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6일 현충일이 되면 저의 외외증조부님이 떠오릅니다.
권총을 잘 쏘셨다던 외외증조부님은 1953년 북한군 잔병과 남로당 잔당들이 합쳐진 지리산 공비 토벌전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오늘날 저와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나라를 있게 해주신 외외증조부님은 바로 경찰이셨습니다.
오늘은 한국전쟁 속 국군과 함께 우리나라를 지킨 경찰 순국선열들의 활약상을 소개합니다.
1945.8.15일 광복의 기쁨도 잠시 우리나라는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또 이념으로 갈라졌습니다. 이때 우리 국군은 해방 직후라 아직 무장과 피복에서 열세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경찰이 치안 유지를 넘어 적극적으로 북한의 동향을 경계하고 안보에도 참여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여기서 강릉에서 해안 경계 임무를 맡고 있던 전대욱 경사는 북한군 1개 중대와 교전을 벌이던 중 남북을 통틀어 최초로 전사하게 됩니다.
이후 경찰은 보유하고 있던 각종 중화기를 동원해 국군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전선이 낙동강까지 확장하자 경찰들은 북한군의 후방에서 유격대를 조직해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국전쟁 중 가장 격전이었던 '다부동 전투'에서는 무려 1만 5천여 명이 넘는 경찰이 투입돼 최전선에서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이후 중공군의 불법 개입으로 인해 전선이 현재와 같이 교착화되자 경찰은 후방에서 남로당과 북한군 잔당의 빨치산 유격대를 토벌하는 데 주력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 기간 무려 1만 명이나 되는 경찰들이 전사했습니다. 이는 당시 경찰의 약 1/3의 숫자로 그만큼 경찰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외외증조부님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보셨다고 하십니다. 그렇기에 이맘때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독립운동가, 참전용사분들이 없으셨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6월 6일 현충일인 오늘,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아직도 수많은 젊은 군인들이 최전선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잠시나마 순국선열들과 국군장병들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우진 편집국장
편집인: 김단비 부편집국장 (국어국문 21)
작성자: 조우진 편집국장 (국제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