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WEEK 1일차] 얘, 너 그거 데이트폭력이야.

  • 등록 2018.12.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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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초, 서울캠퍼스 사회과학관에 본인이 데이트폭력 가해자라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어. 데이트폭력이 뭘까? 일반적인 폭력과 어떤 점이 달라서 ‘데이트’폭력이라고 적었을까? 데이트폭력이 무엇인지 같이 알아보자. 
(*기사의 내용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1. 데이트폭력이 뭔데?

 

[서울캠퍼스 사회과학관에 붙여진 데이트폭력 사과 대자보]


  데이트폭력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성적, 언어적, 정서적, 경제적 등 모든 폭력이야. 데이트 관계란 1) 연애를 목적으로 만나고 있거나 2) 만난 적이 있는 관계, 3) 만남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만나는 관계까지 포함해. 연인뿐만 아니라 맞선, 부킹, 소개팅, 썸을 통한 관계에서의 폭력도 데이트폭력이야. 당장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사귈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그 사이에서 일어난 폭력은 데이트폭력에 해당하지.

  데이트폭력은 일반적인 폭력과 달리 ‘데이트’라는 특정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적 폭력과 분리해 다루어야 해. 사적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을 공적 차원에서 다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야.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더욱더 그러하다고. 데이트라는 사적 관계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공공의 힘이 잘 개입되지 않는 상황이 잦아. 또한 사적 관계 중에서도 친밀한 관계에 속한다면 단순히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적, 경제적 폭력이라도 그것을 폭력이라고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아. 더군다나 데이트 관계에는 ‘감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데이트폭력의 피해자는 폭력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아. 데이트폭력의 피해자 상당수는 ‘내가 잘못했으니 저렇게 화낼 거야’, ‘나만 참으면 돼’, ‘앞으로 내가 행동을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거든.

  2016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의 피해자 중 여성이 77.6%이야. 남성 피해자도 5.3%를 차지해.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데이트폭력의 여러 설문조사도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것 같아. 성인 여성 중 61.6%가 최근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어.1)설문조사 응답자의 90%가 20대인 점을 미루어볼 때, 20대 여성의 절반이 데이트폭력을 겪어본 적이 있는 거지.

  외대알리 자체적으로 한국외대 학우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남학우 23명, 여학우 47명 총 70명의 학우가 설문조사에 응해줬어. 70명이 외대의 전체 학생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대충 감을 잡는다는 느낌으로 외대알리 설문조사를 사용할게. 외대학우 70명 중 30명이 데이트폭력의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해. 단순히 외대생 두 명 중 한 명은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데이트폭력의 피해자가 외대 학우 중에 없지 않다는 것, 적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겠지? 데이트폭력은 9시 뉴스나 신문에서만 볼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야.

  데이트폭력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어. 앞서 말했듯 데이트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 모두가 데이트폭력이라고 생각하면 쉬워. 데이트폭력은 크게 7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신체적 폭력, 성적 폭력, 정서적 폭력(언어적, 비언어적), 경제적 폭력, 디지털 데이팅 폭력, 스토킹 유사 폭력, 감금 및 납치가 있어.2)
이해를 돕기 위해 데이트폭력의 유형을 문답형식으로 정리해봤어.
 

1) 손문숙, 조재연.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 결과와 과제」 한국여성의전화, 2016. 

2) 김도연, 이기은, 이종현. “데이트폭력 피해 및 실태조사 결과.” 『2017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연구보고서』,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2017.

 

 

2. 이것도 데이트폭력인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당했을 수도, 혹은 했을 수도 있는 데이트폭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애인에게 처음으로 맞았어. 근데 바로 저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다시는 안 때리겠대요. 저를 엄청나게 사랑해주긴 하거든... 이것도 데이트폭력이야?

- 사랑이라고 표현하지만, 폭력을 쓴다면 그것은 사랑도 무엇도 아닌 폭력일 뿐이야. (신체적 폭력)

 

#2 애인이 나를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저 말고도 다른 사람이 생긴 건지 의심되거든. 그래서 메신저 대화 내용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싫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 스스로 떳떳하면 보여줄 수 있는 거 아니야?

- 어떤 관계에서든 각자의 생활과 상황은 존중받아야 해.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삶의 고유한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행동은 엄연한 폭력이지. (스토킹 유사 폭력)

 

#3 애인이 옷차림에 계속 간섭해. 그래서 애인을 만날 땐 입고 싶은 옷을 못 입고 나가. 다른 사람들이 나쁘게 보는 게 싫대. 다 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

- 각자의 자율성이 존중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맞춰가는 관계는 위험해. 자신을 위해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은 조율이 아닌 폭력이야. (정서적-비언어적 표현)

 

#4 애인이 자꾸 성관계를 거절해. 자기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대. 이럴 거면 친구로 지내지 왜 사귀나 싶기도 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

- 사람에 따라서 성적 욕구와 취향도 다르고,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성행동도 달라. 그렇기 때문에 서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함께 준비하고 결정해야지.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한 쪽의 욕망과 의지만을 강요해서 결정하는 건 성폭력이야. (성적 폭력)

 

#5 애인이 5천 원, 만 원씩 자꾸 돈을 빌려 달래. 애인이 굶고 다니거나 친구들이랑 못 어울리는 건 싫어서 빌려는 주는데 안 갚아. 언제 갚을 거냐고 물어보면 나를 믿지 못하냐며 오히려 짜증을 내고, 곧 갚을 거라고 말해. 이렇게 조금씩 빌려준 돈이 사실 꽤 되거든...

- 애인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애인에게 돈을 빌려줬을까? (경제적 폭력)

 

#6 영화 ‘노트북’에서 노아가 앨리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장면도 데이트폭력이야?

 

 

- 이건 데이트 신청을 가장한 데이트폭력이야. 앨리는 노아가 자신의 눈앞에서 떨어져 죽거나 다치는 걸 볼 수 없어서 노아와 데이트 약속을 잡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상대방과 만남을 약속 받거나 호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안전을 담보로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는 건 엄연한 폭력이지.

 

#7 앞의 사례는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 일상적인 데이트폭력을 담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는 없어?

- 당연히 있지, 왜 없겠어. 우선 의도대로 데이트폭력을 잘 묘사한 드라마는 ‘청춘시대’라고 생각해.

 

 

  ‘두영’이 ‘예은’에게 하는 거의 모든 행동이 데이트폭력이라고 보면 돼. 언어적, 물리적 폭력부터 성적 폭력, 납치 및 감금까지 데이트폭력 가해자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그리고 로맨스를 표방했지만 알고 보면 데이트폭력을 그린 드라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아닐까. ‘무혁’이 운전하면서 ‘은채’에게 했던 말이 그 드라마의 명대사잖아.

 

 

“밥 먹을래 나랑 뽀뽀 할래, 밥 먹을래 나랑 잘래, 밥 먹을래 나랑 살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차 속에서 운전자인 무혁은 은채에게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드라마에서는 이 장면이 아름답게 포장되어서 오늘까지도 패러디되어 회자되긴 하지만 전형적인 데이트폭력이야. 본인이나 상대방의 안전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폭력이지, 사랑이 아니야.

  흔히 알려진 신체적 폭력, 언어적 폭력만 데이트 폭력이 아니라는 점 알게 됐지? 동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라도 성관계를 찍어서 유포하는 리벤지 포르노나 합의 없는 피임까지도 모두 데이트폭력에 해당해. 데이트폭력의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상대방의 옷차림이나 인간관계 등 개인적인 영역을 구속해서도, 더 이상의 소통 의사가 없는 상대에게 소통을 강요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가지고 상대를 협박해서도 안 된다는 점 꼭 명심하자.
 

 

3. 데이트폭력 피해를 입었다면...?

 

  우리는 대학생이잖아. 나이가 어려 성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사회 경험도 부족하고, 직업이 없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여유가 없는데 데이트폭력 피해를 입으면 제대로 대처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 또 친구가 피해를 입었을 때, 대학생인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런 부분이 막막해져서 이 분야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어. 아무래도 데이트폭력의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활동하는 재재님께 연락을 드렸어.

  재재님은 대학생이 데이트폭력을 입었을 때 일반적인 성인과 달리 대응하기에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하셨어. 폭력 피해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을 원하지만 돈이 충분치 않아서 원하는 방식으로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야. 또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면, 학업과 교우관계 뿐만 아니라 일상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고 해. 다행히도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와 같은 지원기관이 있으니 꼭 상담을 받고, 같이 대응방법을 찾아보길 권하셨어. 상담소마다 차이가 있지만 데이트폭력 피해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해주거나 법률 상담, 심리 상담을 연계해 주기도 하니까 혼자서 아프지 말고 반드시 도움을 청하자.

  그렇다면 주변에 데이트폭력 피해를 당한 친구가 있다면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까? 피해자인 친구가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 또, 우리는 데이트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친구에게 믿음과 지지를 꾸준히 보내줘야 해.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에 “헤어져” 혹은 “경찰에 신고해”라고 섣불리 말하는 것보다는 친구가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주자.

  가해자와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계획을 같이 세우고, 학교생활과 일상을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해. 같이 맛있는 식사를 하거나 친구가 힘들 때 수업 필기를 대신해주기 아니면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장소로 놀러 가기 등 거창할 필요 없이 작은 일부터 해나가도 큰 도움이 될 거야.

 

“공동체 내 데이트폭력 등 사건처리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구성원들이 가해자 징계 등 사건처리에만 매몰되어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중재를 한답시고 갑론을박하고, 정작 사건처리 전반에서 피해자를 고립시키거나 배제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일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가해자가 법적인 처벌이나 퇴학 등의 징계조치를 받지 못하더라도 학내에 피해자를 지지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결코 진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맞아. 가해자가 죗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사회적 제도나 학교 징계제도가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우리는 피해자 옆에서 친구의 일상을 같이 꾸며나가면 돼. 우리는 데이트폭력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 전적으로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점, 그리고 그에 대해 온당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 공동체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잊어버려서는 안 돼.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피해자에게 큰 힘이 될 거야.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데이트폭력을 하지는 않은지, 피해자가 기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자.

 

박원희 기자 (bagooooni@gmail.com)
장희지 기자 (boa5219@gmail.com)

장희지 기자 boa52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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