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기사는 '외대알리 지면 40호: 비틀어 보자'에 실린 기사로, 2025년 8월에 작성되었습니다.
올해 하반기, 한국외국어대학교(이하 외대)는 제13대 총장 선거를 치른다.
처음으로 교수·교직원·학생 3주체가 참여한 지난 선거에서 당선된 박정운 총장은 재임 기간 외대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유사중복학과를 통폐합하고 AI융합학부, 기후변화융합학부 등 신설 학부를 설치하며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추진 과정에서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차기 총장은 이러한 전임 총장의 공과를 이어받아 침체 중인 우리 대학을 도약시켜야 한다. 인문계열 기피 현상, 시설 노후, 재정난 등 외대가 직면한 여러 구조적 문제 속에서, 새 총장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막중하다.
외대알리는 차기 총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학생과 교직원의 목소리를 통해 살펴본다.
차기 총장에게 전하는 ‘학생들’의 목소리
1. A학점 비율 조정
서울캠퍼스에 재학 중인 A씨(사회과학대학, 4학년)는 A 학점 비율 확대를 요구했다. 그는 “현재 한국외대의 A 학점 비율은 타 서울권 대학에 비해 너무 적다”며 “성적 A 비율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외대의 A 학점 비율은 최대 35%로, 서강대(40%), 성균관대(50%), 경희대(45%) 등 타 서울권 대학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이렇게 낮은 A 학점 비율은 좋은 학점을 취득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취업 등에 있어 불리함을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실제 외대는 2024년 ‘상위 15개대 졸업생 학점 인플레 최소 대학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백분율 90점 이상, 즉 우수한 학점을 취득한 졸업생들이 주요 대학 중 가장 적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적 A 비율 조정은 학생들 사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차기 총장의 과제로 평가된다.


2. 수업 개설 확대
서울캠퍼스에 재학 중인 B씨(AI융합대학, 2학년)는 수업 개설 확대를 요구했다.
그는 “현재 학교에 개설되는 수업의 종류가 한정적이고 수가 적다 보니,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보다 학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자연스럽게 소극적인 수업 태도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업 개설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 재정 구조 다양화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에 재학 중인 D씨(서양어대학, 3학년)는 학교 재정 구조 다양화를 과제로 꼽았다.
그는 “현재 학교 운영이 지나치게 등록금에 의존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며 “재정 구조의 다양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외대 재단은 부담해야 할 *법정부담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고 있다. 법정 부담금을 전액 납부하는 재단이 드문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외대의 법정부담금 대비 법인 부담 비율은 타 대학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법정부담금: 사립학교 교직원의 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을 지원하기 위해 법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 법인이 비용을 전부 책임지는 게 원칙이나, 일부를 교비회계에서 부담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법인의 재정 부담 축소는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우리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59.4%였다. 이는 대학가에서 양호하다고 평가받는 기준인 50%를 훌쩍 넘긴 수치라는 점에서 재단의 적극적인 재정적 역할의 필요성이 확인된다.
4. 학생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이어서 D씨는 차기 총장은 학생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아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학교는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통보식 운영을 반복했다”며, “대표적으로 LDT 혜택 축소 및 중복학과 통폐합 등 사안에서도 학생들과 사전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기 총장은 학생들과 직접 소통을 확대하여 학교 운영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다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박정운 총장은 임기 첫해인 2022년에는 여러 차례 간담회와 ‘총장과의 대화’를 통해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려는 노력을 많이 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에 나선 적이 없다.

2023년 진행된 AI융합대학 신설 등 학제 개편에 관한 학생 간담회 또한 부총장이 총장의 자리를 대신했다.
총장과의 직접 소통은 학교의 최고 결정권자와 의견을 나눈다는 점에서 신뢰 형성 등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차기 총장에게는 보다 활발한 직접 소통이 기대된다.

‘저학년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관건’
학생 사회의 오랜 요구 끝에 이번 총장 선거부터 학생 투표 반영 비율이 12%로 확대됐다. 이는 교수진의 투표 반영 비율(76%)보다는 적지만, 직전 선거의 학생 투표 반영 비율(5%)에 비해 두 배 이상 확대된 수치다. 이에 따라 앞서 다룬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반영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된다.
다만 총장선거에 대한 저학년들의 낮은 관심은 총학의 과제로 평가된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B씨(2학년)와 C씨(1학년)는 고학년들과 달리 총장선거가 진행된다는 사실은 물론, 학생들이 총장을 직접 뽑을 수 있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B씨는 “단순히 교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정도로 생각했지, 총장이 구체적으로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몰랐다’며 ‘당연히 총장 선거 같은 게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C씨 역시 “올해 총장 선거가 진행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선거가 진행된다면 투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저학년들의 총장 선거에 대한 인식 부족은 선거 흥행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생회 중심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직원들은 총장 선거를 어떻게 바라볼까’
이번 총장 선거부터 교직원들도 학생들과 동일하게 12%의 투표권을 갖게 됐다.
이에 대해 한국외대 직원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투표권 확대를 통해 모두가 목소리를 내고, 후보자들이 경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노조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100년 외대를 넘어선 학교 발전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한편으로 “여전히 교수의 투표 반영 비율이 76%로 압도적인 상황”이라며, “학생과 교직원의 투표 반영 비율을 대학평의원회 구성처럼 22:22:56으로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장기적인 과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차기 총장에게 전하는 ‘교직원들’의 목소리
1. 어학 위주 학제 개편
노동조합은 차기 총장의 과제로 “학제 개편과 그에 따른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역대 총장들이 우리 대학의 어학 위주 학제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하며 “최근 AI, 반도체 등 사회 수요에 맞는 학과를 개설하고 관련 교육과 연구 확대에 일정 부분 성과도 거둔 것이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대내외적인 인식이 어학이라는 정체성에 머물러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며 “대학 집행부와 교원뿐 아니라, 직원, 학생까지 아우르는 의견 청취를 통해 합리적인 학제 개편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 교직원 처우 개선
이어 노동조합은 교직원의 차별적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2010년 이전 입사자와 이후 입사자 사이에는 1호봉의 초봉 차이가 존재한다. 업무 강도나 근무 시간 등 합리적인 이유가 아닌 오로지 입사연도 기준으로 임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입 직원 채용에도 지원율 감소와 조기 퇴사 등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즉 장기적으로 학교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설명이다.
그들은 “모든 직원이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출발할 수 있는 기본값을 설정하는 것이 모두의 성장을 위해 가장 시급한 기초작업”이라 주장하며 입사연도에 따른 초봉 차별 철폐를 강조했다.
이어 “현재 팀장들은 중간관리자로서 팀원보다 더 많은 업무와 책임을 가지고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그에 따른 대우나 보상은 없다”며 “팀장 보직수당을 신설하여 책임감 고취와 조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3. 소통의 리더십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은 소통의 리더십 필요성을 강조했다.
“차기 총장은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 그 정책 방향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각 구성원의 목소리에 경청해 주시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특히 현재 교내에는 재정상황 개선, 송도캠퍼스 활성화 등의 당면 과제가 산적해 있다”면서, “교내 구성원뿐만 아니라 법인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현 박정운 총장은 교직원과의 소통에서도 다소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례로 2024년에는 노사 간 합의로 인사위원회가 의결한 직원 포상 명단을 뒤집어 비판이 일었다.
당시 위원회는 70주년 개교기념일 직원 포상 후보 16명(후보 11명, 예비자 5명)을 확정했으나, 박 총장은 이 결정을 무시하고 명단에 없던 직원 4명을 추가해 새로 구성한 명단을 의결에 부쳤다. 이에 반발한 노조가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며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외대를 변화시킬 총장에게 1표를’
올해 하반기에 선출될 제13대 총장은 단순히 임기 4년을 채우는 자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 외대는 내부적으로는 시설 노후와 재정난, 외부적으로는 인문계열 퇴조에 따른 대학 위상 하락이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차기 총장의 4년 임기는 외대가 침체를 딛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새 총장은 대내외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철저한 비전으로 대학 재도약의 초석을 다져주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학생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필요하다. ‘나는 안 해도 되겠지’가 아니라, ‘내가 해야 바뀐다’는 책임감으로 투표에 참여할 때, 외대 변화의 출발점이 마련될 것이다.
강승주 기자(math.sang.j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