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가까이에 있었는가

  • 등록 2025.01.10 15: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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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선포 이후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거리를 밝혔다. 2030 여성들이 서랍 속 고이 잠들어 있던, 혹은 방 한켠 고이 모셔두던 응원봉을 챙겨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위한 시위에 나타난 것이다.

 

이는 지난 80-90년대 여성운동이 활발하던 시기를 지나 여성의 연대를 찾아보기 힘든 지금 여성운동에 있어 특이한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성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막 대두하고 활개치던 20세기 후반과 여성이슈별로 산발적으로 연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나타나는 21세기 초반 지금은 여성운동도, 연대하는 여성들도 다르다.

 

불과 30-40년 전, 지금의 우리 어머니들이 청년이었을 때는 여성인권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누려지는 시기가 아니었다.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개념화되지도 않았고, 강간범에 대한 여성의 정당방위가 쉬이 인정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한국여성의전화 창설을 통한 '성폭력' 개념의 등장과 변월수 사건을 통해 정당방위 논쟁을 살펴보며 지금의 여성들이 지금의 삶을 누릴 수 있는 데에 어떤 배경들이 있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 사회에서 '매맞는 아내', '아내 구타' 문제가 본격적으로 여성들의 관심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 것은 1983년 6월부터이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1980년 광주항쟁을 통해 민중의 저항을 진압한 신군부가 미국의 후원을 받으며 새로운 군부독재체제를 공고화하는 때였으며, 사회운동 또한 잠복기 및 침체기로 들어섰던 시기이다.

 

당시 여성운동계 또한 체제 순응적인 여성단체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 시기 한국 크리스천 아카데미 여성사회가 아내구타 문제를 심각한 여성 문제로 포착했고, 이들은 성적 불평등의 문제를 운동과제로 세우고 독자적인 여성운동으로 만들어내고자 했다.

 

1980년의 삼엄한 정치적 상황과 민주화라는 사회운동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여성문제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여성들은 사회민주화운동과 함께 여성억압에 대한 독자적인 대항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남녀 관계의 민주화 없는 사회 민주화는 공허한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민족민주운동과는 별개의 운동을 형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중산층 여성들이 주도하는 이 운동은 '여성의 인간화'*를 기반으로 삼고 대중여성들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여성억압의 문제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렇게 시작된 아내구타추방운동은 피해여성을 돕는 상담활동과 구타문제해결로서의 대사회운동을 전개했다. 그렇게 1983년 6월 11일 여성의전화가 개원하며 일반여성들이 전화로 상담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의 인간화는 여성의 단순한 지위향상운동이 아닌 일체의 주종 사상, 억압제도를 거부하고 여성의 인간화와 전체가 해방된 공동체사회를 지향하는 운동의 일환이다.

 

이후 신군부는 체제 안정화를 위해 유화 정책을 택하며 정치지형과 사회운동의 판도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민주화운동 진영은 큰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여성의전화 또한 여성평우회와 함께 1984년부터 정치투쟁에 함께하게 되었다. 이렇듯 민주화투쟁이 점차 격렬해지며 여성의전화는 사회민주화운동세력과의 연대활동에 보다 더 큰 힘을 싣기 시작했다.

 

이에 여성의전화는 독자적 여성단체로서 가정폭력, 성폭력, 사회폭력을 투쟁 대상으로 중간층 여성들이 벌이는 평화운동단체로 정의되게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여성의전화는 1980년대 말까지 민족민주운동과 연대하는 한편 당시 빈번하게 발생했던 성폭력 추방운동에 더 큰 힘을 쏟았다.

 

성폭력 개념 논쟁

 

1990년대 후반까지도 아내구타가 빈번하고 심각하게 발생했음에도 아내구타에 관한 법이 제정되지 않았다. 법이 없다는 것은 아내구타를 허락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일단 결혼하면 여성이 남성의 소유이고 남성이 어떻게 해도 좋다는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시각이 반영된 것이었다.

 

여성의전화는 개원 때부터 아내구타에 대한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해왔으며 1991년 4월 18일 '성폭력(여성에 대한 폭력)특별볍 입법을 위한 공청회'에서부터 '여성에 대한 폭력관련특별법' 논의를 제기했다. 공청회에 이어 여성의전화는 연대를 시작했고 '성폭력특별법 제정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를 결성했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한 추진위는 기존의 추진위를 해체하고 1992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 내 성폭력특별법제정추진특별위원회(이하 성특위)를 구성하고 전국적인 제정운동에 착수했다. 그러나 성폭력 개념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졌다. 여성의전화는 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의미로서 아내구타를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했으나,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협의의 개념으로서 성관계 중심의 개념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성의전화는 아내구타는 대개 아내강간과 아내에 대한 성적 학대를 동반하며, 강간은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마구 때리는 구타는 성폭력으로 보지 않으면서 슬쩍 만지는 성추행은 성폭력으로 보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성폭력 개념을 넓은 의미의 성폭력으로 채택하면 강간을 성폭력의 전부로 생각하는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다양한 성적인 억압을 성폭력의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피력했다.

 

즉 여성의전화는 성폭력의 범주에 여성들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경험하는 남성으로부터의 폭력적 위협, 감정적, 심리적 손상에서부터 성희롱, 성추행, 성관계에 대한 압력과 위협, 성적 모욕, 음란전화, 아내구타, 성기 노출, 강간, 근친 강간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관련법은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으로 분리 제정되며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다루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또 분리 제정의 결과로서 아내구타가 여성폭력이라기보다 가정폭력 사안으로 인식되고, 가정폭력방지법은 성 중립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변월수 사건과 정당방위

 

제21조 (정당방위)

①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한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는 정황에 따라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③ 제2항의 경우에 야간이나 그 밖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를 느끼거나 경악하거나 흥분하거나 당황하였기 때문에 그 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제21조는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급박부당한 침해에 대해 자기 또는 타인의 권리를 방위하기 위하여 부득이하게 된 가해행위라고 기술한다. 즉 누구도 부당한 침해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규정된 것이 형법 제21조의 정당방위이다.

 

정당방위 논쟁이 불거진 변월수 사건은 1988년 9월 10일 한밤 중 귀가길에 변월수라는 평범한 주부가 달려드는 강간범의 혀를 잘라 자신을 방어한 사건이다. 정당방위 논쟁이 일어난 이유는 변월수가 피해자임에도 가해 남성의 혀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되었고 과잉방어로 징역 1년이 구형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단체의 비난에도 사법부는 정당방위로서 인정될 수 없는 지나친 행위였다며 변월수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결국 여성운동단체의 투쟁으로 무죄판결을 받아내긴 했지만 이는 성폭력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가해자측의 변호사는 변월수가 사건 당일 먹은 술의 양, 동서와의 불화 등을 계속 거론하며 그를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웠다. 또 변월수가 폭행당할 때 가해자 행위의 순서가 바뀌는 것에 대해 검사가 호통을 치는 등 피해자가 죄인으로 취급되는 모습이었다.

 

1심에서는 여성에 대한 사법부의 편견과 여성의 인권보다 남성의 혀를 더 중시하는 사법부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났으며, 2심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아냄으로서 피해 여성의 음주상태, 식당경영 사실, 밤늦은 시간에 혼자 다닌 점 등이 성폭력을 합리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당연한 비합리화 사유지만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었는지 변월수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시 한 번 여성의 연대

 

80년대 아내구타 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의전화의 개원과 성폭력법 제정을 통해 '성폭력'의 개념을 성관계 중심의 좁은 개념이 아닌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 광의 개념으로 여성의전화는 정의하고자 했다. 변월수 사건을 통해 여성의 정당방위에 피해자의 음주상태나 늦은 시간의 귀가가 고려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우리 사회는 분명히 했다.

 

과거 여성의 연대를 통해 여성의 삶과 인권은 더 이상 사회와 남성으로부터 심각하게 위협받지 않게 되었다. 직므 여성단체의 연대가, 그리고 여성들의 연대가 이전만하지 못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여성들의 연대가 과거만큼 활발하지 못한 것을 단순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여성문제는 아직 해결의 단계에 있지 못하다. 80년대부터 이어져 온 성폭력의 문제, 아내구타와 이어지는 가정폭력의 문제, 그리고 최근 대두되는 데이트폭력과 디지털성범죄까지 여성이 연대해야 할 부문은 여전히 존재하지 때문이다.

 

[편집자주]

앞으로 대학알리는 여성문제 해결을 위해 힘썼던 여성운동가,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그리고 디지털성범죄에 이르는 여러 여성문제를 청년과 대학생의 시각에서 다루고, 다시 한 번 여성들이 연대하기 위해 어떤 목소리와 시각이 필요할지 짚어보고자 한다.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기하늘 기자 sky41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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