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를 禁하다] 정육점 빨간 조명 아래 돼지고기⋯죄책감과 불편함 사이 어딘가

  • 등록 2024.07.11 12: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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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를 禁하다]
돼지의 죽음을 다룬 <샬롯의 거미줄>, 아이들에게 부적절?
불편함 vs 불편함 : 식용동물의 삶과 가격상승의 충돌

국가나 자본, 종교 등 지배세력에 의해 금지된 책들을 금(禁)한다는 의미의 [금서를 禁하다]는

해로운 걸작, 불온서적 등을 다룹니다. 금지된 책이 왜 금지됐는지 그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둘러봅니다.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길고양이들을 마주치게 된다. 누군가는 못 본 체 지나가기도, 누군가는 시간에 맞춰 사료를 주기도 하며, 또 어느 누군가는 가끔 마주치는 고양이들을 위해 가방 속 작은 간식을 넣어 다니기도 한다.

 

 

주인 없는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500만 반려동물 가구 시대에 걸맞게 산책하는 강아지들도 선선한 저녁 시간대에 자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고양이, 강아지 등 가족으로 들일 수 있는 동물에게는 연민과 사랑의 손길을 잘 건네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식용동물에게는 정육점 냉장고 속 온도처럼 차가운 시선만이 가득하다.

 

봄의 어느 날 허약하게 태어난 아기돼지 '윌버'의 헛간 살이 이야기를 담은 <샬롯의 거미줄>은 2006년 미국과 영국의 한 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됐다. 우리가 관심 두지 않는 식용동물의 죽음을 다룬 내용이 어린이들에게 적절치 않다는 이유였다.

 

아이들에게 죽음은 부적절하다

 

 

<샬롯의 거미줄>의 주인공인 돼지 '윌버'는 허약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농장주 딸인 펀의 도움으로 펀의 삼촌인 호머 주커먼에게 팔려 그의 헛간에서 생활하게 된다. 겨울이 되면 식탁에 오를 것을 두려워하던 윌버에게 헛간의 천장 한 켠에서 살아가는 거미 '샬롯'은 윌버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하며 거미줄로 윌버를 위한 특별한 글자를 써 내린다.

 

신비한 현상으로 돼지 품평회에 내놓아진 윌버는 상을 받으며 더 이상 햄이나 베이컨이 돼야 할 걱정이 사라지지만, 샬롯의 수명을 다해 거미알을 낳고 죽게 된다. 헛간으로 돌아온 윌버는 샬롯의 새끼 거미들, 그리고 다른 헛간의 동물들과 함께 여러 해를 보내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윌버는 태어나자마자 봄 돼지는 허약하단 이유로 죽여질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나 헛간에서 살게 되지만, 여전히 겨울이 되면 죽임을 당해 식탁 위에 오를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렇기에 <샬롯의 거미줄>은 단순히 거미와 돼지의 아름다운 우정이 아닌 식품이 되기 위해 태어난 동물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고기의 삶을 외면해야 할 필요는 없다. 동네를 산책하는 귀여운 강아지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식탁에 올라온 맛있는 고기반찬에는 경쟁적인 젓가락질만을 행하는 모습은 동물에 대한 사고와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식용동물은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태어난 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식용동물에 대한 대우는 외면하고 싶을 만큼 잔인하고 끔찍하다. 대한민국 도축의 실상이 어떠한지 들여다보자.

 

불편함 vs 불편함 : 식용동물의 삶과 가격 상승

 

종종 뉴스를 통해 고속도로를 달리던 운반 차량에서 떨어진 돼지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에서 떨어진 돼지들은 골절로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다.

 

우리는 오늘 저녁 반찬이 될지도 모를 돼지가 도축 과정에서도 편안하지 못한다는 '불편함'을 가진다. 하지만 식용동물의 삶에 대한 관심과 연민은 여기까지다. 정육점의 빨간 조명 아래 놓인 돼지고기를 고를 때 가격 상승이라는 또 다른 '불편함'을 우리는 느낀다.

 

 

비좁은 수송차량을 지나 도축장에 도착한 돼지들은 계류장으로 옮겨진다. 그 곳에서 물로 대충 씻은 후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옮겨진다. 저항하는 돼지들에게는 전기봉이 사용되기도 한다. 전기긱절기, 혹은 이산화탄소 기절법을 통해 기절한 돼지들은 단단하게 굳는다. 곧바로 방혈이 시작된다. 방혈은 온몸의 피를 빼내고 도축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전기기절기를 통한 기절방법은 이산화탄소 기절법보다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산화탄소 기절법을 권장하지만, 부담되는 비용 탓에 민간 도축 업체는 여전히 전기기절법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동물복지 도축장'이 도입되고 있다. 눈 뜬 채로 도살당하는 동물들을 방지하기 위해 도축과정에서 동물들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자는 의도다. 동물복지 도축장으로 지정받기 위해선 동물복지 담당자가 △동물의 하차와 방혈에 대한 기록·관리 △동물 학대를 막기 위한 CCTV 설치 △동물의 몰이를 위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방법 금지 등 여러 조건이 요구된다.

 

동물복지 도축장으로의 전환 및 확대는 사육 농가가 생산비 확대와 소득 감소를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현실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미디어에 나오는 열악한 도축 환경에 놓인 동물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허나 현실은 죽기 위해 태어난 동물들에게 최소한의 대우를 하기 위한 환경조차 경제적 잣대 탓에 마련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꽤애애액!"⋯비명섞인 사육장

 

 

도축장 시설의 열악함을 본다면 사육장에도 높은 기대를 할 수 없다. 현대화되지 않은 사육장은 바깥보다 더운 공기, 어두운 실내, 과다 밀집된 돼지들로 비명소리가 난무한다. 좁은 돈방에는 여러 돼지들이 분뇨가 묻은 채 누워있다. 돼지들이 싼 오줌과 똥은 바닥재의 틈 사이 배관으로 떨어져 하루에 두 번 분뇨처리장으로 옮겨진다.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돼지는 깨끗한 동물이다. 먹이를 먹는 곳과 배변을 보는 곳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인간처럼 '화장실'을 따로 두는 셈이다. 돼지는 무척 똑똑한 동물이기도 하다. 동물학자들은 돼지의 지능이 개보다 높으며, 3~4세 인간 아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꿀꿀대는 소리와 비명을 지르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로 서로 소통하고 공감한다. 그런 돼지들이 분뇨를 뒤집어쓴 채 사육장에 누워있으니 따가운 고성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돼지는 행복할 때 낮고 느린 "꿀꿀" 소리를 내고, 괴로울 땐 높고 빠르게 "꽤액" 비명을 지른다.

 

돼지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축사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돈사의 악취를 줄이고 재래식 돈사를 철거하며 지원금 최대 상한액을 상향 조정하는 등 돼지 축사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전북지역에서 진행된 '스마트 축사 사업'의 경우 융자 80%, 자부담 20%로 양돈장 주인의 부담이 커 축사 시설 현대화는 바라는 만큼 진행되지 않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AWARE)가 2021년 국내 양돈 돈가 13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81곳(60.4%)이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동물복지 기준이 높은 축산 제품을 구매할 의향은 91.8%로 높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참여율이 0.3%인 이유는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양돈장과 소비하는 소비자 모두 돼지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의향이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서민음식이라 불리는 돼지고기의 가격 상승에 대한 부담 △동물복지 인증제도의 허점 △동물복지 도축장 확대에 대한 양돈장의 부담 등이 더 나은 식용동물로서의 삶을 가로막고 있다.

 

"꿀꿀" 소리가 들리는 농장

 

 

오늘날 돼지는 고기로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생명으로서 돼지는 인간의 삶과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 돼지는 오직 인간을 위해 사육돼 식탁에 오르는 '고기'로서 가성비 있는 재료로 대우받을 뿐, 한 생명체인 '돼지'로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한 생명체인 돼지가 그저 하나의 재료인 돼지고기로 변환되는 과정에 소비자인 우리가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즉 우리는 먹는 데에서 친숙함을 느끼는 만큼 돼지를 살아있는 동물로 인식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식용동물로서 소비되는 돼지의 삶은 적어도 살아가는 동안 행복할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돼지의 수명은 10-15년이지만, 도축장에서는 불과 160-180일 정도로 반년이 채 되지 않는다. 과다 밀집된 축사에서 압사로 매일 죽어가는 돼지들, 제대로 기절이 되지 않은 채 도축당하는 돼지들. 우리는 짧은 삶을 살아가는 식용동물 돼지의 삶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짧은 삶을 살아가는 돼지들을 향한 죄책감을 덜고자 일부러 무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돼지와 돼지고기, 소와 소고기, 닭과 닭고기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는 시각은 스스로 생명을 죽이지 않고서도 고기를 섭취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해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반면 동물의 도축 과정을 외면하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오직 인간에 의해서, 죽기 위해서 태어난 동물들에게 우리가 최소한의 대우를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기하늘 기자 sky41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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