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살, 사회적 타살이다

  • 등록 2021.01.16 08: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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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성별 자살률은 남성(38.0명)이 여성(15.8명)의 2.4배에 이르렀다. 다만 남성의 경우 재작년 대비 자살률이 1.4% 하락했지만, 여성(6.7%)은 높아졌다. 현재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남성 자살률을 상회하는 현상은 사회적 문제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결정적 증거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여성 자살률의 급상승에 관해 다양한 원인을 내세우고 있다. 대부분은 자살이 사회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결과라서 주요인을 특정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 사회 구조적 요인으로는 고용 문제, 사회적 고립 등이 내포되어 있다. 복지부는 이에 더해 유명 연예인 자살 사망, 즉, 베르테르 효과가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한다며 유명인의 모방 자살 사전 예방대책을 강화하여 추진할 계획이라 밝혔다. 한 국회의원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20 건강투자 인식조사'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여성 과반이 코로나 블루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세)를 경험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특히 외출이나 모임 자제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이 코로나 블루의 원인이라 전했다. ‘여성’은 교감과 위로가 더 필요한 기질을 가지고 있어 사회적 고립감이 남성과 비교했을 때 더 크게 다가온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베르테르 효과도, 여성의 특정 기질도 자살률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단순히 코로나 블루 때문일까?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세가 아닌, 코로나로 인해 여성의 고통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여성의 고통에 방아쇠 역할을 전염병 사태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3~7월 일시 휴직자 수는 여성이 101만6000명으로 남성(60만8000명)보다 67%나 많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면 취업자 3명 중의 1명이 실직 위기인데 그 실직 위기에 가장 노출된 계층 중 하나가 여성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지지의 단절, 경기 악화에 따른 실직 충격 여파가 자살 위험군에 있던 여성을 먼저 자극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살 위험군에 있던 여성"이라는 대목이 눈에 거슬린다. 왜 현재까지 여성이 자살 위험군에 속해있었는지에 대해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19는 자살 위험군 집단에 속한 여성에게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현실을 개인의 문제로 봐왔다. 실상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을 저평가하는 구조적 문제임에도, 우리 사회는 여성 청년층의 현실을 방관했다. 우리의 언니, 동생 혹은 본인의 현실이었다면, 그래서 국가적 위기가 죽음으로 향하는 방아쇠를 당겼다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까. 여성 자살, 여성의 고통은 한순간에 발생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성과 젠더 구조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다양한 실태를 밝히기 위해 2020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의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참고했다. 이는 2002년 7월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의 및 범주에 따라 집계한 자료이다.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관계에서 젠더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입증된다. 이에 근거해 한국에서 고용이나 취업의 비공식성의 기점이 되는 고용의 불안정성을 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내부 구성을 성별로 검토해보았다. 먼저 남녀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의 약 22.5%로 제일 높은 비율을 점하는 것이 한시적 근로자이다. 여기서 한시적 근로자에 해당하는 남성의 수는 2,079명, 여성의 수는 2,529명이다. 한시적 근로자란 근로계약 기간을 정한 기간제 근로자, 그리고 정하지 않았으나 계약의 반복 갱신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근로자와 비자발적 사유로 계속 근무를 기대할 수 없는 비기간제 근로자를 포함한다. (출처: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비정규직 노동자의 많은 수가 포함되는 한시적 근로자에게는 ‘고용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불안정 고용의 근거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근로기준법으로 정해진 해고 규제가 보편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안정한 고용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게 되는데, 그 전형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해고 규제, 노동시간 및 휴가, 취업규칙, 법령 요지 등의 게시, 노동위원회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규정은 종업원 5명 미만의 영세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영세기업에 편제해 있는 비정규직에 대해 해고 규제가 적용되지 않거나 고용 계약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인정되기에, 이러한 고용은 몹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고용 보장이 취약한 비정규직은 기업에의 정착성이 낮고 노동 이동을 반복한다. 많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장 간 이동만이 아니라 실업, 비노동력 인구와 워킹푸어 사이를 오가는 빈도가 높다.

 

이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는 불안정 고용과 노동력의 높은 유동성을 겪는다는 점, 나아가 이러한 비공식적인 성격이 강한 여성 노동자가 비교적 많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사회가 말하는 여성의 노동은 불안정하고 취약하다

코로나 이전,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았을 때도 여성 노동은 저평가되고 있었다.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 여성은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로 일한다. 대면 서비스직, 판매업 종사자 그리고 돌봄/가사 노동은 주로 여성의 직종이었다. 

 

수없이 인권 평등과 성 평등을 외쳐오던 현대 사회는 왜 아직도 여성의 노동을 ‘불안정한 노동', ‘취약한 노동' 이라 분류하는 것일까. 그 후,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또다시 ‘자살 위험군 집단'으로 분류하며 여성의 특정 기질에 문제의 원인을 두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코로나 19 이전부터 존재했던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국가적 위기로 인해 심화하였다. 이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서 대면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 관련 조사 결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성 정책연구원 조사 결과를 보면 방과후학교 강사 가운데 고용보험 미가입 비율은 87.9%에 달했다. 국민연금 미가입자는 19%였고, 건강보험 역시 52%가 지역가입자로서 상대적으로 더 큰 건강보험료 부담을 안고 있었다. 또한, 코로나 19 사태 본격화 이후 수입이 크게 줄어든 직종으로 돌봄 노동자가 꼽히는데, 코로나 19 이후 월평균 수입이 0원인 사람은 15.6%에 달했다.

 

 

결국 여성이 한국 노동시장에서 아직도 고용 취약계층의 대표적인 얼굴이라서 고용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마주한다. 여성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그들을 무너뜨리는 현실 때문이다. 이는 감염병 사태가 발생하기 전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절실한 외침을 외면해온 사회에게 책임이 있다. 여성의 고통은 여성의 목소리가 묵살되면서 서서히 증가했다. 

 

노동자가 갖춘 기능의 질이 고용 안정성을 결정짓는다. 그렇다면 여성이 대거 종사하는 대면 서비스직, 방과후학교 강사, 돌봄 노동자는 무가치한 노동인가?

 

위 질문에 사회는 그렇다고 한다. 노동시장에서의 역할보다 결혼시장에서 가사, 출산, 육아노동이 더 높이 평가되기에 여성 노동자들은 높은 유동성을 지녔다. ‘여성이니까' 프레임 속 고정된 성 역할은 남성 중심으로 흘러가는 노동시장에서 더 눈에 띄기 마련이다. 결국, 여성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는 그들의 노동을 저평가했으며 국가적 위기 이후 그들을 감원과 감봉의 첫 번째 대상으로 밀어 넣었다. 

 

실제로 남성 실직자보다 여성 실직자가 더 많고, 고용 불안정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은 실업 후 육아와 가사노동이라는 선택지를 받는다. 되려 코로나 19로 인해 성 역할의 부당함이 적극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이 현실로 마주하는 노동시장은 불안정하고 성차별적인 곳이었다. 남성이 대부분인 노동업계가 비교적 더 생산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차별적 인식이 여성 고통의 방관으로 이어졌다. 

 

 

여성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

따라서 여성의 자살은 사회적 차별이 낳은 사회적 타살이다. 여성의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단정 짓는 사회로부터 비롯된 차별적 인식이 여성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여성의 고통은 한순간에 발생하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로소 많은 여성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성적 역할에 얽매여 살아왔다는 것, 여성으로 해야 할 역할을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능력을 저평가받아왔다는 현실이 드러났다. 코로나로 인해 여성의 고통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우리는 자살률이 얼마나 높아졌는지에 대한 통계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왜 그 많은 여성이 자신의 삶을 끝내는 것이 낫다고 ‘확신’을 갖고 그 확신을 ‘신뢰’했는지, 그 이유를 돌이켜봐야 한다. 우리는 여성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사회적 태도가 필요하고, 이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품어주는 사회의 정책 실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박서영 기자 jennybak022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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