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트래블] 1박 2일 룰렛 돌리기 랜덤 여행의 기록, 무작위의 미학

  • 등록 2023.09.03 21: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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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은 유난히 무덥다. 매해 여름 날씨가 더욱 뜨거워지는 것은 느끼지만 올해는 정말 살벌한 더위가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날을 실내에서만 보냈다. 집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는가 하면 외출을 해도 야외활동을 최대한 자제했다. 나름 즐거운 나날이었지만 계속해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다 보니 문득 울적함을 느꼈다. 울적함이 쌓이니 생각이 많아지고 걱정이 늘어갔다. 이 부정적인 감정을 날리기 위해 나는 굳은 마음으로 여행을 결심했다. 함께 갈 친구들을 모았고 그렇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 부산으로 떠났다. 이 여행기는 지난 8월 17부터 18일까지 있었던 이야기이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장소, 교통수단, 식사 메뉴 등 모든 요소를 룰렛을 돌려 랜덤으로 결정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았다. 장소 룰렛에는 제주도, 강릉, 속초, 부산 등 다양한 곳들이 있었고 그중에 부산이 당첨됐던 것이다. 교통수단 역시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중에 랜덤으로 KTX가 선택됐다.  

 

 

그렇게 KTX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역시나 부산의 날씨는 뜨거웠다. 그럼에도 부산역 광장은 여행을 온 것 같은 차림의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 중 한 친구의 아버님은 부산 동래구에서 양식 레스토랑을 운영하신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아버님의 가게로 향했다. 3년 전 겨울,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왔을 때 이 가게에 왔었다. 3년 만에 다시 방문한 것이었다. 가게 입구에는 능소화가 예쁘게 피어있었다. 겨울에 왔을 때와는 다른 외관이었다.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고 아버님께 오랜만에 인사도 드렸다. 3년 전 기억들도 새삼 떠올랐다.  추억을 입가심하고 우리는 숙소를 잡아둔 광안리로 옮겨 갔다.

 

 

동래에서 시내버스를 40분 정도 타고 달려 가니 숙소 앞에서 하차했다. 숙소는 광안대교가 바로 보이는 해안가 앞에 붙어있었다. 숙소의 창문 밖으로 광안대교와 광활한 바다가 보였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다가 해가 질 무렵이 돼서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  메뉴는 회와 치킨으로 결정했다. 음식을 포장해 와 창밖으로 야경을 보며 술자리를 가졌다. 술을 마시며 진솔한 대화가 오갔다. 

 

우리는 모두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제 취업을 준비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이렇게 시간을 맞춰 여행을 오는 게 더 힘들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새삼 그런 사실이 아쉽게도 느껴졌다. 그렇기에 여러모로 이번 여행이 더욱 소중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직접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나이가 다가올수록 많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극도로 고도화된 사회에서 해야 하는 선택과 실행은 하나하나 그 압박감이 굉장한 것 같다. 하나의 잘못된 선택이 내 미래를 망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갑작스레 룰렛을 돌려 떠난 이 여행이 맘 편히 즐거울 수 있었다. 그저 재밌을 것 같아서 시도해 본 랜덤 여행이 무작위의 미학을 느끼게 해줬다. 우리는 룰렛이 정해주는 대로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됐고 선택된 루트에서 온전히 즐길 거리에만 신경 쓸 수 있었다. 고민이 한결 정리되는 편안한 여행이었다. 그렇게 깊은 밤이 지나갔고 다음 날 우리는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를 탔다. 

 

 

여름 볕의 더위는 지나간다. 이 여행도 지나간다. 즐거움도 지나가고 불안함도 지나갈 것이다. 시간은 어떤 차별 없이 언제나 지나가기 마련이다. 사회로 나가기 직전에 느끼는 이 걱정들도 언젠가 지나가길 바란다. 모든 게 다 지나가고 난 나의 모습은 부산의 야경처럼 찬란하게 빛나길 바란다. 선택과 고민의 늪에 빠져있는 당신, 랜덤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박재윤 기자 jberrywhere@outloo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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