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보호 비영리 시민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주관하는 서울동물영화제(SAFF)는 다양한 동물 영화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축제다. 올해로 8회를 맞은 영화제는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과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 퍼플레이에서 열렸다.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은 ‘비로소 세계(The World That Therefore We Become)’로,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물을 세계의 공동 구성원이자 행위자로 바라봐야 한다는 전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난 2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비전과 풍경’ 부문 선정작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이 상영됐다. 해당 섹션은 최근 제작된 전 세계의 동물과 동물권 관련 주요 신작을 모은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특히 한국의 동물 운동을 다룬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이 영화는 앞서 개최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상은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선정된 한국과 아시아 작품을 대상으로 관객 투표를 통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작품에 주어진다.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웅담 채취용으로 사육되던 반달가슴곰들이 구조되어 강원도 화천에 있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생츄어리(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을 위한 보호 시설)로 옮겨진다. 영화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은 그곳에서 열세 마리의 곰을 돌보는 네 명의 여성 활동가의 일과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전작 <동물, 원>(2018)과 <생츄어리>(2022)를 통해 청주동물원과 야생동물구조센터의 동물들과 사람들을 다룬 왕민철 감독이 또 한 번 동물 영화를 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동물’에서 ‘동물을 돌보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영화는 눈이 한가득 덮인 설산의 풍경으로부터 시작해 곰들이 겨울잠에서 깨는 봄부터,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의 시간을 담는다. 활동가들은 곰의 우리를 청소하고, 먹이를 준비하고, CCTV로 곰의 행동을 살피기도 하며 더 나은 생츄어리를 만들기 위해 하루를 반복한다.
활동가들의 삶과 고민은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활동가 ‘민재’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집을 떠나 산골짜기에서 곰을 돌보는 일을 계속 이어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곰을 위해 일하겠다는 신념만으로 이 일을 하기에는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계속 이곳에 머물지, 생츄어리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옮길지, 그렇다면 이 일을 계속할 것인지 끊임없이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한다. 누군가는 곰을 돌보는 일에 진심이라서, 화천에서의 생활이 좋아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그곳에 계속 몸담기를 선택한다.
민재의 고민은 조금 다르다. 스스로 다른 활동가만큼 곰을 돌보는 일에 열정적이지도, 끊임없이 공부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도 잘 서지 않는다. 결국 그는 활동가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을 택한다.
끊임없이 불안정함에 흔들리고, 자신의 진심을 의심하는 한 청년의 모습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청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맞는 공부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나와 어울리는 곳인지 우리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골몰한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선의나 정의만으로 지속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진심의 척도를 스스로 가늠하는 일은 괴롭기만 하다.
그렇게 화천은 곰들에게도, 곰을 돌보는 이들에게도 ‘잠시 머무는 곳’이 된다. 영화는 다시 찾아온 봄, 떠난 이와 남은 이의 자리를 따스하게 비추며 끝난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왕민철 감독은 “동물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영화로 담게 된 동기가 있냐”는 질문에 “동물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대가 없이 마음을 쏟는 어떤 순수함이 있다”며, “그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왜 그들이 그렇게 몰두하는지를 궁금해하며 카메라를 사람에게로 향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이 영화는 곰의 이야기가 아니라, 곰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대부분 신념으로 일하기 때문에 개인의 삶과 일이 구분되지 않아 쉽게 소진된다”며, “그런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의 끝에선 화천을 떠나는 길의 풍경이 영사되고, 배경에는 이소라의 <Track 6>이 흐른다. 노랫말 속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한없이 불안해 보이는 곳”이라는 구절은 활동가들이 마주한 현실과 닮아있는 듯하다.
그러나 “어디든 나 있는 곳”, “어디든 나야”라는 마지막 가사는 불안한 청춘에게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곧 당신의 자리’라는 위로와,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는 응원을 건넨다. 헤매고 떠도는 일이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어쩌면 삶의 한 과정이라는 듯이.
[작품 정보]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2025, 112분)
감독: 왕민철 / 출연: 강지윤, 구시연, 김민재, 도지예, 이세림, 조아라, 최태규 / 제작사: 케플러49
박서연 기자(syeone31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