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대선
이번 대통령 선거는 ‘87년 개헌 이후 최악의 선거’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개 돌리지 않고 우리 20대 목소리가 세상에 소멸되지 않기 위해 크게 외칩니다. 독자 여러분 역시 ‘20대, 대선’ 필진이 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윤석열-트럼프 '막말', 'SNS', '혐오 조장'
퇴행·답보의 정치를 경계하며
최근 모 언론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덕분에 평소에는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는 대선 후보들의 용안을 매일같이 코앞에서 보고 있다.
아직은 대선 후보들에 대한 신비감에 휩싸였던 때였다. 데스크로부터 대뜸 청주로 출장을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유세 현장을 스케치하라는 뜻이었다. 북소리가 마구 울려 퍼지고 그는 브이 포즈를 그리며 연단으로 당당히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말을 잊을 수 없다.
“고혈을 빨아먹는 (더불어)민주당 정권”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적나라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태연자약(泰然自若)했다.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원색적인 말들을 내리 내뱉었다. 그의 뻔뻔함에 아연했지만 ‘야마’를 ‘윤석열의 발언과 주변 유권자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한 간단한 스케치’로 이미 잡은 터였다. 인턴 기자로서 충실히 수행하여 곧장 기사를 발행한 다음날, 나는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개인적으로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지지하지 않는 나로서는 더없이 억울했던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윤 후보와 지지세력, 나를 손가락질했던 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문득 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개표가 되기 직전까지 주변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는 많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대통령이 됐다. 막강한 지지세력을 업은 그의 입담은 당선 전이나 후나 쉴새없이 공론장을 뒤흔들었다. 일례로 그는 힐러리와의 토론에서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비판에 “그래서 내가 똑똑한 것”이라며 뻔뻔함을 잃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그는 여성들을 향한 성추문을 비롯하여 트위터를 통해 입에 담기 힘든 혐오를 조장하여 국제 질서에 한바탕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밴디 리, 2018)에서 미국 유수의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나르시시즘 환자”로 진단하기도 했다.
국제 사회에서 수많은 이들이 그의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기탄없이 비판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그와 함께 ‘신자유주의’ 속 국민들은 점차 분열되고 극화되었으며 세계의 패권을 쥔 나라라고 보기 힘들 만큼 옹졸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조지아주를 비롯해 공화당은 CRT(비판적 인종 이론)의 폐지를 전격 주장하며 인종 간, 계층 간 갈등을 부추겨왔다. 퓰리처상을 통한 은근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퇴임 전날까지 멕시코 장벽의 현장에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 후보는 어떠한가. 현장에서 만난 국민의힘 당원들과 시민들이 입을 모아 “실언은 (그의) 문제”라고 순순히 인정할 정도로 그는 검찰총장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뇌까리고 있다. “주 120시간 노동”이나 “고등학교를 예술고, 과학고를 나누겠다”와 같은 시대착오적 발언은 예사다. 그는 “배운 게 없으면 자유가 무엇인지 모른다”며 차별적인 언사를 늘어놓기도 했으며 “멸치 콩(여순 사건 비하) 등의 파문을 수차례 일으켰다. 인스타그램 및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서는 “개 사과(국민을 개로 비유)”와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소동을 일으키며 혐오를 조장하는 한편 ‘사드 추가 배치’와 같은 대목으로 반중 정서를 과도하게 자극시키는 데 일조했다. 심지어 아직 재임 중인 문 정부를 향해 “3류 바보”라는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한편 “(대통령이 되면 문 정부를 대상으로) 적폐 청산 수사를 할 것”이라며 근거 없는 비방을 늘어놓았다. 그는 현장에서 “마타도어나 네거티브를 하기 싫지만”이라는 전제를 깔면서도 “(비방을) 안 할 수가 없다”며 상대를 향해 가차없이 폭격을 날리고 있다.
정책보다는 ‘정권 교체’라는 프레임이, ‘주장’보다는 ‘비난’이 항상 먼저인 그에게 트럼프가 비치는 현상은 그저 헛된 잔상일 뿐일까.
민의가 제대로 발로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정당’과 ‘후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반영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 선진국이 갖춰야 할 품격과 윤석열이 주도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결이 한참 다르다. 그의 정부를 가만히 그려보면 트럼프를 위시로 한 지난 4년의 미국을 쏙 빼닮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한 표를 던지기 전, 우리들은 더 이상 옛날의 미국이 아닌 미국을 바라보며 그렇게 따라가지는 않을지 한차례 경계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드는 우리의 정부이니까.
열흘이 채 남지 않았다. 그 뒤에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오정우 기자(ouj05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