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덤볐다

  • 등록 2022.03.08 21: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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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대선

 

이번 대통령 선거는 ‘87년 개헌 이후 최악의 선거’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개 돌리지 않고 우리 20대 목소리가 세상에 소멸되지 않기 위해 크게 외칩니다. 독자 여러분 역시 ‘20대, 대선’ 필진이 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두 번째 대선 투표이지만, 세 번째처럼 느껴진다. 2012년 겨울밤, 고등학교 선생님 컴퓨터로 몰래 대통령 선거 개표를 지켜봤다. 당직 선생님께서 오셔서 위로해주셨다. "선생님, 어떻게 박근혜가 당선될 수 있어요?"

 

고교에 입학하자 늦은 사춘기가 왔다. 틀어박히는 게 일상이었고, 시선은 온통 전자기기로 쏠렸다. '아이팟'과 '갤럭시 플레이어' 같은 기기가 유행할 때였다. 팟캐스트 앱을 켜서 들을 게 없나 찾아봤다. 그리고 관심도 없던 정치를 '나꼼수'로 배웠다.
 

 

 

 

 

김어준 말은 모두 믿었다. 정봉주, 김용민, 주진우는 나의 우상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떨어뜨리질 않나, 광화문에 몇만 명을 모으질 않나. 노무현 대통령의 복수를 해내겠다는 그의 다짐은 나를 매료했다. 그는 문재인을 지지했고, 나도 문재인을 지지했다. 물론 '나꼼수'로 정치 공부를 끝내진 않았다. 잡지가 도착하는 매주 수요일만 기다렸다. 자율학습 시간에 '한겨레21'과 '시사인'을 탐독하고, 그 대신 공부를 게을리했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특색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제주로 간 소년은 자존감을 정치로 채우려 했다.

 

대학을 광주로 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좁은 곳에서 벗어나 정치 이야기를 더욱 진보적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곳에서 만난 진보 정치가들은 내 희망을 박살 냈다. 여당보다 무지했고, 야당보다 무식했다. 이념에 사로잡혀 하고 싶은 말도 선뜻 꺼내지 못했다. 소수 정당 사람들은 서울 눈치 보기 바빴다. "광주선 정치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광주에서는 민주당 외에 힘들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광주를 떠날 때까지 민주당만 지지했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까지 민주당에만 투표했다. 

 

2014년, 비극이 우리나라를 휩쓸었다. 모든 사람은 비극을 추모했다. 다만 '@08__hkkim'은 우리와 생각이 달랐다.

 

 

경찰은 이 트위터 계정의 주인을 이재명의 아내 김혜경으로 판단했다. 검찰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지만,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이후 이재명을 대선 후보에서 제외했다. 다른 후보가 많으니 대선에는 얼굴 볼 일 없으리라 여겼다. 

 

그 많던 잠룡은 다 어디로 갔나. 안희정, 김경수, 박원순이 정치 인생을 종료했다. 2018년 지선에서 이미 정치 생명을 다했다고 여긴 이재명만 남았다. 그리고 그는 민주당 후보가 됐다.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은 사라지고, 청와대에 들어갈 상상만 하는 이재명만 남았다. 그는 자기 행운을 상정하지 않았고, 그가 과거에 저지른 부도덕한 일들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이재명은 자신의 도움 없이 당선된 국회의원을 두고 '이재명의 민주당'이라 칭한다. 송영길은 민주당 당원을 안티로 만들었다. 김어준은 팟캐스트에서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공영방송에서 이재명을 밀고 있다. 주진우는 기자 일을 때려치웠고, 제2의 김어준이 됐다. 김용민은 본인이 출마한 총선처럼 또다시 선거를 망치고 있다. 나의 우상이던 '나꼼수'는 그렇게 추해졌고, 소속감을 느끼던 곳에선 나 같은 이들을 두고 '똥파리'라 부른다.

 

대통령 지지율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오르고, 민주당은 이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덤비라"고 한 기자의 말은 여전히 유효한가. 덤비라길래 덤볐다. 민주당에만 투표한 청년은 처음으로 민주당이 아닌 정당에 투표한다. 

 

황치웅 前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의장

chiwoong@kakao.com

황치웅 기자 facti3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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