게 만든다. 고연령대의 보수적인 성향에서 오는 두려움, “해고당할까 봐, 안 좋은 곳에 보내질까 봐.’ 등과 같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은 민주 노조에 대한 외면과 미환 노조의 가입으로 이어진다. 노조원의 수가 제1 노조를 결정하기 때문에, 현재 숭실대 분회의 민주 노조는 식물 노조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민주 노조 조합원들은 제1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 삼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이들이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시위는 쉬는 시간에 짬을 내서 하는 1인 시위 정도로만 제한된다.

 

 홍순이 사무국장은 업무상의 어려움보다는 사측의 이익을 위해 조장된 노노 갈등이 더 힘들다고 전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외부 사람들은 노노 갈등을 두고 비난과 의아의 기색을 내비치기 일쑤다. 이는 이들의 목소리에 공감하지 못함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외면은 목소리의 소거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굴레다.

 

 제1 노조의 어용적 성격으로 숭실대 환경미화 청소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외부에 드러나지 못했다. 학교와 업체 간의 계약으로 이뤄진 환경미화 청소 업무는 계약상 고지된 업무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추가 업무에는 추가 임금이 지급돼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계약 사정을 몰랐던 청소 노동자들은 학교가 요구하는 추가 업무를 아무런 대가 없이 하곤 했다. 건물 바닥의 왁스 작업, 졸업 가운 운반 등의 일이었다. 이에 대한 추가 임금은 업체가 가져갔다. 이와 같은 부당한 노무 관리에 대해 미환 노조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이를 문제 제기한 건 민주 노조 측이었다. 민주 노조에서 제기한 민원으로 추가 업무에 대한 임금이 노동자에게 지급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유하진 분회장과 홍순이 사무국장은 청소 노동의 고질적인 문제로 두 가지를 지적했다. 환경미화 청소 노동자는 여성이 8, 남성이 2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의 경우 건물 안을 청소하고 남성은 외곽 일을 많이 하게 된다. 여성 청소 노동자들이 겪는 고질적인 어려움은 숙소(휴게실) 문제다. 정해진 휴식 시간, 즉 오전과 오후의 각각 1시간을 제외하고는 휴게실을 전혀 이용할 수 없다. 청소를 담당하는 구역에 의자가 마련된 것도 아니다. 동료들과 함께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반면 남성 청소 노동자들이 겪는 고질적 어려움은 날씨 문제다. 유하진 분회장은 폭염과 혹한기에 각종 외부 업무에 동원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전했다.

 

 

 

누군가의 편리함은 대개 누군가의 불편함으로 인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깨끗하고 정돈된 캠퍼스를 이용할 수 있었던 건 환경미화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 덕분이었다. 이들의 노동에 대한 조건과 대가가 정당하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는 이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범국가적 재난 상황이 이와 같은 문제 제기를 일축했다. 코로나19라는 의제 앞에 청소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덜 우선적이고 덜 시급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임금 동결과 고용 축소 및 중단이 업체에 의해 자행됐다. 코로나19는 여전히 누군가의 생계를 소리소문없이 밀어내고 있다.
 

오은진 기자 candy970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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