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의 책
장강명 作, 한국이 싫어서
# 하드코어 코리아
3포 세대.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으로 청년층의 어려운 실정을 꼬집은 말이다.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게 불과 5년 전1)이다. 최근에는 5포, 7포, 심지어 그 수를 다 헤아리기 어려운지 n포까지 나왔다. ‘기본 구성’ 세 가지에 주택, 희망, 인간관계, 학업 같은 것들이 ‘옵션’으로 딸려 들어간다.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살려면 필시 포기가 동반되어야 하는 모양새다. 그들이 느끼는 압박감, 상실감은 상상 이상이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평온한’ 나라는 아니다. 차라리 지옥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헬조선’이라는 말의 등장 배경이다.
소설의 주인공 ‘계나’도 마찬가지다. 그가 호주로 간 이유는 아주 간결하다. 말 그대로 ‘한국이 싫어서’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빌리자면 ‘⑴ 명문대를 나오지 못하고 ⑵ 집안도 가난하며 ⑶ 얼굴마저 김태희처럼 예쁘지 않은’ 자신과 같은 사람의 인생은 ‘지하철에서 폐지나 줍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제 이 구절을 하나씩 따져보자. 먼저 명문대. 최근 사교육 업체들이 ‘명문대’로 분류해 놓은 대학교의 신입생 평균 수능 성적은 상위 4~5% 이내다(수능 1등급 비율과 대체로 비슷하다). 나머지 95%, 즉 절대다수는 ‘비(非)명문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다음 가난한 집안. 작년 10월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발표한 ‘한국의 부의 불평등 2000~2013: 상속세 자료에 의한 접근’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상위 10%가 차지하는 자산의 비중이 전체의 66%를 차지했다. 양극화 시대라더니 과연 심각한 부의 편중 상태를 단박에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김태희처럼 예쁜 얼굴. 주변을 돌아보라. 미(美)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김태희처럼’ 예쁜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세 가지는커녕 한두 가지 만족하는 것도 쉽지 않다. 즉, 계나의 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한국에서 대다수는 살기 힘들다.’ 절대다수가 지하철에서 폐지를 줍게 될 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있다면, 문제는 절대다수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살고 있는 국가 시스템에 있는 것일까. 그의 지극히 염세적인 발언은 읽기에 따라 일면 지나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며 평범한 이들은 제대로 살지 못할 것이라는, 세상을 향한 불신의 표현이다.
요즘의 대한민국을 보는 듯한 사실적인 내용 전개가 단연 돋보여서 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말을 작가가 잘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됐다2)고 한다. 갑자기 몇 주 전 ‘청년들이 취업 준비 때문에 대학 졸업식마저 가지 않는다’는 TV 뉴스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생의 단 한 번인 순간마저 현실의 무게 앞에 포기한, 이름 모를 뭇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 곳이 착잡해졌다. 또 한 번 한국이 싫어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서도 그랬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만한 묘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걱정이다.
1) 2011년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의 ‘복지국가를 말한다’ 시리즈에서 처음 등장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2)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호주에서 공부한 사람과 호주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을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189쪽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