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작전에 능한 자의 조건을 이렇게 정리한다. 싸우기 전에 먼저 패하지 않는 형세를 만들라는 것이다. 승리는 전장에서의 우연이 아니라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상대의 허점이 드러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봤다. 다시 말해, 이기는 전쟁은 이미 시작되기 전에 절반이 결정돼 있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손자의 조언과 달리 오늘날 우리 대북정책에서 주도권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 지난 2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어떠한 의제라도 (북한과)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더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 존중"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북한과의 대화 참여 자체를 성과로 만들려는 태도를 드러냈다.
그러나 북한은 쉽사리 테이블에 나오려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런 제안을 비웃기라도 하듯 새해부터 미사일 도발을 이어갔다.
햇볕정책 시기에도,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에도 북한은 대화를 병행하며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 했다. 최근 김정은은 이에 한술 더 떠서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아예 남북관계 단절을 선포했다. 최근 북한이 기존의 표현인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며 거리감을 드러내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북한 체제 내부로 확산되는 남한 문화를 차단하기 위해 적대적 거리감을 벌린 결과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대화' 그 자체를 갈구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할지 말지 결정하는 구조 자체가 이미 주도권을 넘겨준 상태다. 북한이 응할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은 겉으로 도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외교적 고지를 내준 상황을 고착시킨다. 대화에 응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싸우기 전에 형세를 잃은 상태다. 이는 평화를 향한 인내의 걸음보다 전략의 부재에 가깝다.
진보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갇히는 남북평화 프레임에서 이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실용외교를 표방하는 정부라면 더 이상 북한의 대화의지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한국을 선택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점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과는 외교적 조율을 통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선택지를 좁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대화 그 자체는 목표가 아닌 결과여야 한다.
손자가 활동하던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를 제외한 나라들은 소진(蘇秦)의 합종책을 택해 연합해서 견제했다. 이 결과 진나라는 15년 간 국경인 함곡관에서 나오지 못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일상이 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의가 아닌 패하지 않는 형세를 만드는 것이다. 전쟁을 피하는 길은 먼저 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데 있기 때문이다.
조우진 편집국장
편집인: 김단비 부편집국장 (국어국문 21)
작성인: 조우진 편집국장 (국제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