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대학 내 혐오와 차별 실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집담회가 열렸다. 11월 3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제8간담회실에서 ‘우리의 캠퍼스는 평등위험지대’ 집담회가 개최됐다. 이번 집담회는 청년성소수자문화연대 큐사인을 비롯해 노동·정치·사람,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이주민센터 친구, 장애인권대학생·청년네트워크,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진보대학생넷,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 등 39개 청년 단체가 주관했으며, 대학 내 인권 기구 42개 단위가 공동 주최했다. 진보당 손솔 의원을 비롯해 진보당·기본소득당·정의당·청년녹색당 등 정당 내 청년 기구도 공동 주관으로 참여했다.
집담회에서는 최근 대학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여성주의, 장애, 성소수자, 학생자치, 정당 활동 영역의 차별과 혐오 양상을 진단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행사는 큐사인의 평등약속문 낭독으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상대의 성별, 외모, 성별정체성 및 성적지향, 장애 여부,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학력, 소속 등으로 차별 혹은 평가하지 않는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낭독하며 집담회의 취지를 공유했다.
큐사인 활동가 창구(활동명)는 환영사를 통해 “대학 내 혐오와 차별은 오랜 시간 해결되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빈민 등 소수자를 향한 혐오 발언과 배제, 학교 당국과 학생회, 총동아리연합회 등 학내 조직의 차별적 행정, 인권 기구를 향한 백래시와 구성원들의 우경화는 대학 내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공동체 내 혐오와 차별을 주도하는 목소리는 사회 전반의 극우 세력과 결합하며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나는 소수자가 아니다’, ‘차별의 대상이 될 일이 없다’, ‘내 일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혐오의 출발점이 되고, 이는 학내 조직과 학생자치기구의 차별적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결과 대학 공동체에서 소수자의 존재는 지워지고, 평등에 대한 논의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여성주의, 장애, 성소수자, 학생자치, 정당 활동을 대표하는 각 단위의 기조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 과정에서는 대학 사회 내 인권 기구들이 직면한 존립 위기가 주요 쟁점으로 논의됐다.
큐사인 견우(활동명)는 최근 대학 내 인권 기구 폐지 시도와 관련해 ‘탈정치’ 담론이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 사회에서 이제 정치와 운동은 멸칭이 됐다”며 “인권이나 평등과 같은 가치를 언급하면 곧바로 낙인처럼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학생을 대표하는 기구들은 어떤 사상과 가치도 드러내지 못한 채 축제나 시험기간 간식 사업만 하는 조직으로 전락한다”고 비판했다.
견우(활동명)는 대학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에타)’의 공론장 기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견우는 “에타는 여러 차례 지적돼 왔듯 혐오 표현의 온상이 되고 있다”면서도 인원 모집과 행사 홍보를 위해 에타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짚었다. 특히 그는 “자동신고 시스템을 악용해 인권 단위의 게시글을 조직적으로 신고해 삭제하거나 계정을 정지시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반면 혐오 표현은 방치되면서 혐오가 확산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균관대 여성주의교지편집위원회 정정헌의 권우베, 초은(활동명)은 최근 정정헌이 준중앙동아리로 강등된 과정을 짚었다. 1917년 창간된 성균관대 유일 여성주의 자치 언론 정정헌은 지난해 4월 정기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의에서 준중앙 동아리로 강등된 이후 지난 11월 학생회관 편집실에서 퇴거됐다. 정정헌 대표자 초은은 “올해 중앙동아리 재등록이 부결되고 강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절차의 투명성과 기준의 일관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며, 동아리연합회 감사 참여 인원의 ‘평균적 기준’에 따라 판단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초은은 이번 강등 사태를 “개별 동아리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학내 인권 동아리와 운영자들이 전반적으로 겪어온 사회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인권 동아리 폐지와 강등은 특정 단체의 활동 부족이나 운영 주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인권 담론의 무게가 달라지고 대학 내 학생자치의 기반이 약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정승원 장애인권대학생 청년네트워크 전 대표자는 대학 내 장애인권 조직이 처한 현실을 “무관심과 동정의 프레이밍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그는 “장애인권 의제는 고등교육에 진입하는 장애인의 비율이 17% 안팎에 머무는 상황에서 소수자 의제 중에서도 더욱 소수”라며 “코로나19 당시 후순위로 밀린 장애인의 온라인 학습권과 진주교대 시각장애인 입시조작 사건은 장애인 고등교육의 구조적 차별을 드러낸 사례”라고 말했다. 진주교대 시각장애인 입시조작 사건은 2021년 진주교대에서 중증 시각 장애 학생의 불합격을 유도하기 위해 입시 성적을 조작한 사건을 말한다. 교육부 감사 결과 조작 사실이 확인되면서 관련자들이 중징계를 받고, 학교에 예산 삭감 등의 처분이 내려졌다. 장애인권대학생·청년네트워크는 이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교육부 간담회에 참석하는 등 문제 제기에 나서왔다.
이어 정 대표는 학내 장애인권 조직의 위기를 △ 총학생회의 인권 기구 통폐합 시도 △ 예산권을 쥔 학생회의 압박 △ 교내 구성원의 낮은 장애인권 인식 세 가지 구조로 설명했다. 그는 “예산과 조직 확대 없이 인권 의제를 한데 묶는 통폐합은 기존 장애인권 단위의 축소로 귀결될 뿐”이라며, 대안으로 대학 인권센터의 제도적 강화를 제시했다. 정 활동가는 “센터장의 전문성 요건을 강화하고, 외부 전문가와 장애·여성·성소수자 등 학생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며 “인권센터가 실질적인 우군이 될 때 학내 인권 단위의 존재 정당성도 함께 지켜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니(활동명) 전 이화여대 성소수자 인권운동 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 활동가는 대학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혐오가 확산되는 양상을 짚으며 “과거에 비해 퀴어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된 측면도 있지만, 혐오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2025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의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를 반대하는 대자보가 게시된 이후 “에브리타임을 통해 논쟁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트랜스젠더를 인정할 수 있는가’와 같이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가 공론장에 올려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수의 극단적인 혐오 발언이 ‘인기글’로 노출되면서, 혐오가 다수의 의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위니는 혐오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도 짚었다. 그는 “오프라인에서는 연대의 목소리가 가시적으로 확인됐지만, 온라인에서는 혐오 발언이 훨씬 더 크게 보였다”며 “혐오 한마디는 쉽지만, 연대의 한마디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에서 연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공격받는 위치에 서게 되고, 소진을 피하기 위해 커뮤니티 접속 자체를 줄이게 된다”며 “이 구조를 뒤집을 전략과 함께, 혐오 발언 필터링과 노출 시스템 등 커뮤니티 자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윤호 전 프로젝트 탈곡기 의장은 코로나19 시기 중앙대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탈곡기’ 운동을 언급하며, 에브리타임을 활동 공간으로 삼은 학생운동의 가능성과 위험을 함께 짚었다. 그는 “비대면 학사로 오프라인 접촉면이 사라진 상황에서 등록금 반환이라는 조합주의적 의제를 진보적으로 전유하고, 에브리타임을 통해 학생사회에 공론화하려 했다”며 “이를 통해 실제로 확대운영위원회와 학생총회 안건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전 의장은 이 같은 전략이 이후 한계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탈곡기 이후 학내 우파 세력들이 동일한 방식을 차용해 에브리타임을 활용했고, 결국 2021년 성평위 폐지를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다”며 “이는 에브리타임을 공론장으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운동이 자신의 공론장을 어디에 형성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에브리타임을 경유한 운동은 분명 가능성을 열었지만, 동시에 혐오와 반정치 정서와의 구조적 긴장을 피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발제를 맡은 정주영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당 대학생위원회 위원은 혐오와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 현실을 지적하며, 제도권 정치 안에서의 연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여성과 장애인 의제를 다루는 정당 내 조직은 존재하지만, 성소수자나 이주민과 같은 소수자 의제를 지속적으로 다룰 조직 역량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토론회가 국회에서 동시에 상반된 방향으로 열리는데도, 정당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현실”을 문제로 짚었다.
정 위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 활동가 차원의 실천이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정당이 소수자 의제와 거리를 두는 사이, 대학생 당원들은 비공식 조직과 당원 모임을 통해 그 거리를 좁히려 노력해 왔다”며 “혐오 주도 세력이 제도권 정치와 결합하듯, 소수자와 인권 감수성을 지닌 개인과 집단 역시 국회의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확장적 민주주의는 공적 영역에서의 접촉과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다”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혐오 정치 극복을 위해 좌절 속에서도 연대를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수영 기자(suyoung8649@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