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는 스물여덟 살이 마지막이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까마득히 나이 많은 ‘꼰대 언니’라 할지라도 좀 더 귀찮게 할 걸, 좀 더 연락할걸. 그저 후회만 남는구나. 멋있는 커리어우먼이 되겠다던 너는 이제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주저앉고 말았구나. 어린 날 종군기자가 되고 싶다던 네가 기자들의 손과 입으로 알려졌구나. 그냥 미안하다. 미안함에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이제는 제발 편해지거라. 언니가 해줄 말은 이것밖에 없어 미안하구나.
지난 22일(목),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신당역 여성 노동자 스토킹 살해 사건에 분노하며 페미사이드(여성 살해) 추방과 여성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박지현 前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지수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 진성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해 여성 및 소수자 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여성노동연대회가 주관한 이날 집회는 민주노총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됐다.
주최 측 한국여성민우회 최진혁 활동가는 개회에 앞서 짧은 인터뷰를 통해 “신당역에서 여성 노동자가 근무 중 동료에 의해 사망했다. 공사 측이 문제 해결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향후 여성을 당직근무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문제의 근본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하며, “여성이 일하는 공간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은 여성 근무 환경이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다. 사법부도 언론도, 사업장도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추모와 함께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며 이번 집회 개최 이유와 목적을 설명했다.
한편, 이날 현장에는 가수 신승은이 찾아와 추모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직후 집회 참가자들은 흰 끈을 이어 묶어 들어 올려 연대를 표명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후 검은 옷을 입고 흰 리본을 단 5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도심을 행진했다. 당일 행진은 보신각에서 시청역 방면을 돌아 광화문역을 거친 후 다시 보신각으로 돌아오는 경로였다.
박지현 前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발언
발언하기에 앞서 피해자분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정치인보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대한민국 여성으로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가 모인 이유는 신당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피해자 한 명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혐오하고, 스토킹하고, 불법 촬영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일이 비단 이번에만 있던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백 수천 건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얼마 전 이사를 했습니다. 저희 집 앞에서 유튜버가 스토킹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집 주소를 공개했던 분은 아직도 아무런 처벌 받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제 간 행사장에도 떳떳하게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한다. 저는 이 자리에서 묻고 싶습니다. 피해자가 숨어다니고 가해자가 떳떳하게 돌아다니는 사회, 살인해도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걱정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선진국입니까?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나라는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못하는 사회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스토킹 처벌법을 20년간 요구했지만 겨우 1년 전에야 시행되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 조치를 원하는 목소리 높았지만, 정치권과 정부는 듣지 않았습니다. 2019년의 KBS 기사에 따르면 여성 살해 30%에 스토킹이 있었다고 합니다. 직장도, 집도, 거리도, 그 어디도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2022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정상입니까. 이게 나라입니까. 언제 어디서나 불법 촬영을 걱정해야 하고,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안전, 그리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당연한 일들이 어째서 우리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그런 나라이기에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여성의 불안을 망상으로 취급하고, 개인의 일로 치부하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살 수 있었습니다. 왜 목숨을 잃어야만 이 사회가 조금씩 찔끔 앞으로 나아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남자친구를 사귈 때도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회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외침이 불씨가 되고, 들불로 타오르고, 여성 혐오와 차별을 낱낱이 태워 없앴으면 합니다. 저도 제 자리에서 마땅히 할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박지수 활동가 발언
지난 9월 14일, 역무원으로 일하던 여성 노동자가 자신을 스토킹하던 남성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이 사건을 언론 기사를 통해 알게 된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사건 당일부터 이 시간까지 하루에 수백 건의 관련 기사 쏟아지고 있는데, 기사 제목을 몇 개 살펴보겠습니다. 9월 15일 동아닷컴 ‘스토킹 가해자가 보복 범행, 신당역 역무원 살해 오래전부터 계획’ 9월 15일 SBS 뉴스 ‘스토킹 선고 하루 전날, 계획된 보복살인’ 이렇게 몇몇 언론들은 본 사건을 보복 범행, 보복살인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본 사건을 보복살인으로 명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보복이란 남이 저에게 해를 주면 저도 그에게 해를 줌‘ 이라는 뜻입니다. 보복 범죄라는 발언은 피해자가 불법 촬영과 스토킹으로 고소했기 때문에, 합의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가해자의 관점입니다. 또한, 보복 범죄라는 가해자 관점 표현은 스토킹의 심각성을 희석하고, 피해자에게 범죄의 원인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언론은 스토킹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인식을 경계하며, 보복 범죄가 아니라 스토킹 범죄로 표현하는 등 사건을 정의하는 데 신중해야 합니다. 물론 보복 범죄는 널리 쓰이는 말이며 법률용어가 맞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법률용어와 별개로 영향력을 고려하여 어떤 표현을 쓸 것인지, 혹은 쓰지 않을지 고민하고 대안 표현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언론은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자극적, 선정적인 보도 행태를 중단해야 합니다. 사건 직후 조선일보 등의 언론들은 사실 검증 확인 없이 피해자가 가해자와 연인 관계인 것처럼 자극적으로 보도해 유가족이 직접 항의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사들은 나중에 삭제되거나 수정되었지만, 클릭 수만을 위한 언론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에도 언론은 가해자가 어떻게 범죄를 계획하고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옛 주거지를 배회하는 CCTV 공개하고 범행 현장을 묘사했습니다. 또한, 가해자 신상 공개 이후 가해자 대학 동기를 인터뷰하는 등 가해자의 과거 행적 보도하는 언론도 보입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보도인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선정성에 주목하는 언론, 가해자 서사 주목하는 보도는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때도 지적되었던 문제입니다. 반복적이고 자극적인 언론들의 단독 경쟁은 공포심과 무력감만을 키울 뿐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제 무엇을 보도할지만큼 어떻게 보도할지 고민하는 언론을 보고 싶습니다. 사실을 반복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안하는 언론을 보고 싶습니다.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진성선 발언
가부장적 사회에서, 장애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하철은 장애 여성이 일상적으로 차별을 경험하고 안전을 위협받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한 중년의 남성이 ’혼자 어디 가냐, 내가 도와주겠다‘ 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말을 거는 내내 어깨를 치는 등 불쾌한 신체접촉이 있었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협소한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후 대합실을 나와 불편함을 말하자 오히려 그 남성에게 ’도와주려 했는데 고마워할 줄 모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의 의사를 전혀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경우를 매일 마주합니다.
장애 여성을 무성적 존재로 규정하면서, 장애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은 친절과 성의라는 이름으로 쉽게 정당화합니다. 매일 아침 8시, 장애인 권리예산 확보를 위해 지하철 투쟁을 합니다. 장애인은 의존적 사람으로 침묵할 때 동정받을 자격을 받지만, 권리의 주체로 등장하는 순간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혐오는 시민의 자격을 끊임없이 나누고, 위계를 공고하게 합니다. 이런 구조는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고 나올 수 없게 만든 역사와도 연결됩니다. 장애인은 사회가 안전하기 위해서 집안에만 있거나 시설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설 권력이 유지되는 이유는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시설과 공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당역 사건에서 무책임한 사법기관과 서울교통공사 정부 모두 책임지지 않는 공범입니다.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이 개인의 목숨을 희생해야 합니까. 불평등 사회는 위험하고 가난할수록, 소수자일수록 개인이 감당할 위험은 커집니다. 어느 곳에서든 누구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는 형식적인 것 아닌 실제 삶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십시오.
취재: 조수근
보도: 조수근
사진: 조수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