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을 위한 콘텐츠 제작 백서

  • 등록 2024.08.20 12: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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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캠페이너 젤리장 인터뷰

콘텐츠의 바다 위에서

 

출근 준비부터 이동, 업무, 식사, 퇴근,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좋아하는 콘텐츠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와 같은 콘텐츠를 즐긴다면 동질감을 느낀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품의 질 향상만큼이나 어떤 콘텐츠를 활용하여 상품을 소비자에게 노출시킬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자격증이나 영어 성적이 주를 이루던 대학생들의 스펙은 언젠가부터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 직접 만든 콘텐츠를 게시하고 그것이 얼마나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는가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콘텐츠의 폭발적인 증가가 양질의 콘텐츠 증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콘텐츠는 크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주목), 목적과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고(전달), 이를 통해 수용자의 행동을 이끌어내는(변화) 3가지 기능을 가진다. 대학생 서포터즈, 기업 홍보팀, 공공기관 등은 하루에도 수백 개의 카드뉴스와 홍보영상이 쏟아 내지만, 대부분은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에 의의를 둘 뿐 유의미한 결과를 창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여기 SNS를 넘어서 수용자와 직접 소통하고, 자신의 목적을 명명백백히 전달하고, 결국 수용자의 행동 변화를 만들어내는 콘텐츠 제작자가 있다. 공공 캠페이너 젤리장, 그는 자신을 ‘소통과 관계의 관점에서 공공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에 가까워지기 위해 가장 쉽고 작은 방법과 도구를 만드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공공문제의 해결을 사회에 내맡기는 대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가져오려 하는 그의 캠페인은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퇴근 시간만 되면 광역버스 정류장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긴 버스 대기줄을 만든다. 정류장을 지나가려는 사람들은 항상 줄을 서 있는 사람과 부딪히거나, 어디로 지나가야 할지 눈치싸움을 하기 마련이다. 젤리장의 해결책은 간단하지만 효과적이었다. 하얀색 마스킹테이프로 괄호와 화살표를 만들어 붙인 그의 ‘버스 정류장 괄호라인 캠페인’은 특별하고 복잡한 메시지 없이도 서로를 배려하는 풍경을 만들어 냈다.

 

 

임산부를 위하여 2013년 지하철에 처음 도입된 임산부 배려석. 평소에도 임산부를 위하여 비워둘 것을 권장하지만, 사람이 조금만 많아지면 이내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앉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임산부가 타지 않아도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어야 하는 이유를 낱낱이 설명하는 대신, 빈 임산부 배려석에 곰인형을 놓아 마치 자리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경기도 안산시 석수초등학교는 2009년 담벼락을 허물고 모든 주민이 사용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했다. 지역 주민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학교를 돌본다는 차원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술병과 담배꽁초, 음식물 쓰레기가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젤리장은 벽을 다시 세우자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물론 일반적인 벽은 아니었다. 그는 문제 상황이 담긴 노란 보드로 가벽을 설치하고, 펜을 매달아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 가벽에는 ‘아이들이 있는 우리들의 공간’이라는 메시지도 담겼다. 아이들이 모두를 위해서 공간을 내주었다는 그 취지, 그리고 희미해지던 공간에 대한 애착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보름 간의 캠페인이 끝나자 주민협의체는 ‘열림식’이라는 행사를 매년 자체적으로 개최하고, 담벼락을 다시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제도적 논의에서 어떻게 공간을 유지·관리할 것인가 이야기하는 소통의 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

 

공공 문제를 해결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 젤리장을 대학알리가 직접 만나보았다.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공공 캠페이너 젤리장(Jelly Jang)이다. 공공 캠페인은 공공의 의제를 전략적으로 설득하기 위하여 행하는 모든 행위이다. 공공 캠페이너는 그 캠페인을 구성하고, 어떤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가능하면 이 모든 내용을 시민들과 함께 다루려는 사람이다.

 

Q. 일상적인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처음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는지?

 

원래 공부 기반이 PR(Public Relationship, 조직과 공중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홍보 및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경영 방식)이었고, 그중에서도 정책 PR에 관심이 많았다. 정책 PR은 정부가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서 펼치는 다양한 선전 행위인데, 지금의 방식이 너무 재미가 없어 스스로의 방식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시작은 ‘나의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을 공공의 영역으로 여긴다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문제를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해결해 보자며 길거리로 나선 게 첫 활동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것을 캠페인이라고 부르는지도 몰랐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구조화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결국은 캠페인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Q. 공공 캠페인의 주제를 정하는 과정이 어려워 보인다. 일상에서의 문제가 캠페인의 주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나에게 불편한 모든 것을 공공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불편함이 캠페인의 주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불편함을 다른 사람도 느끼고 있는지, 즉 그 불편함이 개인의 문제에서 공동체의 문제로 확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면 내가 코로나19 시기에 우울감을 느꼈는데, 알고 보니 그 우울감이 사회 전체에 만연하던 상황처럼 말이다.

 

그와 반대로 누구나 공공 아젠다라고 생각하는 문제를, 일상의 영역으로 좁혀서 해결하는 방식도 있다. 우리는 흔히 공공 문제, 의제라고 하면 젠더 이슈, 세대 갈등, 일자리 문제처럼 너무 큰 것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범위가 너무 넓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지고, 결국 특정 집단이나 전문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거대한 문제를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로, 내 일상의 영역으로 좁혀서 무언가라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그것이 캠페인의 중요한 역할이자 젤리장이 하고 있는 공공 캠페인의 핵심이다.

 

 

버스 정류장 괄호라인 캠페인도, 원래는 법질서 캠페인을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법질서, 너무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일상으로 좁혔더니 법질서의 주요한 사례로 줄서기를 제시할 수 있었고, 줄을 어디서 서나 생각해 보니 버스 정류장에서 서고, 이렇게 꼬리를 물어 결국 ‘줄서기 질서를 시민의 입장에서 재편해보자’는 캠페인이 나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하고, 저작권을 오픈 소스로 열어두어 확산이 가능하게 한 것 역시 주도적인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Q. 이런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사고방식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면, 기존의 방식이 너무 답답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하려고 했다. 대학에서도 내가 어떤 메시지를 내고 싶은데, 창구는 너무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처음으로 대나무숲이라는 페이지가 생겼는데 여기도 연애 상담이라면 모를까(웃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올릴 정서는 아니었다. 결국 기존의 채널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의식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지금의 사고방식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사실 평소에 이런 사고를 하더라도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고,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나는 다행히 시대적인 정서가 그런 쪽으로 흐르던 시기에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디지털 환경의 변화로 나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서는 사람을 응원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기에 이렇게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하나의 캠페인을 제작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방법은 굉장히 많지만, 모든 방법은 메시지를 만들고, 미디어를 구상한다는 큰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메시지는 문제의식에서 나온다. 문제를 청취하거나 경험을 느끼거나, 캠페인은 이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활동에서 그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얼마나 다각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누군가가 A라는 상황을 문제로 볼 때,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반된 관점을 이해하고, 각각의 시선이 개별 캠페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중 제작자가 시급하다고 느끼거나, 맥락에 적절하다고 느낀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캠페인의 시작점이다.

 

캠페인의 본질은 조율과 설득이다. 상반된 두 주장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내고, 그들이 비판과 대립 대신 왜 이 대립이 시작되었는지를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즉 문제를 논쟁이 아닌 논점의 단계로 되돌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캠페인의 역할이다. 캠페인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 대신, 그 지원과 제도가 원활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현실과 제도의 간극을 메워나가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메시지가 정해졌다면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고민한다. 이때 매체나 미디어는 단순히 SNS, 대중매체, 디지털 매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의 조도, 대화 과정에서의 눈빛이나 제스처, 심지어는 가방의 색도 캠페이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기에 전부 미디어가 될 수 있다. 캠페인의 제작과 준비는 이 모든 요소들을 활용하여 수용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이다.

 

Q. 양극단의 사람들 모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달 방식이 쉬워야 할 것 같은데,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달 방식은 어떻게 설계하는지.

 

항상 효과적일 필요는 없다. 물론 캠페인이 효과적이라는 건 좋은 일이지만, 효과의 측정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하는가에 따라 다르다. 질문에 대해서 오히려 가장 효과적인 캠페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 역으로 질문드리고 싶다. 마케팅 PR은 이익 증대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활동의 효과를 돈으로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익, 공공의 영역에서는 그것을 산출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어떤 캠페인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기만 해도 된다’는 목표를 가질 수도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 아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점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가 목표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아야겠다’는 목표처럼 넓이를 추구할 수도, ‘사람들의 행동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목표처럼 깊이를 추구할 수도 있다.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 명확한 목표와 기준점의 설정이 공공 캠페인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Q. 캠페인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목표가 천차만별일 것 같다. 직접 작업했던 캠페인을 하나 예시로 설명해 줄 수 있는지.

 

 

연트럴파크, 그러니까 경의선숲길 연남 구간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협의체의 요청으로 시작한 ‘I want to fall asleep’ 캠페인이다. 갈등의 핵심은 소음이었다. 밤에 시끄러워서 잠에 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문제를 민원으로 제기하기 때문에, 공공 캠페이너는 그 민원이 공익을 위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때도 현장에서 2주가량 소음 발생 여부, 소음의 크기, 사람마다의 차이 등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의선숲길 방문객에게 “이곳의 소음이 심각하다. 왜 이렇게 떠드냐”고 질문했을 때 “공원이니까 떠든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길이고, 공원이고, 공공장소니까 엄청난 고성방가가 아니라면 떠들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는 거다.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잠에 들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 “여기 사람이 사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결국 문제의 진짜 원인은 장소가 가진 맥락을 서로 다르게 파악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캠페인은 삶의 터전과 공원이라는 두 입장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활동으로 바뀌었다. 방문객에게 전할 메시지는 “조용히 해주세요” 대신 “여기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해주세요”가 되었고, 방식도 민원 내용을 현수막에 걸어놓는 대신 베개에 ‘I want to fall asleep’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경의선숲길 곳곳에 배치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베개는 소음 때문에 잠에 들기 어렵다는 주민들의 입장을 투영한 매체이자, 동시에 장소와 방문객의 특성을 고려한 매체이기도 하다. 캠페인 당시 경의선숲길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장 트렌디한 공간이었다. ‘I want to fall asleep’이 적힌 베개를 야외 전시처럼 나무에 매달고, 잔디에 쌓아둔 것은 트렌디한 공간에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요소를 지칭하는 신조어)한 장치를 만드는 시도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베개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베개에 담긴 메시지를 읽고, 결국 베개에 담긴 주민들의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는 접근 방식을 만들려 노력했다.

 

Q. 캠페인은 모든 사람이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당초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인형을 두는 캠페인이 인형의 훼손 및 분실, 위생 문제 등으로 철거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훼손이나 분실, 의도 왜곡을 예상 못 한 것은 아니다. 캠페인은 전략적 대상이 존재하지만, 대상 외의 사람들도 캠페인을 접할 수 있기에 다양한 이슈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캠페인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 그것을 접했을 때의 리스크를 얼마나 촘촘하게 예상하고 관리하는지가 전략이 얼마나 촘촘한지를 확인하는 지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편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즉 모든 것을 예상할 수는 없다고 전제한다. 그렇기에 모든 리스크를 분류하고, 분석하여, 전략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활동가로서의 두 가지 태도를 견고히 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초긍정 마인드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인형이 없어지면 다시 가져다 놓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캠페인을 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있으면 설계 단계에서도 누구나, 언제든 부담 없이 다시 할 수 있는 조건으로 세팅하게 된다.

 

두 번째는 이유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인형이 분실되었다면 ‘가져갔네’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왜 가져갔을까’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좋아서 가져갔구나’라는 자기위로가 될 수도 있고, 다시 인형을 채워넣는 해결 방안이 도출될 수도 있고, 혹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채워볼 수 있을까요? 혹시 남는 인형이 있다면 가져다 놓아보는 건 어떨까요?”와 같이 새로운 캠페인이자 제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임산부 배려석 테디베어 캠페인’의 목적은 전국 모든 지하철에 인형을 놓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임산부 배려석의 이야기를 이런 관점으로도 다뤄볼 수 있다’는 하나의 선택지를 늘려주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이런 행위가 있었고, 공감한다면 당신도 해보셨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위하여 캠페인 과정과 결과를 영상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공공 캠페인의 목적은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 되어야지, 캠페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Q. 석수초등학교 아이들이 있는 우리들의 공간 사회실험 프로젝트도 처음 본 순간 ‘아이들이 아무 의미 없는 낙서만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교장선생님이 제일 걱정이 많으셨다. 캠페인 초반에 교장선생님이 벽 앞을 지키고 계시길래 이유를 여쭤보니 아이들이 자꾸 연예인 이름 적고, 취지에 어긋나는 걸 적으려고 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교장선생님께 “보통 이런 담벼락이 생기면 욕설을 적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어떤 교육을 하셨길래 아이들이 정말 사랑하는 것들을 적네요. 너무나 유의미한 것들입니다. 내버려두셔도 될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하니 그제야 들어가셨다.

 

 

앞서 이야기했듯 공공 캠페이너는 명확한 목표와 기준점의 설정이 중요하다. 이 캠페인의 최종적인 목표는 공간을 애틋하게, 공간을 다시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벽에 좋은 말을 적든, 낙서를 하든 모두 캠페인 성공에 기여한 셈이다. 공공 캠페인에서 우려는 당연히 발생한다. 만약 우려가 너무나도 크다면 캠페인의 방향 전환할 수는 있겠지만, 우려를 이유로 활동을 그만둔다면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어떤 식으로 소통하고 조율해 나갈 것인지를 기민하게 생각해 내는 것 역시 캠페이너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Q. 혐오 정서가 심해진 요즘에는 캠페인 활동이 더욱 어려워졌을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던 경의선숲길 ‘I want to fall asleep’ 캠페인이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거기에 부정적인 댓글도 많았다. 빨갱이 활동이다, 사대주의다, 정치색이 어떻고, 별 의견이 다 달렸다. 그렇지만 별로 눈치 보지는 않았다.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의견 중에 정치적이지 않은 아젠다가 어딨는가.

 

안타까운 점은 부정적인 댓글이 아니라, 서로 눈치 보는 대한민국의 정서였다. 어떤 점이 불편했다는 의견은 등 뒤에서 익명으로 이야기하는 대신 “나는 불편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정면에서 토론할 수 있어야 하고, 나 역시도 “나는 정치적 의도가 없이 이것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정당하지 않은가.

 

최근 다른 캠페인 팀과 함께 그런 댓글을 외면하는 대신 우리가 하고 있는 공익 활동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나는 어떤 부분에서 자부심을 느끼는지 대댓글로 다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다. 혐오 정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동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해결책도 해보자는 취지다. 건강한 대화는 비판을 무시하는 대신 그 비판을 받아들이고, 대안을 제시하여 함께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토론과 대화의 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한다.

 

Q. 공공 프로젝트의 재원은 주로 어떻게 확보하는지.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나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직업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지금까지는 공공 캠페이너라는 직업이 없었으니 내가 그 개념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프로젝트가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례가 필요했다. 캠페인이라는 방식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동시에 내가 캠페인 분야에서 문제 해결 비용을 받을 만큼 전문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초기에는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캠페인 활동을 하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시대상이, 10년 전이니 당시라고 하는 것도 좀 그런데(웃음) 아무튼 많은 청년들이 ‘내가 뭔가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SNS로 만나고,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려고 했다. 서로의 사례가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영역이 되더라.

 

 

그때 많은 분들을 만났다. 다 쓴 연탄에 꽃을 꽂아서 ‘뜨거울 때 꽃이 핀다’는 메시지와 함께 거리 곳곳에 내놓는 작가, 변화가 필요한 공간을 찍어서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 작업을 하는 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버스 정류장 노선도에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표시하는 화살표 청년도 있었다. 이렇게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연결하니 자연스럽게 직업의 테두리가 되었다.

 

그러자 세 가지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기관이나 기업이 의뢰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전체 디렉팅 비용을 받고, 그 안에서 재료비, 활동비 등을 해결하는 형태로 진행한다. 두 번째는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안까지 전부 마련하여 관계 기관을 찾아가는 자기 PR 방식이다. 세 번째는 공공 문제가 접근 방식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시민들을 모아서 문제 해결 방안을 프로그래밍하고 디렉팅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공공 캠페이너 활동을 하며 얻은 젤리장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도출된 해결 방안을 실제로 실행하며 공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덧붙이자면 공공성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경제적 대우를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공공 캠페인은 특정 기업의 이익을 위한 일반 마케팅 행위와 달리,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더 많은 공공의 이익이 창출되니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공익 활동을 한다고 하면 봉사직으로 보거나, 희생을 요구하는 정서가 있다. 이분들이 희생당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사회의 전면에 나서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 때, 모두가 좋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Q.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은 많이 받아보셨을 테니, 기대에 비해 결과가 아쉬웠던 캠페인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코로나19 시기에 청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친구가 아이들과의 교감이 어려워진 것에 대하여 힘듦을 토로한 적이 있다. 손 씻기 스탬프 프로젝트는 학생들에게 도장을 찍어주고 손을 씻게 하던 미국의 한 공립학교 선생님을 다룬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캠페인은 코로나19 상황을 반영하여 18단계 손 씻기 동작 중 제일 안 하는 3가지 동작을 도장으로 만들어 등교할 때 손에 찍어주고, 손 씻기 동작에 집중하며 지워오라고 이야기하는 리워드 방식의 게임을 제안하며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당시 친구와 동료 교사들은 삭막해진 교실 분위기가 도장 하나로 많이 바뀌었다며 좋은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했지만, 날이갈수록 코로나 19가 심해지며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게 아쉽게 끝나고 말았던 캠페인이지만, 혹시 기사를 보고 시도해보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같이 하거나, 아니면 자발적으로 해주셔도 좋다.

 

Q. 많은 대학생들이 동아리, 대외활동, 서포터즈 등의 이름을 걸고 콘텐츠를 만들지만, 막상 결과물을 보면 발행 자체에만 의의를 두고 콘텐츠의 질에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안타까운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극복할 만한 방법이 있을지.

 

자기 일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본다. 그런 일들은 내게 주어진 역할이지만, 그 역할이 꼭 나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때로는 기능적으로 할 수도 있고, 또 그게 엄청나게 개선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일에 이런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내가 하는 모든 활동이 기능적으로만 해결된다면 너무 무의미한 삶 아니겠는가. 어떤 활동이든 기능적으로 쳐내는 작업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중 하나 정도는 나의 삶에 적극적으로 관여되고 있는, 내가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어본다면 어떤 노하우 없이도 적극적으로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것을 찾는다면 그 주제는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결국 나만 가지고 있기 아깝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범위를 확장하려는 시도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반복된다면 나와 관련 없다고 생각했던 주제에도 이러한 태도가 적용되며, 결국 삶의 기능적인 면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경험은 취업 시장에서의 경쟁력과 연결된다. 취업 시장에서는 스펙도 중요하지만, 그 스펙에 대해서 내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경험이라도 기능적인 활동은 한 줄로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내가 진심을 다했던 주제는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감각이나 쾌감, 또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모두 이야기하려면 백 줄로도 부족하다. 그런 경험이 각자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Q. 마지막으로 대학알리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남기자면.

 

 

 

공공 캠페인이라는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도록 하는 동기에는 일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감도 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한몫한다. 내가 느끼는 책임감에 공감하는 동료가 많아지고, 더 이상 외롭게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다음 캠페인을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지금보다 동료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서로 눈치 보지 않고, 공공을 향해 전략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이 길에도 많은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시 이미 공공 캠페인의 길을 걷고 계신 분들 중에 ‘나만 이런 일을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저에게 꼭 연락을 주셨으면 한다.

 

진심을 다하는 콘텐츠

 

매일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콘텐츠 중에 젤리장의 캠페인처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고, 콘텐츠의 목표와 기준점을 담아낼 수 있는 메시지를 설정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콘텐츠가 하나라도 있을까. 스펙을 채우기 위한 수십 개의 콘텐츠도 좋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주제를 가지고 진심을 담아서 만드는 하나의 콘텐츠가 더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한다.

 

몇몇 사람들은 젤리장의 캠페인을 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이야기한 사람 중에 직접 버스 정류장에 테이프를 붙이고, 임산부 배려석에 곰인형을 놓고, 경의선숲길을 돌아다니며 배게를 놓은 사람이 있을지. 중요한 것은 "어떻게"라는 질문이 아닌 "일단 해보자"라는 결심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99%의 사람들은 그 불편함을 무시하고 이내 잊어버리지만, 1%는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인식을 바꾸고, 감춰진 진실을 알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하여 결국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공공 캠페이너 젤리장, 그는 어떻게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냐는 우문(愚問)에 '나의 삶에 적극적으로 관여되고 있는, 내가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주제를 찾는다면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는 현답(賢答)을 내놓았다. 양질의 콘텐츠는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보기만 해도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주제로,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메시지를 담아, 그것에 대해 가장 잘 알고있는 나만의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든다면, 누가 감히 그 콘텐츠를 양질이 아니라 평가할 수 있겠는가.

김태섭 기자 taesub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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