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분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등록 2021.01.16 09: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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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 학기 나는 버튼 하나를 두고 같은 고민을 한다. 소득분위 재산정 신청을 할까 말까? 도박을 하는 기분이다. 나는 어쩌면 저번보다 분위가 더 낮게 나올 수도 있다고-나는 돈이 없고 아빠는 최근 해고되어 일용직으로 돈을 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저번 학기에는 부모 소득이 십만 원 올랐다는 이유로 내 소득 분위도 올랐다. 아빠는 해고된 후 주 7일을 일용직 노동으로 일했는데 그래서 월 소득이 십만원 더 올랐다. 이의 신청을 하려 했지만, 정확히 어떤 지점을 문제 삼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한국장학재단에 전화해서 일용직 노동이라는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따져 볼 때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활비, 대출금 이자를 따져볼 때 아빠의 소득 십만 원은 대학생 당사자인 나에게 하나도 도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아버님의 소득이 늘어나셨잖아요.” 안내원이 말했다. “소득 산정 기준이 가구원의 소득이기 때문에 이건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국가장학금 제도는 대학생을 가구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10개 구간으로 나눠, 소득 8구간  이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한 학기에 최대 260만 원까지 지원한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입장에서 부모의 경제 상황은 내 생계와 별 연관이 없다. 대신 소득 분위와는 연관이 깊다. 국가장학금 소득 분위는 국가근로장학금, 교내·외 장학금, 국가근로장학금 등 대학 생활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자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국가근로장학금 같은 경우는 경쟁률이 세 한 구간만 높아져도 탈락할 확률이 높다. 소득 분위에 좌지우지되는 삶을 사는 건 대학생인 나인데도, 장학재단이 산정하는 소득 분위는 내 소득이 아니다. 소득 분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 분위가 대학생들의 현실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을까?

 

 

 

 

2.


 

소득분위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은 2012년 국가장학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로 계속 있었다. 대개 소득분위를 산정하는 기준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장학재단은 소득 산정에 있어서 2014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료 자료를 활용했다. 이 방식은 가구원의 보수, 부동산, 자동차 등 제한된 소득, 재산 정보만을 반영하고 금융정보를 포함하지 않아 고소득자를 공정하게 가려내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장학재단은 2015년부터 보건복지부의 사회보장시스템의 기준 중위소득을 활용해 소득분위를 산정한다.

 

기준 중위소득은 복지 급여 기준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국민 가구소득을 일괄적으로 계산한 결과의 중위값을 말한다.(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기초생활 보장제도에서 최저생계비를 결정하기 위한 것으로, 상대적 빈곤 개념을 기반으로 저소득층을 판별한다. 국가장학금 외에도 차상위계층, 기초생활 보장, 주거, 교육 급여 등 복지 지원 대상자를 판별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사회보장 정보시스템 역시 국내 재산, 소득만을 반영해 국외 소득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장학재단은 2017년 ‘국외 소득·재산 신고제’를 함께 도입했다. 이 정도면 된 걸까? 이런 변화를 통해 국가장학금 소득 산정은 자신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2016~2019년 사이 소득분위 재산정 신청은 10만8천280여 건에 이른다. 이 중 신청이 받아들여서 소득분위를 재산정한 경우는 6만9천401여 건에 달한다. 연도별로 보면 재산정 신청은 2만8천306건, 2017년 2만9천648건, 2018년 3만757건으로 매년 늘어났다. 소득 산정 방식 변화와 상관없이 오류는 줄지 않는 것이다. 굳이 통계가 아니더라도 현실성 없는 소득 분위에 속 썩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는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 갈래는 부모님의 실업 급여가 월 소득에 포함되어 분위가 훌쩍 올랐다거나, 낡은 집이 자산으로 잡혀 장학금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등 가정 소득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산정 방식을 비판한다. 다른 갈래는 이런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넘치는 장학금을 받는 부당함에 불만을 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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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자의 이야기에 10만8천280여 건의 소득분위 재산정 신청이 있고, 후자의 이야기에 건강보험료-사회보장시스템-국외 소득·재산 신고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있다. 이 시스템 변화의 공통점은 기존에 포함되지 않던 소득을 소득 분위 안에 포함 시킴으로써 고소득자의 부정 수급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부정 수급자를 제외한다면 그만큼 기존에 지원을 받지 못했던 대학생을 새로운 수혜 대상으로 포함하는 제도 개편이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그저 지원 규모 축소에 불과하다. 하지만 장학재단이 직접적으로 소득 산정에 변화를 준 건 2017년 국외 소득·재산 신고제가 마지막이다. 이후 제3금융권 채무가 부채에 포함되지 않거나, 산정 일자 이후 변동 사항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등의 문제 제기에 장학 재단은 “대학생이 직접 산정 오류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입장을 고수할 뿐 별다른 방도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국가장학금이 “저소득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수급자의 소득이 비수급자보다 높아지는 소득 역전 현상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정밀한 소득 산정이 필요하다고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설명한다. 일견 타당해 보이나, 사실 소득 역전 현상이 국가 장학금 안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가 이상하다. 소득역전현상은 형평성을 위해 기초연금, 차상위계층 등 기초생활 보장제도에서 저소득층의 생계 지원에서 정부 지원금을 통해 수급자의 소득이 비수급자보다 더 많아지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국가 장학금은 기초생활 보장제도처럼 저소득층 지원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고액의 등록금으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모든 대학생 가구와 대학생 개개인이 지원 대상이다. 게다가 장학금은 등록금 범위 내에서만 지원하기 때문에, 수급자가 비수급자의 소득을 넘어설 수 없다.

 

반값 등록금 운동이 가장 거셌던 2012년에 설립된 국가 장학금 제도는 “높은 수준의 대학등록금으로 인한 가계 부담 완화 대책”을 마련하고, “대학생이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의지와 능력에 따라 고등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애초에 국가장학금은 소득을 기준으로 등록금을 부담할 능력이 결여된 사람을 선별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고등 교육 기회”를 누구에게나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저소득층 우선 지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다.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다만 이 원칙을 명목으로 소득 기준을 최대한 빠듯하게 제시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초과하는 대학생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건 국가장학금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저소득층 지원을 효과적으로 달성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첫째로 복잡하고 부정확한 소득 산정 방식으로는 저소득층을 확실히 판별할 수 없다. 둘째로 2~4년의 대학 재학 중 가계 소득은 계속 변동할 수밖에 없는데, 소득 구간을 매 학기 산정함에 따라 소득 분위가 심하게 유동한다. 1구간이 8구간으로, 3구간이 10구간으로 바뀌는 등의 사례가 속출한다.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경우 대학생은 오류를 증명하기 위해 상당히 복잡하고 번거로운 서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소득 산정이 제3금융권 부채나 소득 이전의 불안정한 경제 상황 등의 맥락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류가 인정될 거란 보장도 없다.

 

셋째로, 현재의 소득 산정 방식은 가족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대학생의 삶을 반영할 수 없다. 전입 신고 등의 세대주 분리를 인정하지 않고 1촌 직계혈족을 기준으로 소득을 합산해 이를 대학생의 소득이라 가정하기 때문에, 다양한 맥락 속에 교육비를 가족으로부터 지원받지 않는 대학생의 상황을 포함할 수 없다. 가족의 지원 없이 혼자 힘으로 고등 교육을 받고자 하는 대학생은 국가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걸까?

 

국가장학금의 좁은 문턱이 들쑥날쑥하고 지지부진하게 변하는 동안, 많은 대학생이 고액 교육비의 부담을 학자금 대출로 해결한다. 학자금 대출은 소득 분위와 관계없이 지원하기 때문에 국가장학금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를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대출은 장학금이 아니라, 나중에 개인이 갚아야 할 채무다. 매년 학자금 대출을 받을 경우 (대학 연평균 등록금 644만 원으로 계산하면) 졸업할 때 2576만 원의 빚을 진다. 생활비 대출을 포함한다면 이 액수는 훨씬 커진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막 진입하는 단계를 교육비로 인해 고액의 빚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다. 통계로 보면, 만 35세 청년 중 4명의 1명꼴로 부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중 50%가 학자금, 교육비로 인한 부채였다. 부채 규모는 2011년 평균 1,268만 원 이었으나 국가장학금 시행 6년 뒤인 2017년, 2,385만 원으로 88% 증가했다. 학자금으로 인한 부채는 결국 청년 빈곤으로 이어진다. 고등 교육을 위해 청년 대다수가 미래와 삶의 질의 상당 부분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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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된 지 8년이 지났지만, 현 국가장학금의 방식은 “가계 부담 완화”와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고등 교육의 기회”라는 설립 목적을 실현하기엔 부족하다. 정부 재정을 통해 대학 차원에서 등록금을 낮추려는 실질적인 시도 없이 학생을 가구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식은, 고액 등록금 자체가 이미 대다수의 가정에 과도한 부담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기준 중위소득의 상대적 빈곤 정도만으로는  대학 교육이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지원을 제공하기 어렵다.

 

유럽의 경우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의 국가에서 등록금이 아예 없고, 있더라도 소액이며 장학금을 통해 주거비, 생활비 등을 지원한다.

 

한국보다도 높은 등록금을 유지하는 미국의 경우, 주 정부별로 저소득층 지원에 있어 개인별 대학교육비(Cost of Attandance)라는 실질적 기준에 따라 장학금을 지원한다. 개인별 대학교육비는 등록금, 숙식비, 교재비, 기타 비용 등을 합산하고, 학생별 거주 형태의 차이, 재학 대학교 차이 등을 반영한 액수다. 국가장학금이 등록금 한도 내에서 한 학기 최대 260만 원만을 지불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미국은 소득 산정에 있어서 학비 부담능력이란 계산 방법을 사용한다. 부모의 자산, 소득, 자녀 수 등을 기준으로 계산해 국가장학금 소득 산정 방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주택을 무조건 자산에 포함하지 않고, 부모에 연령에 따라 재산 보호 수당을 달리해 학비 부담 능력에서 제외한다(미국 연방관보 홈페이지). 가계별 소득을 일괄적으로 합산해 줄 세우는 기준 중위 소득보다는 자녀 학비 부담이라는 목적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다.

 

2018년 소득 분위 산정의 사각지대 비판에 대해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꼼꼼한 제도 설계를 통해 꼭 필요한 대학생에게 적정한 장학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답했다. 어떻게 해야 꼭 필요한 대학생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와 학교에 다녀야 하는 학생과, 부모에게 등록금이란 부담을 줄 수 없어 학자금 대출을 받는 학생과, 부모가 아무 능력이 없어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학생 중 “여건에 관계없는 고등 교육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는 건 누구일까? 장학재단이 셋 중에 하나를 선별해 지원한다면 그건 누구의 관점에서 판단해 결정한 것인가? 과연 현재 국가 장학금의 제도 설계는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대학생의 삶의 맥락을 파악하고 포용할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가?

 

국가장학금 제도는 한국 대학 재정 구조와 정부의 책임이라는 거대한 논의의 일부분이라 단순히 장학금만을 문제 삼아 논할 수 없다. 하지만 장학금 소득 산정의 사각지대와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온 만큼, 학비 부담이라는 대학 교육의 특수성과 균등한 고등 교육 기회라는 목적에 맞는 실질적 변화가 필요하다. 복지 제도로서 국가 장학금은 교육권이라는 보편 권리를 개인과 가족이 감당할 문제로 규정하고, 그럴 수 없는 조건이 증명될 때에만 제한적으로 국가 재화를 제공하는 시혜적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 보장이라는 보편 복지와 시혜적 성격이 같이 갈 수는 없다. 국가 장학금이 균등한 교육 기회라는 보편 복지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족 부양 이데올로기를 넘어 교육권을 책임질 의무가 국가의 몫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대학생이 가정에 종속된 피부양자가 아닌 독립적으로 교육권을 추구하고 삶을 꾸려갈 당사자로서 발언권을 얻을 때, 제도가 교육권이라는 보편 권리의 가치를 바탕으로 작동할 때, 이 변화는 모두의 삶의 가능성을 더 넓혀줄 것이다.

 

 


 

 

<참고 자료>

 

1.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2. 이수빈, “이해할 수 없는 소득 분위, 무엇이 문제인가”, 중대신문, 2017.02.26

3. 이보배, “국가장학금 소득분위 산정 시스템에 허점”, 연합뉴스, 2019.10.06

4. 임지은, “국가장학금 소득 분위 산정 논란, “제가 왜 10분위죠?””, 노컷뉴스, 2019.12.10

5.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한 2012년 국가장학금 사업시행계획(안),” 2011.12, 한국장학재단

6. 최온정, “청년 4명 중 1명은 ‘빚쟁이’...부채 절반은 ‘학자금’”, 뉴스핌, 2019.10.23

7. 한애란, “[부채리포트] 청년부채 미스터리···국가장학금 18조 썼는데 빚 2배”, 중앙일보, 2018.01.31

8. 이찰우,”유승희 의원, 청년 부채절반 ‘학자금·교육비’”, 뉴스스토리, 2019.10.23

9. 김경석, 김홍태, “<반값 등록금..외국은 어떻게>②독일·프랑스”, 연합뉴스, 2011.05.29

10. 김수경, 한유경, 고장완 “국가장학금 대학배분 제도 분석: 미국 국가장학금 배분 제도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교육행정학회, 2012

11. 미국 연방관보 홈페이지

12. 박문정, “국가장학금 소득분위 산정 시스템 - 공정한 분배 위해선 사각지대 보완 필요해”, 고대신문, 2018.03.12

 

김나은 기자 tpqmfzmffh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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