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쉬어가는 곳, 가톨릭대학교 새내기들에게 띄우는 편지

  • 등록 2025.01.21 00: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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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대생이, 새내기에게 ①
문준호 제28대 인문대학 학생회장 (국사학과 23)

[편집자의 말] ‘가대인의 소리’는 가톨릭대 구성원(학생, 교수, 직원)의 목소리를 칼럼으로 담아낼 수 있도록 기획한 가대알리의 가톨릭대 구성원 참여 칼럼 코너입니다. 2025학년도 1학기 가대인의 소리 주제는 ‘가대생이, 새내기에게’입니다. 가톨릭대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새내기들을 가대생이 새내기 시절을 회상하며, 응원의 말을 글로써 남기고자 합니다.
 

 

모든 바람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바람이 우리 곁을 스칠 때, 바람 속 사연과 우리의 마음은 자연스레 공명합니다. 바람이 한기를 머금은 것은 즉 사연이 절절하기 때문이니, 어찌 바람이 차다며 미워하겠습니까. 바람은 그저 전서(傳書)할 뿐이니까요.

 

“근데 누구세요?”

 

소개가 늦었군요. 인사에 앞서 가톨릭대학교에 합격한 모든 새내기 여러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국사학과 23학번 문준호라고 합니다. 약소하게 인문대학 학생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제가 3학년이 될 줄 몰랐는데, 세월이 쏜살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제가 새내기였던 시절(고작해야 2년 전이지만)을 회상하여 여러분께 하고픈 말을 적어보겠습니다.

 

처음 역곡역(驛谷驛)에 내렸을 때를 잊지 못합니다. 겨울이 저물어가는 2월 말이었음에도, 이곳만큼은 여전히 한기 가득한 바람에 휘감겨 있었습니다. 바람은 건물 사이를 지나 길가로 모였고, 새내기들은 횡단보도를 건너 캠퍼스로 모였습니다. 수상할 정도로 나무 이야기에 열성적인 총장님(지금은 前 총장이십니다만)을 뒤로하고, 새내기들은 서로를 돌아보았습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이들은 비로소 이곳에서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 어색하다.”

 

성인이 뭐라고. 대학생이 뭐라고. 고등학생 때와 달라진 것은 대학 합격증과 효력이 생긴 주민등록증뿐인데, 이제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답니다. 어색했습니다. 시간표를 짜는 것도 어색했고, 술잔을 부딪치는 것도 어색했고, 무엇보다 완전히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어색했습니다. 고3(재수 포함)을 인고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간관계였으니까요. 함께 커피를 홀짝이며 강의를 듣고, 잔디밭에 앉아 음식을 노나 먹는 등. 우리는 캠퍼스의 낭만을 함께 즐길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기에 새내기들은 술을 마셨습니다. 어찌 보면 고등학생 때보다도 친해지기 쉽지 않았을까요? 쌓여가는 술병의 수가 그날 사귄 친구의 수를 대변했으니 말입니다. 술이 없이 자연스럽게 친해지기도 했습니다. 전공 수업과 과방, 더 나아가 교양 팀플에서도 친구가 생기니까요. 제 말은,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란 말입니다. 품행(品行)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 2명 이상의 친구는 생길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친구 많습니다. 진짜예요. 진짜라고요.

 

그래도 친구 사귀는 데에 걱정이 된다면, 동아리를 추천합니다. 특히 학과에 마음이 맞는 친구가 없다면, 동아리가 당신의 안식처가 될지도 모르죠. 저의 경우 유감스럽게도 동아리는 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객기였는지 테니스를 배우겠다고 테니스 동아리 ‘코트랑’에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회비를 납부하고 신입생 환영회까지 갔습니다만, 유령회원으로 있다가 어느샌가 빠져나왔습니다. 테니스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 나가기를 미루었더니 그만…. 제가 납부한 3만원이 유용하게 사용되었길 바랍니다(웃음).

 

마음에 드는 동아리가 없다면, 학생회에 들어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보통 학생회라 하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학부(과) 학생회, 단과대학 학생회, 총학생회. 제가 입학했을 때는 단과대학 학생회도 두 단위밖에 없었고, 총학생회도 없었습니다만…. 이제는 거의 다 있으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세 학생회의 차이가 뭐냐고요? 세 개 다 해본 제가 말씀드리죠. 학과 학생회는 시청, 단과대학 학생회는 도청, 총학생회는 중앙행정기관입니다. 너무 공무원 같다고요? 학생회는 공무원 맞습니다. 월급이 없다는 점 정도의 차이가 있겠군요. 아, 그리고 인문대학 학생 여러분, 추후 인문대학 학생회 집행위원회 모집에 있어 많은 지원 부탁드리…[더보기].

 

사족이 길었습니다. 이제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일종의 ‘진로 선택’을 강요받았을 겁니다. 대개 그 진로는 ‘안정적인 연봉과 괜찮은 사내 복지가 보장된 대기업’을 일컫습니다. 이것이 과연 진로(進路 ; 앞으로 나아갈 길)인지 진로(眞老 ; 진짜 늙어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샌가 한국은 사회에서 정한 길을 따라가야만 그것이 진로이자 정도(正道)라고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원하는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진로이자 꿈이자 인생의 목표라면, 축하드립니다. 하던 대로 쭉 나아가시면 됩니다. 그러나, 평균적인 대한민국 고등학교 3학년은 원하는 전공으로 대학에 가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자신이 무얼 배우고 싶은지도 잘 모르는데, 커서 무엇을 할지 정할 수야 있겠습니까? 대학에 왜 왔냐는 질문에 “다들 가니까요.”라는 대답이 태반이니, 말 다 했죠. 원하는 전공에 갔다 하더라도, 다른 전공으로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는 특히 저 같은 문과생들(전공 살리기보다 내 위장 살리기가 우선인 이들)에게 두드러집니다.

 

불안하실 겁니다. 대학에서의 한 학기는 고등학교에서의 한 학기보다 훨씬 빠르거든요. MT에 다녀오고 꽃놀이를 즐기다 보면 금세 중간고사를 보고, 축제를 즐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기말고사를 봅니다. 그게 1학년 1학기의 전부입니다. 이건 비관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놀지 말고 공부하며 성적을 관리하라는 꼰대 같은 이야기도 아닙니다. 무슨 자격증을 따고, 어떤 대외활동을 하고, 방학 때도 아르바이트를 꽉 채워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하실 것은 딱 하나입니다. 뜻하는 대로 사십시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십시오. 대학이라는 공간은 여러분께서 더 넓은 사회로 나가기 전의 마중물과 같은 곳입니다. 앞으로 여러분께서는 인생에 있어 수많은 선택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점심 메뉴 선택부터 복수전공 선택까지, 작든 크든 선택으로 구성된 삶 속에서 살 것이겠습니다. 선택의 순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각기 다른 꿈, 그리고 바람을 품고 이 사회로 나오셨습니다. 본교가 그 바람을 이루는 발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람은 우리의 바람을 안고 어디로 갈까요? 바람이 쉬어가는 곳. 이곳 가톨릭대학교에서, 그대의 바람 반드시 성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너무 성심교정 위주의 글이었습니다. 남은 지면을 빌려 성신교정, 성의교정 여러분께도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곳에서 띄운 제 바람이 그대들에게도 닿기를.

가대알리 기자 cukalli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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