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못 주제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기사를 쓰지 말자는 마음에서 기획했습니다. 저희는 어설픈 '잘알'보다는 '알못'이 되기로 했습니다. 한 번의 경험에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겠지만, 한 번의 취재로도 당사자와 외부인의 어려움을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알못 주제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쳤던 것들을 만나고 체험합니다. 이 기사를 통해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조금이나마 알아가며 공감할 수 있도록 저희가 느낀 현장 그대로를 전달하겠습니다.
새해의 상징, 떡국 떡 만들기
설 까치가 날아오기도 전 명절을 맞이하는 곳 떡집. 외대알리는 떡집의 분주한 풍경을 취재하기 위해 명절 연휴에 제주시 내 모 떡집을 찾았다.
"오늘 오기로 한 학생? 위생복으로 어서 갈아입고 와요.” 아침 6시, 떡집의 하루는 언제나처럼 바쁘게 시작된다. 오늘의 첫 번째 작업은 떡국떡 만들기. 떡집에서 떡국떡을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전날 밤, 떡집만의 황금 비율로 여러 종류의 쌀을 배합하고, 하루 종일 물에 불린 후 작업에 들어간다. 그다음, 쌀을 분쇄기에 넣어 고운 가루로 만든 뒤, 시루에 담아 증기로 찌고, 다시 가래떡 기계로 옮겨 떡을 뽑는 작업이 이어진다. 한나절이 다 가도록 계속되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기술 없이 열정뿐인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무겁거나 뜨거운 거 옮기기.’
40kg이 넘는 쌀가루가 담긴 고무 대야를 찜기 앞까지 나르고, 가래떡 판이 다 차면 건조실로 옮긴다. 시루 포가 부풀어 오르면 찜기에서 시루를 꺼내 가래떡 기계로 옮긴다. 뜨거운 시루를 손으로 들 때면 마치 라면 끓이다가 냄비 손잡이를 잘못 잡은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손끝에 전해진다. 장장 5시간 동안 이어진 이 반복은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 시지프스의 형벌을 연상케 했다.

“한 살 드시고 하세요!” 점심 메뉴가 떡국이라는 말이었다. 떡집 사모님의 유머에 잠깐 웃음이 터지지만, 그보다는 무거운 일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반갑다.
“총각, 밥 다 먹으면 옷 갈아입어, 다른 일 할 거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근데 한 살 먹었다고 호칭이 학생에서 총각으로 바뀐 건가. 아니면 5시간 동안 내가 폭삭 늙어버린 건가. 어쨌든, 무겁고 뜨거운 일은 끝이다.
변해버린 시대와 변해버린 명절 풍경

오후에는 떡을 써는 작업을 했다. 떡을 썰 때는 기계를 사용한다. 현대의 편리함 덕분에, 한석봉이 살던 시대처럼 칼을 들지 않아도 된다. 다 썬 떡은 포장실로 가져가 바로 포장을 시작한다.

“떡집은 명절이 대목이죠? 돈 많이 버시겠어요?” 떡을 포장하며 물었다. 떡집 사모님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다 옛말이에요. 요새 명절이 명절인가요. 떡 먹을 자식, 손주가 안 오는데 누가 떡을 한 말씩 맞춰요. 주문량도 매년 줄어드는 추세예요. 죽겠어! 아주.”
떡집에서 일하며 느낀 건 시대의 변화다. 예전 설날은 가족들이 모여 새해 인사를 나누는 가족 화합의 장이었다. 지금은 그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고 혼자 보내는 사람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편의점에는 혼자 즐길 수 있는 명절 도시락까지 등장했다.
명절에 고향 대신 여행을 선택하는 사람도 늘었다. 국토교통부 항공 포털에 따르면 설 명절이 시작된 지난 1월 24일~26일 국제선 여객 수는 86만 1366명으로 동기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 설 연휴 시작인 2024년 2월 8일~10일 71만 24명과 비교해 21.3%가량 증가한 수치다.
이렇게 명절의 풍경도 떡집 사모님 말처럼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떡집의 밤은 낮보다 뜨겁다
오후 2시, 퇴근이다. 사실 퇴근보다는 휴식에 가깝다. 오후 7시부터 차례상에 올라갈 떡을 준비해야 한다. 침대에서 눈을 감은 지 5분도 채 안 된 것 같은데 어느덧 저녁이다.
잠깐 눈을 붙이고 떡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온몸이 지치고 피곤하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스스로 세뇌한다. “ 내 엄청난 활동량이 아니면 이 떡집은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더 움직여야 한다. 나는 떡집의 박지성이다.”
저녁 작업은 차례상에 올라갈 떡을 준비하는 일. 오전에 이어서 여전히 바쁜 하루가 이어진다. 한쪽에서는 증편과 꿀떡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약밥, 야채설기, 호박 설기 등 설기류를 준비한다. 내가 맡은 일은 여전히 단순하다. '차갑고 무겁거나, 뜨겁고 무거운 것 나르기.'

저녁 작업의 첫 번째 임무는 급랭시킨 떡을 냉동창고에서 작업실로 옮기는 일이다. 떡은 포대에 담겨 있다. 한 포대당 무게가 40kg나 된다. 엘카(구루마)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창고와 작업실 사이에는 좁은 통로가 있어, 떡 포대가 걸려 깨지는 일을 방지하려면 포대를 품에 꼭 안은 채로 옮겨야 한다.
작업실에서는 얼어붙은 떡을 판 위에 올리는 작업을 한다. 찌는 동안 떡 모양이 망가지지 않도록 냉동 떡을 일일이 떼어내 판에 올린다. 판 위에 떡이 다 차면 찜기에 판을 가져다 넣는다. 당연히 내 몫이다.
두 번째 임무는 찜기에서 판을 꺼내 포장실로 옮기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떡을 알맞은 타이밍에 꺼내야 한다는 것이다. 모시송편, 별 떡, 방울증편 등 각 떡 종류마다 찌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달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만일 과하게 익으면 모양이 변해 상품 가치를 잃는다.
퇴근은 '그림의 떡'.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밤새 정신없이 떡을 나르다 보면 동이 틀 즈음 마트 납품 차량이 온다. 주문서에 적힌 수량대로 납품차에 떡을 싣는 작업이 시작된다. 이 작업은 밤새 했던 일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이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비몽사몽 해지는 게 느껴진다. 지금 필요한 건 그저 ‘누워서 자기’다. 하지만 이 작은 여유도 잠시다. 20여 대의 납품 차를 보내고 나면 다시 대청소가 시작된다.

떡집 조카 재현 씨에게 붙잡혀 설거지와 냉동창고 정리를 맡았다. 재현 씨는 중학교 때부터 삼촌을 도와 떡집 일을 시작했다. 이제는 경력 13년 차 베테랑이다. 설거지하며 그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떡집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을 때, 재현 씨는 이렇게 답했다.
“힘들어도 해야죠. 혹시 아까 밤에 북두칠성 보셨어요? 북두칠성을 보면 각각의 별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내 하나의 북두칠성을 이루잖아요. 우리 사회도 그런 것 같아요.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일을 해 하나의 사회를 만드는 거죠. 저는 그냥 제 일을 할 뿐이에요. 근데 태훈 씨, 추석에도 오시는 거 맞죠?”
“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드시네요.”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일을 이어갔다.
아무튼… 명절이다.
김태훈 기자(dhfkehd438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