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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중앙대 성평위가 폐지되었다. 2014년, 총여학생회가 사라진 후 7년 만의 일이었다. 성평위는 발언권을 갖지 못했고 해당 안건 찬성측으로 나선 토론자는 없었다. 비록 졸속이라는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대학가에 몇 남지 않은 교내 여성주의 단체가 학외로 밀려나는 일은 뼈아프다. 성평위가 떠나고 남은 부실은 장애인인권위원회(장인위)가 차지했다. 장인위는 기다렸다는 듯 성평위원장에게 연락해 남은 짐을 빼 줄 것을 요청했다. 성명문이나 대자보를 발표하는 최소한의 연대도 없었다. 학내 구성원들이 폭력의 교차성에 서 있다는 믿음, 그래서 연대해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은 현실의 건조함 앞에 무너졌다.
적지 않은 중앙대의 여성 학우들도 성평위의 폐지에 찬성표를 던졌다. 성평등이 이미 충분히 이루어졌다는 총학의 입장에 동의하는 이들이었다. 이는 다시금 폐지 옹호 근거가 되어 ‘여성이 필요로 하지 않는 여성 기구의 정당성'을 되물었다. 실제로 안성캠퍼스의 총여학생회 회장은 직접 폐지안을 발의했고 이듬해 총학생회 회장이 되었다. 새로운 총학 회장은 취임 몇 달 지나지 않아 학생회비를 개인적으로 횡령한 혐의로 자진 사퇴했다. 그는 학생회비 사용 내역 공개를 끝내 거부했다.
한편, 윤석열은 대선 공약을 통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로운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발탁된 김현숙 장관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여가부 폐지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가 여성가족부의 폐지에 동의한다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의힘 여당 의원들은 이에 대해 "여가부의 폐지일 뿐 여성 정책의 폐지는 아니다"며, '부처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설명했다.
대학사회에서 일어난 일은 사회에서 재현된다. 2014년 총여학생회가 사라지고 성평위로 개편된 것, 나아가 성평위마저 없어진 모습은 대학 사회만의 일이 아니다. 여성 기구 당사자가 직접 여성 기구의 폐지를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성인권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기구가 사라진다는 것이 공정의 한 방법론이라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 양성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의 역사가, 여성의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대 성평위는 여전히 '뿌리'의 이름을 달고 활동하고 있다. 폐지 이후 뿌리는 학교 밖에서 더 넓은 스펙트럼의 연대를 꾸리고 있다. 제도권 밖에서 저항담론을 이야기하는 뿌리의 활동은 ‘게릴라’를 연상시킨다. 마찬가지로, 여성가족부가 사라진다 해도 어딘가의 '뿌리'가 이야기를 이어 나갈 것이다. 제도권의 바깥에 있는 소수자의 목소리는 가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언제나 진실 너머에 있고 소수자는, 뿌리를 잇듯이, 산산히 흩어진 사실들의 맥락(脈絡)을 찾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