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일본군 성노예제한국에서는 ‘위안부’를 정식 명칭으로 차용했다. 정의연과 평화나비 등의 시민 단체들은 사건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위안부’ 대신 ‘성노예’로 표기하고 있다. 본 기사 또한 시민단체의 뜻을 반영하여 ‘위안부’ 대신 일본군 성노예제라는 명칭을 차용했다문제 해결에 각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며 피해당사자를 배제한 미성숙한 접근을 취했다. 지난 1월, 12명의 피해당사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리를 거뒀다. 일본 정부에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관한 가해 책임과 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을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승소에 대해 “곤혹스럽다”라는 견해를 밝히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과거사로 치부했다. 작년에는 이용수 씨가 시민단체가 피해자를 제외하고 시민운동을 전개했음을 폭로했다. 즉, 피해당사자를 고려하지 않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이제는 기존의 일차원적 해결 방안이 아닌 여성주의적, 평화주의적 관점에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일부 청년들의 목소리에 주목할 때이다.
PT1.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그 아쉬운 행보
피해당사자를 배제한 정부의 해결방식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피해당사자들의 인권 회복보다는 일본 정부와의 원활한 합의만을 살펴 가해국에 결정권을 넘기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1992년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제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자 마침내 범죄를 인정했고, 피해당사자와 시민 단체는 일본 정부의 공식 배상과 사죄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피해당사자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모임’을 발족하는 등의 국내적인 조치만 취했다. 1998년 일본군 성노예제에 관련된 인물들을 입국 금지한 것 외의 대응은 없었다.
피해당사자를 고려하지 않는 정부의 해결 방식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공개된 합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반성의 의미로 한국 정부가 세운 화해치유재단을 후원하기로 합의했으며, 향후 국제 사회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위 조건을 이행한다면 해당 논의가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약속했다. 또한, 정부는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 이전, ‘성노예’ 표현 사용 자제, 소녀상 설치 지원 금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설득 등의 요청을 비공개적으로 수용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밝혀지자 한국 사회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피해당사자들은 당사자를 배제한 합의에 반발했고, 시민들 역시 양측 정부를 비판하며 합의를 파기하기 위해 정의기억재단을 설립했다. 일본군 성노예제의 당사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옥선 씨는 “우리 명예와 인권을 일본이 빼앗아갔다. 우리는 공식 사죄를 받고 법적 배상을 받아야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2019년 헌법재판소 역시 한일합의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결여된 밀실 합의이기에 진정한 문제 해결이 아님을 인정했다.
즉, 피해당사자들이 원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이루려면 재협상은 불가피하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재교섭 등을 통해 피해자들이 이해하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낸다”라는 방침을 세웠다. 이후 재협상을 위한 내부적 조치로 2015년 한일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시키고, 일본 정부의 지원금 10억 엔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했다. 문 정부는 지원금처리 방안에 대해 일본 정부와 차후 협의할 예정임을 밝혔지만, 그 어떤 외교적 성과도 없었다. 현재의 문 정부는 스가 총리 취임 이후 틀어져만 가는 한일 관계를 해결하느라 여념이 없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과거사로 칭하며, 한일의 미래 지향적인 발전은 따로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한일 관계의 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를 배려한 발언일 것이다. 한국 정부가 악화된 한일 관계 회복에 주력하는 지금,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는 더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진 만큼, 원활한 외교관계가 피해당사자의 인권회복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한국 정부가 피해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진정성 있는 합의를 진행해야 한다.
피해당사자와의 의견 차이를 해결하지 못한 시민단체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정대협 등의 시민단체는 정부 대신 피해당사자, 대중과 연대하며 해당 문제 해결의 주축으로서 활동했다. 1990년 37개 여성단체로 발족된 정대협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았을 때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인정, 공식적 사과와 진상규명, 생존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 역사 교육 등을 요구했다. 정대협은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를 목표로 만들어진 시민단체 정의기억재단과 2018년 통합되어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라는 단체로 거듭나 현재까지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단체도 비판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시민단체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을 전개했으나, 정부의 일을 민간단체가 맡게 되면서 미숙한 대처를 보이기도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란 사건을 바라보는데 피해자의 목소리를 최우선시하는 것으로, 피해자들을 다양한 의견을 가진 주체로서 이해하는 태도이다. 그렇기에 시민단체는 피해당사자가 그들과 상반되는 주장을 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그것이 단체의 비전과 불일치할 때는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며 사회운동을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잘못된 소통방식으로 시민운동에 분열이 초래되기도 했다. 그 첫 번째 사례로는 무궁화 할머니회이다. 무궁화 할머니회는 정대협과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피해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설립한 단체이다. 1995년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를 보상하기 위해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이라는 일본 재단법인을 발족한다. 그러나 이는 일본 정부의 배상이 아닌 국민과 기업이 모은 민간 차원의 기금이었다. 시민단체인 정대협은 보상금이 아닌 정부의 배상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아시아 국민기금 수령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대신 보상금을 받지 않은 피해당사자들에게 국민 기금과 정부 예산을 통해 생계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정대협과 일부 피해당사자들 사이에서는 불화가 생겼고, 33명의 피해당사자가 정대협을 규탄하며 무궁화 할머니회를 결성했다. 정대협은 정의의 실현을 위해 피해당사자들의 보상금 수령을 반대했지만, 이는 피해당사자들이 보상금을 받을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일 수 있다.
작년의 정의연 사태 또한 시민단체와 피해당사자 사이의 오해와 불화에서 기인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해결을 위해 힘써 왔던 이용수 씨는 정의기억연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우선시했고, 회계 비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양성화 교수는 한겨레 신문 ‘위안부 운동을 말하다’ 전문가 릴레이 기고에서 ‘시민단체가 피해자를 인격체로 보지 않고 ‘영웅’이나 ‘피해자’로 대상화했기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정의연은 법적 배상과 사죄, 그리고 전시 폭력 없는 평화의 실현을 달성하기 위한 단체이다. 피해당사자와 궁극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로 인해 시민단체가 다양한 피해당사자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고, 그들의 의문과 요구는 응답되지 않은 상태로 남았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민간 단체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일임한 한국 정부의 탓도 크다. 지금까지 정의연은 한국 정부의 산하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관련 사업을 위탁받았고, 정부는 위탁 단체의 허술한 회계 상태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언론 또한 정의연 사태에 관련하여 팩트체크가 되지 않은 가짜 뉴스를 재생산했고, 시민 단체가 쌓아온 노력은 폄하됐다. 활동가와 피해당사자의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 시민단체를 포함한 전체적인 사회가 각자의 이해관계만을 고집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에 불화를 가져왔다.
시민사회의 극단적인 프레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단편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시민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시민사회는 일본군 성노예제를 여성인권, 제국주의, 국가 폭력의 차원에서 발생한 복합적인 문제로 이해하지 않았다. 대신, 민족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편향적인 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1991년 한국 사회에서 김학순 씨가 최초로 증언했을 때 이를 ‘민족의 수치’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성노예제의 실상이 드러나고 의제가 공론화되면서 당사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곧 극단적인 성역화로 변형됐다. 언론은 “꽃이 꺾였다”와 같이 여성의 정절에 초점을 맞춘 발언을 재생산하며 당사자를 객체화했다. 그러나 이는 일본군 성노예제의 산증인이자 인권운동가인 당사자들의 존재를 왜곡하는 것이다. 수많은 당사자가 수요시위 등을 통해 시민운동의 주체로 활동했고, 김복동 씨와 길원옥 씨는 나비기금을 만들어 피해당사자들을 직접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체적인 당사자들은 사회의 시선 아래 ‘피지 못한 꽃’, 또는 ‘지켜줘야 할 소녀, 또는 할머니’와 같은 수동적인 존재로 변질됐다.
이러한 극단적인 성역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일주의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을 반일 운동의 일환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민족주의적 관점과 가부장적인 시선이 혼합되면서 ‘적국 일본이 대한의 딸들을 유린했다’는 식의 논리가 형성됐다. 어느새 피해당사자들은 ‘창녀’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성녀’로 거듭났고, 혐오에서 기인한 비생산적인 담론이 전개됐다. 해당 관점에서 여성은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남성과 국가에 종속된 소유물로, 일본은 만악의 근원으로서 그려진다. 수요시위에서는 대학생 단체가 ‘반일’이라 써진 조끼를 입고 참여하거나,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참가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그러나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단순한 증오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해당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과 제도화된 성폭력 없는 사회를 위해서 시민 사회는 비생산적인 담론 대신 국가폭력과 여성 착취 등에 반대하는 다각적인 구도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의 잘못은 묵인하는 한국 사회
한국에선 일본군 성노예 문제 이외의 전시 성폭력 이슈들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한국 역시 전시 폭력과 성폭력의 가해국이다. 그러나 해당 의제와 함께 해결돼야 할 한국 정부의 국가 폭력과 성 착취의 참상은 외면받고 있다. 한국군은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성폭행 등의 전시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부적인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도 참상의 생존자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사죄를 받고자 노력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퐁니와 퐁넛마을에서 일어난 무차별 학살의 생존자인 두 명의 응우옌 씨(동명이인)는 유엔에 한국 정부의 인권침해를 확인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피해당사자들은 민간인 학살행위 조사 시행 및 정보 공개, 공식 사과 등 피해 회복 조치, 한국의 인식 제고 활동을 권고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응우옌씨는 2019년 4월에 청와대에 진상조사와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을 냈지만 거부당했으며, 국방부는 퐁니-퐁넛 사건을 조사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폐쇄적인 태도에 응우옌씨는 같은 달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냈다.
한국 사회 내의 국가폭력 사례들 또한 충분히 주목받지 않고 있다. 정부의 용인하에 운영되던 기지촌 성 착취의 피해당사자는 “양공주” 등으로 불리며 일본군 성노예제의 당사자들보다 더한 사회적인 멸시를 받았다. 미국 기지촌 위안부 국가배상 소송이 있을 당시 “감히 일본군 성노예제 당사자들의 ‘위안부’라는 명칭을 쓰냐”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지촌 성 착취 역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와 마찬가지로 ‘군인, 즉 남성들의 성욕은 해소되어야 한다’라는 합의 아래에서 진행된 군사화된 성매매라는 점에서 본질이 같다. 기지촌 피해당사자들은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에서 선택지가 없었던 미성년자들이었고, 경찰, 보건소 직원, 공무원은 이를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소송이 진행될 당시 한겨레 신문의 인터뷰에 따르면 기지촌 당사자인 박언니(가명)는 피해자들이 기지촌에서 도망치면 경찰이 그들을 포주에게 돌려보냈다고 회상했다. 공문서를 보면 기지촌 형성의 목적 이유 또한 외화 획득과 국가 예산 절약이었고, ‘미군을 잘 접대하는’ 교육을 진행하며 정부 차원에서 미군 상대 성매매를 독려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에서 자행된 국가 폭력 사례들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 현재 정의연 등의 시민단체에서 이와 같은 국가 폭력 이슈들을 알리고 있지만, 그 인지도는 미비하다.
일본군 성노예제와 베트남 학살 사건, 기지촌 위안부 모두 국가폭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만 주목하며 한국 내 자행된 국가폭력 사례들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은 전시 성폭력의 피해국이자 가해국으로서 여성 혐오와 국가폭력이 초래하는 아픔을 성찰해야 한다. 같은 처지에 있는 피해국의 아픔에 공감하고, 국가 내 인권착취를 규탄해야지만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PT2. 평화를 위한 대학생들의 연대, 평화나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당사자는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당사자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한국 사회와 일본 정부로 인해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학생 단체 평화나비는 해당 문제를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평화나비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양한 사회 이슈와 연결해 바라보는 활동을 통해 대중들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평화나비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평화나비 네트워크는 수요시위에 참가했던 대학생들이 일본군 성노예제 해결과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2013년도에 설립한 동아리입니다. 현재 서울, 강원, 경기, 제주, 충청 전국 다섯 개의 지역과 서울 지부 8곳이 연합하여 활동 중입니다. 지부마다 독자적인 지부 사업을 기획해서 활동을 진행하는데, 그 예시로 릴레이 캠퍼스 수요시위, ‘바위처럼’ 챌린지 등이 있습니다.
평화나비가 다른 일본군 성노예제 관련 시민 단체와 구별되는 점이 있나요?
우선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다는 점에서 타 단체들과 차별성을 지닙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의 활동가들의 연령대가 상당히 높은데, 흔히 ‘미래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청년들이 사안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는 게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현재의 사회적 이슈와 연결해 지속해서 의제를 공론화하는 유일한 청년단체입니다.
평화나비의 대표적인 활동에 관해 설명해주세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고 연대를 요청하는 활동이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나비에서 7년째 진행 중인 평화나비 페스타(FESTA)가 대표적인 활동으로 사료되네요. 평화나비 페스타는 매년 7, 8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인 8월 14일 전후로 진행됩니다. 매년 구성이 달라지는데, 2020년에는 김창록, 양현아, 호사카 유지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연사를 초청해 일본군 성노예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정세에 대한 강연을 들었습니다. 또한 ‘나비효과 실천단’이 일주일 동안 서울 시내를 돌며 일본군 성노예제를 비롯한 의제들에 대해 발언하고, 행진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본행사인 8월 14일 당일에는 전국의 평화나비 회원들이 모여 발언하고, 함께 춤과 노래를 즐겼습니다. 2019년 페스타에서는 국내의 제주 항쟁, 베트남 전쟁 당시의 전시 폭력, 제주도 공군 기지 설치 안건 등에 대해 발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다른 단체들과 함께 전시폭력을 규탄하는 연대성명을 내고 대중들에게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거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역사 문제나 한일 외교 문제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평화나비는 해당 사안을 여성의 낮은 인권, 제국주의, 국가 폭력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일어난 인권 착취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얽혀 있기에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시민 단체 차원에서 여러 가지 노력은 있었으나, 한국 정부의 노력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에요. 일본 정부나 역사 수정세력이 왜곡과 부정을 지속하고 있어서 문제 해결이 더 지연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평화나비는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과 공식적인 사죄를 받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평화나비는 일본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동아리인데, 다른 나라의 전시 성폭력과 국가 폭력에 관련된 활동까지 연대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희의 주목표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이지만, 이는 복합적인 사회적 요인이 얽혀 일어난 사안입니다. 따라서 한 가지 관점을 통한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고, 마찬가지로 본질에서 유사한 문제들을 끝맺지 않고서 일본군 성노예제만을 해결하는 것 또한 어려워요. 그렇기에 구체적인 맥락은 다르더라도 일본군 성노예제와 같은 본질을 가진 의제라면 그 역시 함께 연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평화나비 활동가들은 의제의 복합적인 요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폭력을 만들어내는 구조와 사회적 기제를 공부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려고 노력하죠. 베트남 전쟁의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착취 등 모두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연장선이에요. 그렇기에 우리는 ‘위안부’ 성폭력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전시 폭력과 성 착취, 국가 폭력에 반대하며 평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활동 예시가 있을까요?
평화나비는 다각적인 관점에서 의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저희는 전쟁, 국가폭력, 성착취 등과 관련된 사례를 알아보는 세미나와 워크숍을 개최하는데요.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면 2019년 나비효과 실천단의 매향리 견학이 있습니다. 매향리는 매우 향기로운 마을이라는 의미의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과거 주민들은 미군의 폭격 연습으로 인한 소음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고 높은 자살률을 보였습니다. 현장을 탐방하며 실제적 지식을 얻고, 피해자들의 입장을 직접 들으며 평화나비 활동가들은 국가의 인권 침해가 갖는 심각성에 대해 더욱 심층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어요. 다양한 사례에 대해 배우면서 저희 또한 넓어진 시각으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희가 교육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행사에 반영하면서 대중들 또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죠.
같은 해에 저를 포함한 평화나비 연합지부의 한국외대 학생들은 사회과학대학과 함께 퍼포먼스 부스를 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5·18 민주화 운동에 관한 국회의원들의 망언을 읽고,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진상을 설명하는 부스였는데요. 학생들은 국가폭력의 참상을 살피고, 현재까지도 지속되는 국회의원들의 역사 왜곡에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단순한 역사 문제나 외교적 갈등으로 치부합니다. 그렇기에 평화나비에서 5·18 민주화 운동 같은 다양한 사례에 연대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죠. 위와 같은 활동을 통해 대중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사실은 제국주의와 국가적인 폭력과도 연결된 복합적인 사안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저희가 다양한 사례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와 연관시키며 인식을 확장하듯, 대중들은 준비된 활동을 진행하며 일본군 성노예제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당사자들은 증인이자 인권운동가로서 시민운동의 중심축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이제는 그분들의 부재가 커지면서 활동가들이 향후 어떻게 시민운동을 이끌어 나갈지 고민이 될 것 같은데요. 평화나비가 고안한 새로운 계획이나 해결 방안을 말씀해주세요.
지금까지 활동가, 피해당사자, 대중이 연대해 온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 건 피해당사자였어요. 피해당사자들은 생존자, 역사의 증인, 또는 인권 운동가로서 큰 힘이 되어줬어요. 활동가들이 피해당사자들에게 많이 의존했는데 알다시피 당사자분들의 빈자리가 점점 커지는 상황이에요. 피해자 없는 포스트 피해자 시대에서, 평화나비는 피해당사자의 인권 회복과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청년 활동가들이 주체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활동을 전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고안해 낸 방법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현안과 연결하는 거였어요.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과거의 일이고, 가시적인 결과가 단숨에 나오는 것도 아니라 대중들의 참여와 관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아무래도 대중들은 현재의 사건들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도 여전히 현안이라고 생각해요. 해당 문제의 본질적 원인과 연결된 문제들이 지속해서 일어나니까요. 이제는 피해당사자들에게 의존하기보다 어떻게 해당 사안이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지 대중들을 설득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의성 있는 사회적 이슈와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연결해 인식을 새로이 하는 중이에요.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체적으로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성명문을 내고 있습니다. 작년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충청평화나비에서 공동성명문을 냈는데요. 여성에 대한 성착취는 N번방 이전에도 ‘딥페이크’, ‘지인 능욕’, ‘소라넷’ 등으로 사회에 뿌리내려져 있었죠. 그보다 더욱 과거에는 일본군 성노예제 사건이 있었습니다. N번방은 자본과 성착취가 합쳐진 범죄라면 일본군 성노예제는 국가폭력과 성착취가 결합된 범죄입니다. 대중들은 여성에 대한 성 착취를 용인해 왔던 역사가 현재까지도 비극을 초래하고 있는 걸 깨닫고,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지게 되는 거죠.
정의연 사건 이후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을 전개하는 시민단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는데요. 2021년에는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2021년을 맞아 평화나비는 새로운 국면을 마주했습니다. 그동안 활동을 이어오던 피해자, 대중, 활동가라는 세 축의 연대에서 중심 역할이었던 피해자분들의 빈자리가 커지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시기가 왔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생존자와 활동 단체 간의 갈등인 2020년 정의연 사태가 발생했죠.
물론 잘못이 있으면 응당 사죄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언론은 사건을 보도하는 데에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어요. 팩트체크를 하지 않은 자극적인 기사들이 넘쳐났고, 시민 단체가 쌓아온 노력을 일순간 폄하했어요. 수요 시위가 없어질 뻔하기도 했지요.
정의연 논란을 바라보면서 평화나비 또한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향후 계획했던 청소년 사업, 국제 대학생들과 연대, 그리고 일본 시민들과의 소통을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위안부’ 운동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렇기에 지금까지 다양한 의제를 주제로 토론하고 결과물을 내던 기존의 행사 대신 저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이 무엇인가”라는 큰 주제를 두고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비록 명확한 답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설문조사를 통해 대학생과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지속해서 소통과 연대의 노력을 한다면 더욱 성장한 자세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대학생 네트워크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평화나비 청년들과 저희 한국외대 지부의 행보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새로운 갈림길에 선 일본군 성노예제 운동
한국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피해당사자의 명예와 인권 회복에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시민단체에 당사자들에 관한 책임을 전가했고, 시민 단체는 피해당사자와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의 구성원들 또한 각자의 편견을 가지고 사안에 접근하며 일본군 성노예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자각하지 못했다.
올해에는 일본군 성노예제 의제에 관련하여 다양한 사건이 있었다. 올해 초 램지어 교수의 역사 왜곡 논문으로 일본군 성노예제 담론이 가열됐고, 이용수 씨는 정부에게 해당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4월에는 피해당사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결과가 1월의 승소와 다른 이유는 고등대법원과 대법원의 국제관습법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이었다. 국제관습법에 의한 국가면제로 인해 이탈리아 ‘페리니 사건’처럼 피해당사자가 전범국에 대해 대법원에서 승소했더라도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결과를 기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용수 씨는 법원의 판결에 항소할 의사를 밝혔다. 사법적 해결도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사회는 의제에 대하여 새로운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한다. 청년 단체 평화나비는 해당 사안을 해결하려면 점진적인 인식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피해당사자의 목소리에 주목하면서도 이와 관련된 근본적인 사회의 문제들까지 살피며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의 주역이자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청년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일본군 성노예제가 제국주의, 전시 폭력, 성 착취의 문제가 혼합된 복합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이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을 해당 의제와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전반적인 인식의 확장을 유도해야 한다. 청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이끌어 나간다면 일본군 성노예제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권 문제들까지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이재현 기자 (nyyj3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