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표지모델, 음악과 14학번 황효원

  • 등록 2016.08.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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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학번이었던, 그리고 지금은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두 아이의 아빠 황효원 학우를 만났다. 20년 전엔 디자인 공부를, 지금은 맨발로 도장 바닥을 밟으며 도장을 찾는 사람들과 가지각색의 고민을 나누고 있다. 올해부터 14학번이 되어 성악 공부를 시작한 황효원씨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효원씨의 하루

 

아내가 둘째를 출산을 한 지 이제 20일이 채 안 됐어요. 첫째 아이는 제 몫이죠. 6시쯤 일어나 첫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해요. 아이도 씻기고 도시락도 씻고 준비를 해서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8시쯤 되요. 이때부터는 저의 수업 준비를 해요. 그리고 오후 5시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도장으로 달려가요. 학교 수업이 조금 늦게 끝나는 날에는 도장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해요. 학생부터 취업준비생, 직장인, 그리고 나이 많으신 분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분들이 있는 수업이 끝나면 모두 도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해요. 결국 11시가 넘어 수업이 끝나죠. 그때부터 새로운 일과가 시작돼요. 더러워진 도장 바닥을 닦고 12시부터는 그 다음날 도장 수업 준비를 해요. 학교준비가 아니라.(웃음) 그날 들어온 회비도 정리하고 도복이 없으면 도복 주문, 시합준비... 집에 들어가면 결국 새벽 2시, 3시 정도 되요. 결국 집에서 학교까지 왔다 갔다 하는 한 두 시간 정도가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사실 곡도 어렵고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지만 음악을 사랑하니까 시간이 많이 부족함에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대, 과연 행복했을까?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 음악과 미술 두 분야 모두 가능성을 열어뒀어요. 입시 당시 IMF였기 때문에 상황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취업이 잘 되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서 두 가지 다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모 대학교 성악과와 타대학교 디자인학과 두 곳 모두 합격했죠. 한참 고민하던 때에, 이태리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형을 만났어요. 당연히 귀국독창회를 할까 싶었는데 형이 한국에 와서 처음 건넨 말은 ‘나 취업했다’였어요. 충격이었죠. 음악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자동차 회사의 영업 판매원이 됐거든요. 형은 음악으로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 내린 결정이라고 했어요. 그때 다짐했어요. 음악은 하지 말아야겠다고.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공모전에 많이 나갔고 상도 탔어요. 그러다가 2학년 때 대기업 디자인 부서에 취업했어요. 노트북이나 캠코더 같은 기기의 외장 커버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리고 ‘대박’을 터트렸죠. 은색인데 붉은빛과 푸른빛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커버, 혹시 보셨나요? 그거 제가 만들었어요.(웃음) 학교를 더 이상 다닐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그만뒀고, 돈도 정말 많이 벌었어요. 이 케이스 만들고 27살 때 지금의 아내와 결혼에 골인했죠.  

당시 담배를 하루에 7갑 폈어요. 10분마다 한 개비를 피운 셈이죠. 돈도 많이 벌고 결혼도 했지만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았어요. 새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스트레스였어요. 대다수는 ‘색’을 떠올릴 때 흰색과 검은색은 구분이 잘 되고 그 가운데 수많은 색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절대 아니에요. 흰색과 검은색이 가장 많아요. 흰색과 검은색은 공장, 날씨, 습도에 따라서 달라져요. 이 세상에 완벽한 검은색과 흰색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게다가 제가 점 하나 찍으면 모든 제품에 점이 찍혀서 나오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죠. 그래서 계속 담배를 피웠던 것 같아요. 몸의 모든 부위가 고장 나기 시작했어요. 그 젊은 20대에요.

팔굽혀펴기 두 개밖에 못하는 남자가 되었다. 
눈도 침침하고 귀도 잘 안 들렸어요, 몸 안의 장기들이 모두 뒤틀리는 느낌이었죠. 결국 회사를 그만 뒀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시절 크레파스는 6개였고, 중학교 때 12개, 그리고 고등학교 땐 24개가 나왔어요. 흑백텔레비전을 보며 자라온 제가 평면, LED TV 세대의 어린 후배들과 어떤 ‘차이’ 가 난다는 걸 느꼈어요.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짧죠. 몸이 안 좋아 집에서 쉬고 있던 와중 아는 분께 전화가 왔어요. ‘너 집에 있으면 도장에 한번 와볼래?’ 이 형은 캐나다에서 성인들을 위한 운동을 배워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일본에서 극진 가라데를 배워오셨어요. 바로 대답했죠. ‘네, 가보겠습니다.’

나름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장에 가서 팔굽혀 펴기를 하고 충격을 먹었어요. 딱 두 개 했어요. 그 두 개도 아주 힘겹게 했어요. 돈 벌고 취업하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들을 해냈지만 저는 팔굽혀 펴기 두 개에 지쳐버린 거예요. 도장 옥상에서 두 시간을 울었어요. 인생이 너무 초라하고 허무했죠. 바로 담배를 끊었어요. 내가 건강하지 못하면 가족들이 살 수 없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저도 지금 하고 있는 도장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요. 여러 일을 겪고 안정을 찾아갈 때 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어릴 때부터 저를 돌봐주셨던 여러 권사님들의 흰머리만 보이는 거예요. 이제 그들을 누가 돌봐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와중에 아시는 권사님이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꼭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고 하셔서 손을 꼭 잡고 불러드렸어요. 그리고 바로 소천 하셨어요. 근데 왜 다 돌아가시고 나서 예배를 드릴까 하는 의문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는 걸까 하는 고민도 했고요 그래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제 마음대로 지어본 이름이지만 ‘장의사 성악가.’ 편안하게 운명하실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요.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예체능을 겸비한 휴먼아트를 꿈꾸다.
체육관에 오는 분들로 하나의 사회가 구성돼요. 각 연령층, 서로 다른 고민들. 아무래도 저에게 고민을 많이 이야기 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오더라고요. 그 때 생각했죠. 지금까지 배워왔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미술, 체육, 그리고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면 좋겠다고. 예전에 도장에서 우울증과 조울증으로 힘들어 하던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가 제안한 게 노래방에 가자는 것 이었어요. 같이 춤추고 노래 부르고 운동 했어요. 이런 요소들이 그 친구에겐 큰 힘이 되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지금은 군대에 갔어요. 
 젊을 때 유도선수를 하면서 매번 성적이 좋지 않으셨던 분이 계신데 올해 나이가 60이 넘으셨어요. 그런데 오래 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친구 분들이 지금은 유도를 이 분을 이기질 못해요. 당시 금메달을 땄던 분은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 때문에 유도를 더 이상 안하게 되요. 누군가를 지도하고 지휘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마지막까지 누가 유도를 했느냐, 누가 끝까지 자기가 재미있는 걸 하느냐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금메달 따셨던 분들은 다시 유도를 하고 싶어도 몸이 굳어버렸어요. 그 분들은 하나같이 후회하시더라고요. 체육관을 하면서도 이런 것들을 알려주고 깨우쳐 주고 싶어요. 단순히 신체활동을 넘어서 정말 중요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소중하니까요. 

전 세계적으로 ‘휴먼아트’ 라는 학문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논문 한 편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저의 최종 꿈은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본성을 찾아주고 자아를 회복시켜주는 거예요. 지금은 음악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언제 졸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웃음) 이 후에 상담도 배우고 싶고,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더 배워보려고 해요. 그렇게 늙고 싶어요.


행복하세요?
이 물음에 효원씨는 정말로 행복한 고민이라며 한참을 망설였다. 효원씨는 할 일이 없어서 고민인 게 아니라 할 일이 많아서 고민인 것 자체가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효원씨는 우리 학교에 편입하기 전에 타 대학의 영문과에서 야간대학을 다니기도 했다. 디자인 업무를 볼 때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더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효원씨를 거쳐 간 대학이 참 많다.  효원씨의 20대, 30대 그리고 지금 40대에서는 자신에게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떻게 다른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꾸준히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자기를 알아가는 게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지금 취업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시죠? 경제적인 것들이나 현실적인 문제들, 분명 따라와요. 좋아하는 일 하면서 행복하다면요.


표지모델의 소울푸드 
회요. 지금도 군침이 막 도네요. 초밥 정말 사랑해요. 우리학교 학식에서도 회덮밥이 가장 입맛에 맞아요. 사실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저는 메뉴도 잘 안 봐요. 그냥 골라주더라고요. (웃음) 제게 먼저 다가와서 ‘사범님 같이 밥 먹어요~’ 라고 말해요. 같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세종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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