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한국외대 학교 본부는 사범대학 프랑스어교육과, 독일어교육과, 중국어교육과를 ‘외국어교육학부’로 통합하는 사범대학 정원 감축 및 개편안이 이사회에서 최종 의결됐음을 공지했다. 2020년 11월 관련 논의가 시작된 이후 사범대학 학생회는 지속해서 학교를 상대로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를 표출했지만 결국 학교는 소통을 거부하고 일방적인 학제개편을 통보했다. 예정된 개편 내용 자체의 의의와 실효성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으나 확실한 건 이번에도 학교의 결정에는 학내 구성원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제개편이 지닌 실효성 논란에 가려져 현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학교의 역할은 잊힌 상황이다. 외대알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독일어교육과 신형욱 교수와 제37대 사범대학 운영위원회(안도화 사범대학 학생회장, 강채림 한국어교육과 학생회장)를 만나봤다. 더불어 사범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 개편에 대한 학교의 책임과 본질을 심도 있게 논하고자 한다. 그에 앞서 우선 학교가 학제개편을 감행한 배경과 타임라인을 상세히 짚어보자.
피할 수 없었던 정원 감축, 독단 행정의 불씨
사범대 소속학과의 통폐합 얘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에도 총장 주도하에 기존의 사범대학 소속학과들을 ‘외국어 교육학부’로 통폐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에는 각 소속학과의 정원을 일부 감축하고, 중국어 교육학과를 신설하기로 결론이 내려졌다. 이번 구조조정은 학교 집행부의 의지에 교육부의 평가 결과가 박차를 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범대학 학제개편은 왜 진행된 것일까?
2021년 2월 22일, 교육부에서 제5주기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결과를 발표했다.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이란,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일반대학 교육과, 교직과정, 교육대학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평가의 일환이다. 교원양성 교육의 질을 높이고 관련 정책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평가로, 진단영역은 교육여건(350점), 교육과정(500점), 성과(150점)로 나뉜다. 해당 평가의 총점은 1000점으로, 진단 결과에 따라 A~E등급으로 나뉜다. A, B 등급은 정원 조정 없이 현행 입학 정원을 유지하지만, C등급은 정원 30% 감축, D등급은 정원 50% 감축, E등급은 교원양성기능이 폐지된다.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에서는 신설된 지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중국어교육과를 제외한 영어·한국어·독일어·프랑스어교육과가 그 평가대상이 됐다. 이번 평가에서 한국외대 사범대학은 C등급을 받았고, 입학 정원의 30%를 감축해야 한다. 외대 사범대가 사범대학 설치대학 중 미흡한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외대만 인원 감축 대상이 된 건 아니다. 이번 5주기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결과에 따라 축소되는 중등교원의 규모는 3200명가량이다. 진단대상이 2만 6000여 명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12%라는 꽤 큰 규모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이다.
작년 12월 15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에서 발표한 '교원양성체제 발전 방향 권고안'을 살펴보면, 이번 5주기 평가의 속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권고안의 주요 내용은 “교원양성과 임용 규모의 불균형이 교원양성 교육의 내실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 중등(교원)은 양성 규모의 축소가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즉, 사범대 및 각 교육학과에서 배출되는 인원에 비해 실제 교원 임용 시험에서 선발되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아예 교원 양성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부가 ‘인원 30% 감축’을 명했긴 하지만, 학과 구조조정 방식은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이번 사범대 학제개편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이 구조조정 과정이 학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독단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사범대 학제개편, 6개월의 타임라인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결과는 올해 2월에 발표됐지만, 실제 결과는 작년 10월 하순경에 학교 집행부로 전달됐다. 학교 집행부는 이 사실을 메일 등을 통해 사범대학 교수진에게 공지했고, 11월부터 학교 집행부와 교수진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C등급 판정 결과를 둘러싸고 11월 2일, 사범대학 전체 교수회의가 진행됐다. 그 다음 날에는 교수진 대상으로 사범대학 학제개편에 관한 온라인 투표가 진행됐고, 사범대학을 ‘사범대학 미설치대학’으로 변경하는 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9일 진행된 사범대학 학과장 회의에서 영어교육과 교수진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해당 안은 무산됐다.
12월 11일, 김인철 총장은 사범대학 학장단과의 면담에서 12월 말까지 사범대학 차원의 자체 개혁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이 개혁안의 전제는 다음의 두 가지였다. 첫째, 5개 학과 체제 유지는 불가능하지만, 각 학과를 전공으로 격하시켜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다. 둘째, 감축되는 입학 정원 30명에 대한 운영 및 관리는 사범대학에 맡기겠다. 이와 같은 총장의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21일 사범대학 전체교수회의가 진행됐다. 최종적으로 현행 체제를 유지하되 프·독·중 언어교육과를 ‘외국어교육학부’로 통합하여 운영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혀졌지만, 교수진 인터뷰에 의하면 이 과정 역시 순탄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논의 결과는 12월 24일이 되어서야 사범대학 학생 대표자들에게 처음 전달됐다. 이에 2021년 1월 4일, 사범대학 운영위원회는 앞선 일들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간담회를 실시했다. 1월 6일에는 운영위원회 차원의 입장문을 발표했고, 사범대 전공격하 반대 연서명을 진행했다.
4월 9일 교육부 최종 구조조정안 제출을 앞두고, 2월과 3월에 걸쳐서 사범대학 학생회 및 운영위원회와 학교 집행부 간 논의가 여러 차례 오갔다. 사범대학 학생대표자들은 5개 학과 체제를 유지할 것, 학생들을 학제개편 논의 과정에 포함할 것, 외국어교육학부로의 통합할 시 재학생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우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 어느 것에도 학교 집행부 측의 명확한 답변은 없었다.
한편, 3월 17일에는 학교 공지사항에는 느닷없이 학칙 개정안 공지가 올라왔다 사라졌다. 사범대학 외부에 ‘융합심리교육학부’라는 독립학부가 신설되고, 프·독·중 언어교육과를 외국어교육학부로 통합한다는 내용이다. 사범대학 운영위에 따르면 해당 안건은 사범대학 교직부 교수들이 제출한 안건이었고, 실제로 통과 직전까지 갔다. 원칙상 해당 개정안은 교무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의 논의를 거쳐야 하지만, 학교 집행부는 이 과정을 무시한 채 이사회에 안건을 바로 제출했다. 결국 해당 안건은 이사회에서 부결되고 공지 역시 내려갔지만, 학교 집행부가 독단적으로 행정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3월 22일에는 중국어교육과 학과장인 장은영 교수의 사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장은영 교수는 “평가점수 과반 이상이 학과와 관련 있는 만큼 가장 큰 책임은 역시 우리 사범대 교수들에게 있습니다. ∙∙∙ 평가 결과가 나온 이후로 줄곧 분열된 채 서로를 비난하고 서로의 책임만 따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라며 사범대학 교수진들이 문제 수습에 미흡한 대처를 보인 점을 반성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어교육과 교수진들은 독일어교육과와 프랑스어교육과의 규모 축소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해당 학과 교수진들이 모르게 기획조정처에 의견을 제출해 갈등을 빚었다. 중국어교육과 교수진은 학부제 운영은 반대했지만, 신설 학부인 중국어교육과가 이번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던 만큼 학과 정원 축소에도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3월 31일에 있었던 학교 집행부와 사범대학 운영위원회 간 면담에서는 학교 측의 충격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학교는 통상적으로 13-14명의 인원으로 학과 유지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C등급 판정에 따라 교육부 측에 “쇼잉(showing)”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더불어 학교 집행부와 타 단과대학의 A 과와 사범대학의 A 교육과 Flex 졸업 요건 점수에 차이가 있다는 점, 사범대학 교수진의 연구실적 등 학과 개편과 무관한 사유를 들어 사범대학 구성원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4월에도 사범대학 학생회의 항의 행동은 계속됐다. 4월 초에 개최된 교무위원회, 교원양성위원회, 대학평의원회 회의장 앞에서 학생들은 피케팅을 진행하고 입장문을 낭독했다. 결국 교육부에 사범대학 구조조정 최종안을 전달하는 마감일인 4월 9일 오전, 이사회에서는 최종적으로 프·독·중 3개 언어교육과를 ‘외국어교육학부’로 통폐합하는 안을 의결했다. 현재 학교 측은 교육부에 해당 안을 전달했으나, 학생들과 총동문회, 교수진 등 반발이 거센 만큼 교육부의 최종 승인이 이뤄질지 여부는 향후 주목이 필요하다. 학칙 개정 의결 직후, 사범대학 학생회는 구조조정 학칙 개정의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교육부에 공문을 송부했다. 독일어교육과 총동문회 역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C등급’, 어쩌면 예견된 결과?
이번 사범대 학제개편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학교의 비민주적인 의사소통 과정이다. 당면한 문제 앞에서, 구성원의 의견을 듣고 더 나은 해결방안을 강구해나가는 과정은 민주주의 사회의 공동체라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범대 5주기 평가 C등급’이라는 문제 앞에서 학교는 일방적으로 ‘학부제’라는 이해하기 힘든 대책을 내놓았을 뿐이다. 물론 ‘학부제’라는 방안이 학교가 말하는 학교의 발전에 적합한지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당 문제에 얽힌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을 배제하며 그들만의 ‘최선의 방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 문제인 것이다.
학제개편을 둘러싼 논의는 5주기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에서 받은 ‘C등급’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과연 사범대학 역량에 대한 논의의 시작점이 이곳이었을까? 사범대학 내부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평가 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사범대학 운영위원회는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이전부터 학생들의 의견 수렴 절차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교직 관련 분반 문제, 인프라 구축 요구를 했으나, 학교 본부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학교 본부에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평가 지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다양한 개선 요구를 계속해서 피력해왔다. 사범대학 운영위원회는 “강의 정원 축소나 교수 추가 임용에 대해 여러 차례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에서 들어준 바가 없다. 또 기존에 60명이었던 정원을 줄일 거면 30명으로 두 개의 분반을 하는 게 맞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40명으로 전체 정원을 줄여 정원 공백에 학생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며 그간 학교와 학생들 간의 불통을 이야기했다. 수업 규모의 경우 사범대학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평가 항목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번 교육부 평가에서 감점 요인이기도 하다. 이외 학내 임용고시 준비반에 대해서도 학교의 지원은 미비했고, 오랜 기간 학생들이 요구해온 사범대학 자치공간 24시간 개방조차 좌절됐다. 이번 평가에서 가장 큰 감점 요인이 됐던 낮은 재학생 만족도는 소통의 벽에 막힌 학생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눈과 귀를 막은 한국외대가 받은 ‘C등급’은, 결국 소통의 점수가 아닐까.
한편, 이번 평가에서 만점에 가까운 ‘정량 평가’에 비해 현저히 낮게 나온 ‘정성 평가’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구성원들의 이의제기가 이루어졌지만, 교육부는 자세한 소명 없이 '이의 없음'으로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교수진과 학생들은 학교의 소극적인 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의제기 과정 역시 학교 본부가 아닌 사범대학 교수진을 주축으로 이뤄졌다. 사범대학 운영위원회는 “이의제기에 대해 학교가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고, 결과가 이상하다고 말은 하면서 행동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신형욱 교수 역시 “학교에서 정원을 감축한다는 것은 매우 큰 사건이다. 조금 더 학교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구성원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교육부가 2019년부터 미리 평가 기준을 알려줬다는 점에서 미뤄보아, 이번 C등급 평가는 사범대학 구성원만이 아닌, 학교 집행부 역시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뒷짐 진 외대, 강 건너 불구경
학교는 교내의 큰 사안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주체이다. 즉,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공론장을 만들고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과거의 대처부터, 오늘의 사범대 학제개편까지 학교는 단독적으로 계획을 설립하여 통보했다. 학부제 개혁안이 논의되는 과정 역시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학교 본부에서 ‘사범대학 미설치대학’ 안이 거론되는 과정에서도 학생회장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계획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학생들과 교수진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았다. 신형욱 교수는 “사범대 교수진은 성명문을 발표했고, 의견을 여러 번 게재했으나 돌아오는 학교의 답변은 없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학교는 사범대 교수진에 회의를 하자는 말만 번복할 뿐, 성명문에는 전혀 응답을 주지 않았다. 사범대학 학생회는 올 1월 6일 사범대 전공 격하 반대 연서명 진행을 시작으로 학교의 논의 내용에 반대 의사를 담은 입장문을 발표했고, 구조조정 반대 피케팅을 이어왔으나 학교는 묵묵부답이었다. 사범대학 학생회장은 “구조조정 관련 협의체 구성 요청하는 공문을 학교 집행부에 제출했지만, 전혀 답변을 주지 않았다”라고 학교의 협상할 의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타 대학 사례를 살펴보면, 연세대학교의 경우 학사제도 상설협의체인 ‘교학협의회’를 실시하고 있다. 학사 일정과 재수강제도 정비부터, 등록금 반환까지 학사와 관련한 다양한 사안들을 학생회와 학교 집행부가 논의하는 협의체이다. 최근 연세대 교학협의회는 코로나19 특별회의를 이어가며 코로나와 관련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논하고 있다.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상설 협의 기구를 통해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구성원과 대화할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선행돼야 함을 알 수 있다. 진정 외대 본부가 학생들을 위해서 학제개편을 시도하려 했다면 공식적인 협의체나 회의를 여는 등 자리를 마련했을 것이다.
“교육부를 향한 showing” 길을 잃은 당위성
현재 발표된 사범대 학제개편안을 두고 사범대학 교수진과 학생들은 체제의 ‘구멍’을 지적한다. 먼저 통합학부 운영의 효율성이 의문스럽다. 교육부가 제시한 사안은 인원 감축이다. 프랑스어교육과・독일어교육과・중국어교육과를 한 학부로 묶어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에 대해 교수진과 학생 측은 큰 우려를 표했다. 애초에 세 언어의 학문적 기초가 다르므로 하나의 학부로 통합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없다는 것이다. 학부 4년이 한 언어를 배우기에도 부족한 시간임을 들어, 통합학부로 운영했을 때 학부생들이 전공언어를 배우기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사범대 운영위원회는 “세 언어의 뿌리 자체가 다른데 이 학부를 통합해서 재정적인 부분이 나아지게 통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라며 당위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다. 앞서 언급했듯, 회의 당시 부총장은 “교육부를 향한 showing이 필요하다”는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학제개편이 보여주기식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두 번째로, 학부체제로 변경한 이후의 대안과 방향성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학과가 없어지게 되면서, 학과제 당시 입학했던 학생들이 들어야 하는 강의 및 졸업요건 충족에 대한 대안이 없다. 학과사무실을 보전하겠다고 학교 측이 방안을 내놓았지만, 정확히 어떻게 운영을 할 것인지는 알려온 바가 없다. 사범대 운영위원회는 해당 사안에 대해 2~3년 후 군 휴학 등을 이유로 오랫동안 학교를 떠난 후 돌아오는 학생들의 경우는 어떻게 다룰 것인지 질의했으나, 학교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부제라는 파격적인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학교가 학부제로 통폐합한 이후 그리는 청사진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학부제는 언어에 특화된 교원 인재를 기르기에 적합하지 않고, 학부제로 입학한 신입생이 배울 커리큘럼 역시 빈약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학교에서 프랑스어교육과・독일어교육과에 대한 존폐를 논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당시에도 학교 본부는 프랑스어교육과・독일어교육과의 교원 임용 TO 감소에 따른 사범대학 통폐합 안을 제안한 전적이 있다. 신형욱 교수는 “외국어 중심 대학인 외대에서 우리 특성화될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사범대학 운영위원회는 교원 TO 감소와 관련하여 학령인구 감소가 반드시 교원인구 감소를 수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오히려 교원 1인당 담당하는 학생들의 수가 줄어들게 되면서 교육의 질을 높일 기회’라는 것이다. 장기적인 학교 발전을 위한 계획보다 눈앞의 임용률, 취업률 등 시장의 수요에 맞춰 학과의 존폐를 결정하는 근시안적인 결정은, 학교가 어떤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가를 묻게 한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현재 학제개편의 내홍은 학교의 불통에서 기인했다. 학교의 입장에서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왜 학부제가 필요하며, 어떤 점에서 학부제가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는지 부족한 설명에 대한 책임은 회피했다. 이러한 태도는 구성원들 사이 분열을 만들기까지 했다. 사범대학 내 5과 안에서도 통폐합 대상인 학과, 학부제 논의에 포함되지 않은 학과, 이번 5주기 평가의 대상이 아니었던 학과의 입장이 사분오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사범대학 구성원 간의 반목을 부추겼고, 학교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게 했다. 사범대학 학부제 개편안의 적절성을 따지기 이전에 점검해봐야 할 것은 학교가 구성원의 목소리를 얼마나 듣고 있는가이다. 이는 사범대학에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니다. 앞으로 학교가 맞이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들에 관해, 구성원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사범대 학제개편 같은 상황은 또 찾아올 것이다.
독단적 학제개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범대학 학생뿐만 아니라 타 단과대학 학생들도 이번 학제 개편에 상당히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선 학교 입결을 높이기 위해 사범대학 학과의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는 관점도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교육부의 C등급 판정이 내려진 이후에 학교가 적절한 협의체를 마련하고, 학제개편의 당위성을 명확히 설명했다면 학생들이 사후에 감정적인 논쟁을 지속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본질이 가려졌다. 학제 개편의 당위성을 논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해결할 과제가 아니다. 학교는 학제개편 이전, 학과 개선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 이후 개편 과정에서도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2013년 자유전공학부 폐지 및 2014년 동양어대(현 아시아문화대학)・서양어대 광역화 모집부터 2020년 융합인재대학 신설 강행, 2021년 통번역대학 통폐합 논의까지, 학교는 중대한 개편과정에서의 소통에 인색했다.
핵심은 개편 대상 학과의 존재 가치와 비전이 아닌 학교의 불통과 책임이다.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기 이전부터 학생들은 미비한 사범대 커리큘럼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이를 외면한 것은 학교이다. 학교가 자행한 이런 불통의 비극은 비단 사범대 만의 일이 아니다. 언제든지 학교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어떤 학과든 통폐합할 수 있다. 명백한 이유와 근거도 없이 그저 학교의 독단에 끌려다녔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번 사범대학 학제개편의 본질을 다시 한번 신중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지원 기자 suv110@hufs.ac.kr
배시은 기자 bc0527@hufs.ac.kr
이지민 기자 starwave0224@gmail.com
조시은 기자 ohno282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