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들은 이정구 총장 신임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마감일은 같은 달 5일이었다. 투표에 참여한 교수 57명 중 40명(70.2%)이 이정구 총장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신임에는 10명(17.5%)이, 무효에는 7명(12.3%)이 표를 던졌다. 압도적인 불신임이었다.
2014년에는 총장 신임투표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성공회대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했다. 교육부가 성공회대를 2014학년도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 중 하나로 선정해 1년간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없었고, 알코올중독 치료 전문 병원인 '카프병원' 인수에 실패했다.
#1. 2014년: 카프병원 인수 실패와 교수들의 총장 불신임
카프병원 인수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위기를 헤쳐 나갈 방안 중 하나였다. 한국주류산업협회(이하 주류협회)는 2010년까지 재단법인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이하 카프재단, 현 한국중독연구재단)에 매년 50억원씩 지원했고, 카프재단은 이 돈으로 카프병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주류협회는 2010년 말에 "지출 대비 사업 효과가 미진하다"며 카프재단에 운영자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2013년 7월부터 카프병원이 폐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긴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이듬해인 2014년 1월, 보건복지부는 성공회대학교가 카프병원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성공회대는 카프병원과 재활사업을, 주류협회는 연구와 예방사업을 나눠 갖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성공회대는 병원 건물을 비롯한 부동산과 운영기금 50억원을 받고, 카프재단의 노동자 55명 중 41명의 고용을 승계하려 했다.
기대는 컸다. 알코올 중독 환자들의 재활을 적극적으로 도와 성공회대의 교육 이념인 '열림, 나눔, 섬김'을 실천할 수 있었으며, 시민사회 및 의료계와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아가 병원 부지와 건물을 확보할 수 있었다. 부동산 자산을 취득해 교육부의 대학 평가 항목 중 '재단의 수익용 자산' 부분 점수를 크게 올릴 수 있었다. 성공회대는 해당 영역 점수가 낮아 편입생을 정원보다 적게 받아야 했다. 점수를 높게 받으면 본래 정원만큼 편입생을 받을 수 있고, 등록금 수입을 늘릴 수 있었다.
그해 1월 21일에 SBS의 보도에 따르면 병원 건물과 토지의 추정 가치는 800억원대였다. 성공회대가 카프병원을 운영하며 발생할 수 있는 적자는 주류협회가 학교 측에 1년 치 운영기금 50억원을 지급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교육부가 학교를 구조개혁 대상으로 삼은 상황에서, 카프병원 인수는 대학의 운영 방안과 교육 가치 양쪽에 부합하는 방안이었다.
성공회대가 개교 100주년 기념 행사를 치른 날은 4월 30일이었다. 카프병원 인수가 한참 지연된 때였으며, 재정지원대학 선정에 대한 학교 측의 대응은 미진해 학생들의 우려가 큰 시점이었다. 행사 후 한 주가 지난 5월 7일, 교수회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이사회와 총장을 상대로 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수들은 성명서를 통해 법인이사회와 총장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요구했다.
"하나, 성공회대학교 법인이사회는 열악한 법정부담금, 법인 전입금, 수익용 기본재산, 정원 축소로 인한 재정 부족분을 긴급히 확충하기 위해 이사의 자격 요건을 개방하여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국내외 각계각층의 역량 있는 분들을 이사로 영입해야만 할 것입니다. 또, 성공회대학교 총장의 자격 요건을 개방하여 성공회대학교의 교육이념과 대한성공회의 선교이념을 존중하는 유능하고 양심적인 총장을 선임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합리적이고 개방적이며 공정한 선임절차를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 성공회대학교 총장은 이미 늦었지만, 현재 대학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학의 구체적 비전과 장기발전계획을 시급히 수립하고 경영위기에 대한 타개책도 같이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 성공회대학교 교수를 비롯한 직원, 학생, 동문 모든 구성원은 '더불어 숲' 정신으로 단결하여 현재의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새로운 100년을 같이 열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이사회와 총장의 대응은 없었다. 그 결과가 교수들이 6월에 실시한 총장 신임 투표였다. 투표에 참여한 교수들 중 70% 이상이 이정구 총장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7월 11일, 성공회대는 결국 카프병원 인수를 포기했다. 학교는 보건복지부에 총장 명의로 인수를 철회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카프병원 노동조합 측에 따르면 병원 노조와 성공회대는 인수 의사를 밝힌 1월부터 6개월간 운영 계획을 논의했고, 이를 토대로 합의문도 작성했다.
그러나 성공회대 이사회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합의문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카프병원을 독립법인이 아닌 수익용 재산으로 인수하는 방안까지 마련했지만, 협상은 부결되었다. 카프병원 노조는 성공회대가 내세운 인수 조건으로는 알코올중독 치료 사업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건은 성공회대 측이 병원을 인수할 경우 건물을 매각하고, 자금 지원은 해줄 수 없으며 병원의 독립 법인화도 진행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학교는 병원 인수에 따른 어떠한 우려 사항도 감수하지 않길 원했다.
병원을 인수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 보다는 당장의 이해관계가 앞섰다. 성공회대는 대학의 수익용 자산을 마련하고 싶었다. 주류협회는 50억원의 출연금을 내고 싶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임금이 밀린 병원 노동자들에게 집회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국세청은 술에 건강증진기금을 매기지 말라는 주류협회의 뜻을 받아들여 세운 카프재단을 털어내고 싶었다. 이 모든 의사가 합쳐진 결과가 인수 부결이었다.
재활을 원하던 이들은 이듬해 5월에 천주교가 카프병원을 인수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산하 가톨릭대학교는 지난해 카프병원, 한국중독연구재단과 함께 인재 양성 및 학술연구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수익용 자산을 확보할 기회와 교육 이념을 실천할 방안, 학술 연구의 새로운 길을 가져간 학교는 성공회대가 아닌 가톨릭대학교였다.
#2. 2016년: 법원에 가야 했던 총장 후보
2년 뒤인 2016년, 학교는 개교 이래 첫 총장 후보 공모제를 시행했다. 정부재정지원 대학 탈락 이후 개혁에 대한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컸고, 대학 또한 변화하는 교육 환경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회 성직자만 출마할 수 있는 규정은 여전했다. 하지만 공모제를 통해 이사회의 추천을 받지 않은 성직자도 입후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사회는 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를 구성했다. 총추위는 이사회에게 총장 후보를 추천할 권한을 갖고 있다.
교수회는 총추위의 후보 선정을 앞둔 6월 1일에 두 가지를 의결했다. 하나는 교내의 신부를 추천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이정구 총장의 연임을 반대한다는 뜻이었다. 교수들은 이미 2년 전에 투표를 통해 이 총장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교내 신부를 추천하지 않음으로써 이사회에 성공회 신부만 총장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을 제외해야 한다는 의사를 전달하려 했다. 논의 중 두 명의 교수가 각각 한 명의 성공회 사제를 추천한 바는 있었으나, 이는 의결 내용과 별개인 교수 개인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총추위를 거치며 교수회의 뜻이 일그러졌다. 6월 3일, 총추위 구성원이었던 교수는 교수회가 의결한 내용을 총추위에 전달했다. 그러나 총추위원들은 이틀 전에 교수 두 명이 추천한 사제와 이정구 총장을 후보군에 포함시켰다. 여기에 추천위원들이 제시한 신부 두 명과 공모제를 통해 입후보한 A신부를 포함한 여섯 명이 후보가 되었다. 이후 언론보도에 따르면 A신부는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교수들이 개혁적인 인물이라 평가한 바 있다. 5월 17일부터 2주간 진행한 총장 공모에 지원한 후보는 A신부뿐이었다.
위원들은 후보군이 적다는 의견에 따라 대한성공회 성직자 20명으로 후보군을 늘렸다. 이 중 박사 학위 소지자를 남기고, 전·현직 주교는 제외시켰다. 이 중 세 명이 총장 선거 후보자가 되었다. 이정구 당시 총장과 A신부, 그리고 총추위에서 선정한 후보 중 한 명이었던 B신부였다. 2016년 7월 8일에 열린 제189차 이사회에는 이들을 후보로 한 총장 선임 투표를 진행했다. 이사회는 1차 투표를 통해 최하위 득표자를 제외하고, 2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를 총장으로 선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의결정족수 미달로 선출자는 없었다.
이에 이사들이 직접 총장 후보자를 선정했다. 제190차 이사회에서 총장을 선출하며, 각 이사들이 후보를 2명까지 추천하기로 했다. 재적 이사 모두가 찬성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이사회는 같은 달 28일에 이정구 총장과 B신부를 포함한 네 명의 성공회 신부를 총장 후보로 추천했다. 공모제를 통해 입후보한 A신부는 총장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네 차례에 걸친 투표 끝에 이정구 총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2016년 8월 23일, A신부는 학교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신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학교 측은 총장 공모제를 시행해 총장 선거를 진행했으나, 공모 절차를 통해 입후보한 사람은 A신부밖에 없었다. 그러나 총장 후보 공모에 응하지 않은 이들도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나아가 이사회는 이사정수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후보를 추천해 이정구 총장을 선임했다. 이는 학교가 정한 총장 선출 절차를 스스로 어긴 것으로, 학교는 A신부만을 적법한 총장 후보자로 보아 선출 과정을 밟아야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기각했다. 판결에 따르면 총장 공모제 공고문의 내용만으로 지원자에 한해 총장 선임을 진행한다는 내용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요지였다. 이사회의 총장 후보자 추천 권한을 위임받은 총추위는 A신부를 포함한 후보 3인을 이사회에 추천하기로 결정했고, 이사회는 기존에 시행한 공모제와 별도의 과정을 통해 총장을 선출했다.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A신부가 주장하는 내용만으로는 선거 결과를 무효로 돌리긴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A신부는 상고했다. 그러나 법원은 각하 판결을 내렸다. A신부 또한 다른 후보와 마찬가지로 이사회가 결의한 내용에 따라 후보 총추위의 추천을 받은 후보라는 점, 학교는 총장 임면을 심의하고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으며 후보자 추천 등 선임 방식을 정하는 권한도 그중 일부라는 것이 근거였다.
총장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내 구성원은 학교법인 이사를 제외하고는 교수들뿐이었다. 당선자는 교수들이 이미 2년 전에 투표를 통해 불신임을 결의한 이였고, 후보 추천 과정에서 교수들이 연임을 반대한 이였다.
#3. 2018년: 교수협의회와 선거 정관
2018년, 이정구 총장은 임기 중 사임의 뜻을 밝혔다. 이사회는 이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6월 안에 후임 총장을 인선하기로 했다. 차기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교수협의회는 이사회에 소통을 요구했으나, 이사들이 거절했다. 이때도 2016년처럼 총추위를 구성했으나 후보를 공모하진 않았다. 총추위는 5월과 6월에 한 차례씩 회의를 거쳐 김기석 교수와 서울교구 소속 김홍일 신부를 후보로 선정했다.
선거는 제200차 법인 이사회 회의에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이정구 총장은 이사들에게 교수협의회가 이사회에 총장 선출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교수협의회가 총장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소통한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사가 "이사장이 교수협의회 대표와 대화를 하며 의견을 나눴으며, 정관상 교수협의회가 후보를 반드시 인터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총장의 인사, 경영관 발표나 대화는 총장이 판단해서 할 일"이라며 선거를 진행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고, 이에 총장 선거를 진행했다.
총장 선출 방식을 학교가 정할 수 있는 진짜 이유
학교법인이 총장을 임명하거나 선출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사립학교법 제53조에 따르면 학교법인 또는 학교경영자는 총장을 임용할 수 있다. 성공회대 정관 제31조는 이사회가 장과 교원의 임면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는 점을, 제32조는 이사 중 과반이 찬성하면 안건을 의결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제43조에 따르면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명한 이가 총장이 될 수 있다. 임기는 4년으로 하며, 총장은 성공회 성직자여야 한다. 앞서 인용한 판결문에 관련 규정으로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대학은 각자 정한 규정에 따라 총장을 선출할 수 있다. 이는 대학이 국가나 외부 이권의 개입 없이 학문의 자유를 지키려면 자율적으로 모든 사항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대학은 연구하고 가르치고자 하는 바와 이를 뒷받침하는 인력, 시설 등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총장은 이러한 대학의 운영을 총괄하고, 대학 발전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변화에 대응하는 데 중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직책이다. 총장의 결정은 대학 내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준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총장을 대학이 자유롭게 선출할 수 있을 때, 대학은 연구와 실천을 위한 자율을 보장받을 수 있다.
2015년에 교육부가 국립대학교의 총장직선제 폐지를 종용했을 때 대학 안팎으로 반대에 부딪혔던 이유다. 교육부의 2015년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이하 ACE 사업) 시행 계획에는 총장직선제를 폐지한 대학에 평가 점수 3점을 더 부여하겠다는 조항이 담겨 있었다. 이를 평가하는 지표의 이름은 '대학 거버넌스 선진화'였다. 적은 점수 차이로 사업 선정 여부가 갈릴 수 있었으며, 총장직선제를 지키는 대학에 해당 항목 점수를 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총장직선제 폐지를 유도하고 있었다.
당시 교육부는 총장직선제를 시행하면 선거 과열로 인해 학업 및 연구 분위기가 훼손될 수 있으며, 후보자를 중심으로 파벌이 생겨 이들이 주요 직위나 보직을 나눠 갖는 등 폐해가 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각 국립대의 교수들과 교직원, 학생을 비롯한 모든 구성원은 일제히 반발했다. 기존에는 각 대학의 구성원이 총장을 선출하며 대학 운영 방침을 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나, 교육부가 총장 선출 과정에 개입해 자신들이 시행할 정책을 학내 거버넌스보다 우선시한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각 대학이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예산 지급 여부와 총장 선출 권한을 연관 지어버려 교육부의 정책이 대학의 자율보다 앞서는 상황을 만들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공회대의 정관에 따르면, 총장을 선출하는 이들은 법인이사회다. 이사회는 총장 후보 추천 권한을 총추위에 위임하고, 추천받은 후보자를 두고 이사회에서 투표를 진행해 총장으로 선출한다. 이사회는 지난 세 차례의 선거에서 이러한 간선제를 통해 총장을 뽑았다. 학생 사회를 비롯한 대학 구성원 전반의 제도 개편에 대한 목소리는 꾸준히 있으며, 일부 제도가 선거 과정에서 더해지거나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간선제라는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현 총장인 김경문 사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는 교수회와 직원 노조의 의견서, 대학평의원회를 대상으로 한 후보 정책 설명회 관련 자료를 이사들이 공유하는 순서가 더해졌다. 선거를 11일 앞두고 열린 제5차 대학평의원회에서는 총장 후보자를 초청해 정책 설명회를 개최하기로 의결했다. 대학평의원이 아닌 교원이나 학생은 어떤 이가 총장 후보가 될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교수와 직원 노조는 서면으로나마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나, 학생들이 의견을 낼 방법은 없었다. 투표를 통해 의결하는 과정은 여전히 이사회의 투표였다. 학생 차원에서 의사를 전달한 건 김경문 총장 선출 이후였다. 제37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김 총장의 임기가 시작하는 시점에 입장문을 발표해 우려의 뜻을 밝혔다.
"지난 6월 30일 대학평의원회에서 진행된 김경문 총장의 정견발표와 질의응답 답변은 우려의 마음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김경문 총장은 본인의 장점이 빠른 의사결정이며 원칙과 절차에 따른 소통을 중시한다고 답하였습니다. 빠른 의사결정이 장점이라는 것은,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배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지난 기간 동안 대학 본부의 빠른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주된 대상은 언제나 학생들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이번 학부제 개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교육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학 평가 결과에 따라 각 대학의 지원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학내 구성원들은 총장 선출 권한을 민주적으로 나눠야 한다는 논의를 이어왔다. 총장은 대학의 운영 방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총장의 결정에서 자유로운 학내 구성원은 없다. 그렇기에 어떤 이가 총장이 되어 교육 공동체를 이끌어갈지 논하는 것은 대학사회 내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일이며, 총장을 선출하는 것은 이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실천이다. 그러나 대학의 '생존'과 그 여부를 쥔 교육부가 요구하는 바를 어떻게 충족시키냐는 질문이 구성원들의 의결보다 앞섰다.
9년 전, 교수들은 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에 따른 대책을 총장과 이사회에 요구했으나 그에 대한 답을 받지 못했다. 이에 교수들은 투표를 진행해 불신임 의사를 밝혔으나, 이사회는 불신임 결과를 받아 들었던 총장을 다시 후보로 만들어 재선까지 시켰다. 한 후보자는 법원에 가서 이사회가 번복한 총장 선출 절차의 정당성을 물어야 했다. 법원은 대학의 고유의 권한이라는 답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총장 선출 절차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은 이사회가 다른 학내 구성원의 의사에 앞서 총장을 선출할 수 있다는 근거가 아니다.
총장을 뽑을 권한과 그 방식은 이사회가 정할 수 있지만, 이는 대학의 자율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우선하는 내용이다. 총장의 결정은 교육 공동체를 움직일 수 있다. 반대로 학내 구성원들은 자신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누구를 총장으로 선임할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교육권일 수도 노동권일 수도 있으며, 대학 사회 내 자신의 권리라는 측면으로 귀결된다.
현재까지 대학 내 구성원들 중 총장 선출 과정에 참여해 자신의 의사를 펴나갈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교수들의 의견조차 매 선거에서 반영되거나 생략되며 수렴 여부가 달라진다. 학생들은 자신이 받을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가 어떠한 가치를 가진 구성원이길 바라는지 선출 권한을 가진 이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총장직선제를 비롯한 대학 사회의 민주화보다 앞서는 내용은 대학의 생존과 대책이었다. 그러나 간선제를 통해 총장을 선출한 뒤,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진행한 위기 대응은 현재까지 실패로 드러났다.
강성진 기자 (helden00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