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설렘 가득한 새 학기, 캠퍼스에는 봄이 왔건만… 군 복학생은 아직 겨울 속에

  • 등록 2025.04.09 22: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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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으로 가득한 3월의 캠퍼스, 웃지 못하는 군 복학생
“전역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불안과 혼란으로 가득한 군 복학생

 

3월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계절이다. 캠퍼스 역시 새출발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신입생들은 들뜬 얼굴로 강의실을 오가고, 교정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감돈다. 처음 마주하는 교수, 새로운 과 동기, 낯선 캠퍼스 풍경까지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게 시작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좀처럼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군 복학생’이다.

 

군 복학생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여러 매체에서 희화화되어, 이제는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를 간접적으로만 접했기에, 그들의 실제 모습과 내면까지는 잘 체감하지 못한다. 이에 군 복학생인 필자의 하루를 있는 그대로 전함으로써 실제 학교생활을 보여주고, 더불어 군 복학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민도 함께 전하고자 한다.

 


 다시 돌아온 캠퍼스, 낯선 하루


아침부터 학교에 가려고 정신없이 준비하다 보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학교 앞 사거리 횡단보도다. 횡단보도는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익숙한 듯 무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전역 후 약 3년 만에 복학한 입장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상황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다. 특히 비대면 수업에 익숙했던 ‘코로나 학번’으로서, 사람들 틈이 더 낯설게 느껴진다. 몸은 학교로 향하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기분이다.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횡단보도 (사진= 오희상 기자)

▲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횡단보도 (사진= 오희상 기자)

 

강의실에 들어서면 아직 아무도 없다. 복학생은 늘 가장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맨 뒷자리 구석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구석진 자리가 주는 묘한 안정감 때문일까, 아니면 시선에서 비껴 있기 때문일까.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으면 조금씩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들어오는 학생들 사이엔 낯선 기색이 없다. 마치 다들 알고 지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나만 아무것도 모른 채 세트장에 던져진 기분이 든다. 정해진 각본이 있는 세계에 나만 대본 없이 들어온 느낌. 어딘가 ‘트루먼 쇼’ 같다. 그렇게 어느새 강의실은 학생들로 가득 차 시끄러워진다. 에어팟을 꺼내 노이즈 캔슬링을 켜자 비로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왜 사람들이 노이즈 캔슬링을 쓰는지 알 것 같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 있던 중, 누군가 어깨를 툭툭 친다. ‘나한테 말을 걸 사람은 없을 텐데’ 싶어 돌아보니 “저… 혹시 옆자리 비었나요?”라는 말이 들린다. 당연히 낯선 사람이고, 나를 아는 사람일 리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괜히, 순간이나마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 기대한 나 자신이 조금 우습게 느껴진다.

 

수업은 무난히 흘러간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려는 찰나, 교수님께서 조별 과제를 언급하신다. “조는 원하는 사람끼리 짜세요.” 그 순간 학생들 사이에서 눈빛이 오간다. 그러더니 말하지 않아도 이미 조가 정해져 있던 것처럼 모두가 움직인다.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괜히 교수님이 원망스러워진다. ‘그래도 뭐, 남는 사람끼리 알아서 배정해 주시겠지.’ 생각하며 강의실을 빠르게 빠져나온다.

 

아무도 없는 강의실 (사진= 오희상 기자)

▲ 아무도 없는 강의실 (사진= 오희상 기자)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교수회관으로 향한다. 교수회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학교에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위치가 잘 기억나지 않아 잠깐 헤맸다. 

 

마감 시간인 1시 반을 가까스로 맞춰 들어갔다. 교수회관 밥이 맛있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막상 받아 든 식판을 보니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다. 이 가격에 이런 퀄리티라니, 앞으로는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리를 잡고 앉자, 앞 테이블에서는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웃으며 식사하고 있다. 하지만 복학생에게도 밥 친구는 있다. 바로 유튜브. 15분짜리 드라마 결말 요약 영상을 틀어 놓으면, 밥 먹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교수회관 식당 점심 (사진=오희상 기자)

▲ 교수회관 식당 점심 (사진=오희상 기자)

 

밥을 다 먹고 나니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소화도 할 겸 학교 주변을 산책한다. 오랜만에 둘러보는 캠퍼스는 생각보다 많이 바뀌어 있다. 예전엔 학교 주변이 어딘가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는데, 이제는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흙먼지를 일으키던 운동장도 사라지고, 그 위에는 잔디가 매끈하게 깔려 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잔디광장을 지나갈 때면 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따뜻한 햇볕 아래 삼삼오오 앉아 웃고 떠드는 소리가 멀리서도 들려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아침부터 쌓였던 피로도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 신입생 시절 내가 꿈꿨던 대학 생활이 저런 거였나 싶다.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캠퍼스 전경 (사진= 오희상 기자)

▲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캠퍼스 전경 (사진= 오희상 기자)

잔디광장에 앉아 있는 학생들 (사진= 오희상 기자)

▲ 잔디광장에 앉아 있는 학생들 (사진= 오희상 기자)

 

신책하고도 시간이 남아 도서관에 간다. 저학년 때만 해도 도서관은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복학하고 나니 공부에 대한 압박감도 생기고, 마땅히 시간을 보낼 곳도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도서관 열람실 내부 (사진=오희상 기자)

▲ 도서관 열람실 내부 (사진=오희상 기자)

 

오후 수업은 저학년 전공 수업이다. 확실히 저학년 수업이라 그런지 분위기부터 파릇파릇하다.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끼리는 “신입생들 너무 귀여워”, “오늘 밥약 두 개나 있어”, “2학년 되니까 책임감 생기는 것 같아”와 같은 말들을 나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귀엽기도, 괜히 부럽기도 하다.

 

교수님은 대형 스크린으로 학번과 이름을 띄우며 출석을 부르신다. 화면을 보니 내 학번보다 높은 학번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 학번과 이름이 떴을 때,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뜨끔하게 된다. ‘미리 학년 맞춰서 들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저학년 때는 ‘왜 저 선배들은 아직도 이 수업 듣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선배가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이제야 그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수업은 모두 원어로 진행된다. 영어를 오랜만에 듣다 보니 따라가는 것조차 버겁다. 그렇게 정신없이 듣고 있으면 어느새 수업이 끝나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짐을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빠져나온다. 아침엔 그렇게 듣기 싫던 신호등 소리, 지하철 안내음이 이상하게도 지금은 반갑게 들린다. 퇴근 시간대라 지하철은 말 그대로 ‘지옥철’이지만, 나에겐 이곳이 천국이다. 몸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 움직이기조차 힘든데, 마음은 오히려 평온하다. 아마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렇게 적응 안 되는 생활을 앞으로 매일같이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전역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전역할 때까지만 해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학교생활이든 학점이든 착실히 해 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학교는 너무 오랜만이라 적응 자체가 쉽지 않고, 머리는 굳을 대로 굳어 전공도 다 까먹었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조차 벅차다.”

 

올해 2월 전역 후 복학한 A 씨는 인터뷰를 통해 복학 후 마주한 현실에서 느낀 막막함을 털어놓았다. 

 

작년에 전역해 올해 복학한 B 씨는 “군대 가기 전엔 친구들과 함께 다니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군대에 가면서 연락이 줄었고, 복학하고 나니 혼자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며 복학 후 달라진 관계 속에서 느낀 변화를 전했다.

 

B 씨는 이어 “무엇보다 동기나 선배들과의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는 걸 크게 실감한다. 예전에는 ‘술이나 한잔하자’, ‘PC방 가자’ 같은 일상적인 얘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졸업 준비, 인턴, 취업 얘기만 하고 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 같은데, 그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조바심이 자꾸 난다. 나도 뭔가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학교 다니는 것뿐이다. 그게 늘 고민이고, 마음속 딜레마처럼 계속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복학 이후 느끼는 불안과 고민을 털어놨다.

 


이 시절을 언젠가 웃으며 떠올릴 수 있기를


복학생으로서 겪는 불안과 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 역시 여전히 막막하다. 어쩌면 누구나 겪는, 당연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고, 그렇다고 고민에만 머물러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방향이 보이지 않을까. 필자를 포함한 모든 군 복학생들에게, 언젠가 이 불안과 고민의 시절을 웃으며 떠올릴 날이 오길 바란다.

 

 

오희상 기자 (ohuisang@gmail.com)

 

오희상 기자 ohuis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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