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뷰] '간단'하지만 '역사상 가장 야심 찬' 퍼즐 게임

  • 등록 2024.08.02 17: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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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3D 퍼즐 게임.” <스티븐의 소시지 롤(Stephen's Sausage Roll)>이라는 게임의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소개 문구다. 스크린샷이나 트레일러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알록달록한 섬 위에서 독특하게 생긴 캐릭터가 소시지를 굴리는 모습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게임을 두고 더 가디언 등의 언론에서는 만점을 주며 극찬을 하는가 하면, 조너선 블로우를 포함한 유명 게임 디자이너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항아리 게임’으로도 알려진 <Getting Over It>의 제작자 베넷 포디는 이 게임을 두고 “역사상 가장 야심 찬 퍼즐 게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게임은 총 6개의 월드로 구성되어 있고, 월드마다 여러 개의 퍼즐이 준비되어 있다. 각 퍼즐을 활성화하면 주변의 지형이 사라지고 그 퍼즐에 할당된 땅만 남아 섬과 같은 형태가 된다. 그리고 그 섬의 중간중간에 소시지와 그릴이 배치되며, 모든 소시지를 굴려 그릴에 구우면 퍼즐이 끝난다.

 

이 게임은 ‘소코반’ 형식의 게임이다. 게임의 공간이 바둑판처럼 그리드로 구성되어 있어 한 칸씩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주인공이 들고 있는 커다란 포크는 이 게임의 조작 방식을 독특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다. 주인공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나 그 반대로 방향키를 누르면 그대로 움직이지만, 주인공 시선 좌우 방향의 방향키를 누르면 그쪽으로 주인공이 포크와 함께 회전한다. 회전 반경에 소시지가 있다면 그 소시지도 포크에 밀려 움직이고, 벽이 있다면 회전이 가로막힌다. 이런 규칙을 따라 그릴에 소시지를 굴리거나 밀어서 모든 면을 굽는 것이 목표다. 소시지가 물에 빠지거나 그릴에 두 번 구워져서 타버리면 실패한다.


겉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은 이 게임이 이토록 고평가 받는 것은 퍼즐의 깊이에 있다. 매우 단순해 보이는 규칙이지만, 게임은 이 규칙을 한계로 밀어붙인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퍼즐의 난이도는 극단적으로 올라가며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소시지를 굴려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퍼즐들이 무식하게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올라가는 난이도만큼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하고, 그렇게 퍼즐을 풀면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스티븐의 소시지 롤>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이 게임은 여러 측면에서 시류에 역행한다. 먼저 제목부터 주목할 만하다. 이 제목은 이 게임의 제작자인 스티븐 라벨을 전면에 내세운다. 대부분의 게임이 만든 사람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과 대조된다. 또한 이 게임은 시각적으로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다수의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근사한 그래픽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이 게임의 엄청난 난이도와 깊이를 생각하면 “간단한 3D 퍼즐 게임”이라는 짧은 소개 문구는 순진한 플레이어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 웃음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이 게임은 퍼즐 장르의 전통마저도 거부한다. 대부분의 퍼즐 게임은 쉬운 퍼즐로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난이도를 올리는 반면, 이 게임은 첫 퍼즐부터 플레이어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 게임을 극찬한 게임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조너선 블로우는 플레이어에게 주는 보상에 관해 2007년 한 강연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보상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하나를 인공적인 자극 위주의 식품에, 다른 하나를 영양가 있는 음식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보상을 플레이어에게 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게임은 그런 면에서 훌륭하다. 유익하고 지적인 즐거움을 보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와 게임 디자이너가 게임 플레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

 

한편, <스티븐의 소시지 롤>은 빠른 반응 속도나 고도의 게임 실력을 요하지 않는다. 퍼즐을 풀 때는 원하는 만큼 시간을 들여 고민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역시 도전해볼 만한 게임이다. 조금 머리 아플 수도 있지만, 한번 마음먹고 스티븐 라벨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퍼즐 세계 속으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염정우

편집 = 권동원 기자

디자인 = 장채영 디자이너

회대알리 기자 skhuall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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