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트래블] 계획하지 않아서 특별한 제주 여행

  • 등록 2023.09.17 17: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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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방학에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호텔과 비행기 표만 예약하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라탔다. 3명 이상 여행을 갈 땐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나기 쉽지 않다. 사람마다 여행 취향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계획을 짜다 의견이 충돌하면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이유로 여행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첫날에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계획이 없는 게 불안해선지 핸드폰으로 근처 카페를 찾기 바빴다. 우리는 카페에 도착해 음료가 나오기도 전에 바다로 갈지 또 카페에 갈지 찾았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해가 졌고 우리 가족은 호텔에 도착했다. 그래도 여행의 묘미는 취침 전 시간이 아닐까 싶다. 수학여행에서 자는 척하며 수다 떨던 밤, 기숙사에서 사귄 친구들과 밤새 떠들던 날 등등. 나이가 든 후엔 식구 4명이 한 방에서 다 같이 자는 날은 여행이 유일한 것 같다. 이날도 밤을 지새워 하하 호호 수다 떨다 웃음소리에 잠을 청했다.

 

 

우리 가족은 방학마다 제주도에 간다. 1년에 2번 정도 말이다. 6년 전에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은 한 달 살기 이후 “모든 제주도 해수욕장의 짠 맛이란 짠 맛은 다 보고 왔다”고 장난삼아 얘기한다. 수영이 지루해지면 하루는 수영 대신 낚시를 했고 하루는 바다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여행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졌다. 낯선 곳에서 한 달 동안 적응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래서 제주도를 자주 찾게 된다. 평소 나는 현실을 반영한 그림만 그렸는데, 이때 그린 그림을 보면 인물화보다 풍경화와 추상화가 많다. 그림에서 달라진 심리상태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을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그림이든 영상이든 기록물로 남기면 차후에 봤을 때 그 당시 심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날엔 우도에 갔다. 우리 가족이 뽑은 제주도 바다 1위는 우도 산호해수욕장이다. 그러나 우도에 갈 계획이 없었기에 바다에서 놀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바다에서 놀게 되면 숙소가 없어서 공용 샤워실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다 큰 딸들을 공용 샤워실에 보낼 수 없다며 하루 종일 우도 민박과 펜션을 찾아봤다. 결국 하나 남은 곳을 예약할 수 있었다. 다만 예약한 곳이 산호해수욕장과 거리가 멀어서 숙소와 가까운 우도 하고수동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계획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며 우울해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좋았다. 하고수동해수욕장은 지나가다 본 적만 있지 물놀이를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동생은 물을 정말 좋아한다. 예를 들어 풀빌라에 가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수영을 한다. 그만큼 물놀이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바다 물놀이는 야외이기에 어려움이 있다. 피부가 약한 편이라서 살이 타지 않고 화상을 입거나 피부가 벗겨진다. 그래서 해녀분들처럼 입고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물놀이용 신과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바지 수영복, 손까지 내려오는 긴 팔 래시가드, 얼굴을 가려주는 챙 모자까지. 게다가 그 위에 티 하나를 더 입는다. 얼굴에는 선크림을 2종류 이상을 바른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야 편하게 놀 수 있다. 주로 물고기를 구경하고 조개를 잡고 튜브를 타는 등 그냥 물에 둥둥 떠다니며 논다.

 

 

3시간 정도 놀았을까. 물을 마실 겸 나와서 쉬고 있었다. 뒤에서 투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말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말 주인과 함께 목욕을 즐기는 듯했다. 갑자기 똥을 싸더니 그 물에서 다시 신나게 목욕을 했다. 주인 분은 슬리퍼로 똥을 으깨고 계셨다. 뒤에서 또 말 우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봤다. 망아지가 엄마한테 빨리 나오라고 소리치듯 발길질하고 있었다. 바다 안에 있던 말은 어미 말이었는지 물 밖으로 나와 망아지와 함께 나란히 걸어갔다. 처음 보는 장면이어서 그랬을까? 그림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획했던 산호해수욕장에 갔더라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말들의 뒷모습이 작아질 때까지 쳐다봤다.

 

 

셋째 날은 아버지의 버킷리스트인 국밥집에 갔다. 하루에 100그릇만 파는 집이라서 오픈런을 했다. 아버지는 아이 같은 미소를 보이며 가게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우리 가족은 1등으로 들어가서 주문을 했다. 아버지는 기대한 것보다 더 맛있다며 밥을 2공기 드셨다. 그리고 우뭇가사리로 만든 푸딩 가게인 ‘우무’ 본점도 오픈런을 했다. 맛별로 2개씩 골랐더니 거의 10만 원 정도 나왔다. 부모님께서 맛별로 드시더니 “내일도 꼭 오자”며 2호점을 찾아보셨다. 사람들이 오픈런을 하면서까지 일찍 일어나고 줄을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 봤다. 듣기론 남들보다 먼저 산다는 성취감이 크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그것보다도 호기심이 큰 것 같다. 얼마나 맛있길래 줄까지 서서 먹는지 확인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지루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먹은 음식들은 다 맛있어서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넷째 날은 카트를 타러 갔다. 카트를 타면 동시간대 경주한 사람들과 경쟁한 순위가 나온다. 1등을 하고 싶었던 나머지 브레이크도 밟지 않고 전력 질주를 했다. 코너를 돌다가 죽을 뻔했다. 사실 과장이다. 위험할 뻔했다. 결국 3번 만에 3등을 거머쥐고 나왔다. 내가 이렇게나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이처럼 여행은 일상에서 몰랐던 나 자신을 조금씩 보여준다.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에 타니 편안함이 온몸에 뿌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 같이 여행을 가도 누구는 힘들었을 수도 있고 누구는 좋았을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이번 여행은 여행다웠다고 말이다. 계획을 짜고 간 여행이라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면 그 기억이 더 오래 남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호기심, 사랑, 미움, 기쁨, 슬픔, 욕망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왔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만으로도 소중한데 계획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들과 일상생활에서 몰랐던 나 자신까지 깨닫게 돼서 더 값진 추억이었다.

한윤진 기자 3yun7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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