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려! 열중쉬어! 차려! 전방을 향해 힘찬 함성 10초간 발사!” 오늘도 63만의 군인들은 이렇게 아침 6시면 기상하여 강산에 젊음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꽃다운 20대 나이에 나라를 위해 그리고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간 그들을 위해 잠시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군필 독자들이라면 아실테지만, 군생활의 2년의 시간은 땀과 피를 흘리는 고되면서도 고립된 시간입니다. 그래서 10월 1일인 국군의 날은 그 수고스러움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수고스러움을 알고 군대 밖에서 장병들을 항상 지지하고 응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고무신들입니다. 세종알리가 이분들을 만나봤습니다.
[일이병 커플-최수진 김동훈 커플]
그네는 그와 그녀의 설렘을 기억한다
먼저 9월 6일부로 고무신이 되신 최수진 학생을 만났다. 입대하기 일주일 전에서야 남자친구의 입대 소식을 들은 최수진 학생에게 군대란 어떤 의미인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군대란 새우잡이 배에요. 그냥 뒤통수를 한 대 빡 때리고 도망갔어요.”
군대가 자신을 때렸다는 건지, 갑작스러운 통보가 그랬다는 건지 헷갈렸지만, 그녀는 분명히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이런 충격을 주고 간 그는 강원도 철원 6사단 신교대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을 거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녀에게 어떻게 기다릴 결심을 했냐고 물으니, 그런 결정 할 여유도 없이 가버려 그냥 담담히 기다리게 됐다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담담함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한번은 자기가 우울해서 남자친구가 아웃백으로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 그러다 어린이대공원에 가게 됐는데 그 안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게 됐다고 한다. 그 그네는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그걸로 왔다 갔다 하니 어느새 동심이 무럭무럭. 그녀가 회상하는 눈빛에는 그 순수한 순간이 담겨있는 듯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해준 이벤트가 있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람 간의 관계도 엄청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며 입대할 때 만나 뵌 남자친구 부모님도 그런 얘기를 하셨다고 했다. 남자 선배들한테 예쁨 받을 정도라니 듣기만 해도 어떤 친구인지 감이 왔다. 그녀는 남자친구의 동네친구부터 시작해서 과친구, 다른 모임 친구까지 부탁해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게 받은 쪽지를 하트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고 규정 규격에 맞춰서 남자친구한테 고이고이 접어서 부쳐줬다. 듣는 내내 부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안에 있는 군인들이야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남자친구는 진짜 복 받은 남자라고 꼭 전해주겠다고 했다.
힘든 점은 없냐 물어보았다. 그녀는 2~3일 정도 손편지를 쓰고 매일 2통씩 인터넷 편지를 쓰면서도 안타까운 점은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힘든 티를 안 낸다는 것을 제일 서운해했다.
“적어도 저한테는 힘든 걸 말해주라고. 그런 거를 티 좀 내야 제가 응원의 힘내고 걔보고 힘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로 지금의 서로에 대해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에 대해 답답해하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녀는 그가 전역하고 나면, 다시 어린이대공원에 가서 천진난만하게 그네를 타고 싶다며 소망의 한마디를 남겼다.
[상병장 커플 - 길유정, 최진우 커플]
지극히 현실적인, 그리고 지극히 낭만적인
이번 커플은 일말상초 커플. 일이병 시절 많은 갈굼과 구박을 받고 일에 익숙해지는 기간이 끝나면 어느새 권력의 맛을 알아가는 단계가 찾아온다. 그 시작이 바로 일말상초부터다. 군대 내의 권력 역전 현상은 고무신과의 관계에서도 작용한다. 전화가 뜸해지고 편지가 줄어드는 등 연락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다. 전에는 전화하면 무조건 고무신의 편에서 걱정해주고, 갈등이 있더라도 굽혀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길 시작하다 갈등이 커져 헤어지는 커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커플이 이런 것은 아니다. 갈수록 좋아지는 커플도 있다. 최진우, 길유정 커플이 바로 그러했다.
현재 나노신소재 14학번인 길유정 학생은 현재 철원 6사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진우 상병과 2년째 만남 중에 있다. 길유정 학생의 기다림에는 결코 최 상병의 노력이 없지 않았다. 연애 초기부터 많이 좋아해 줬고 세심하게 챙겨줬다고. 특별히 꽃 선물도 많이 해줬다는 건 안비밀. 물론 그녀도 그가 군대가기 3달 전 즈음에서야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이 앞을 가리며 막막했다고. 그렇게 서로 펑펑 울었지만, 군대에 들어가서 매일 연락을 해 그녀가 외로워하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이쯤에서 그가 그녀에게 해준 가장 로맨틱한 이벤트를 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제일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물어보았다. 한번은 그녀의 생일이 있는 날 최진우 일병(당시)이 훈련을 가게 되어 연락을 하지 못한다고 그가 알려왔다. 그녀는 어차피 생일날 알바도 있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더 힘들고 서러웠다고 한다. ‘친구도 못 만나고 왜 생일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 푸념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알바가 끝나고 집에 가는 순간 전화가 왔다. 폰 너머에서 그의 남자친구는 ‘생일 축하해’라는 한 마디를 헐떡거리며 내뱉었다. 어떻게 전화를 할 수 있게 됐는지 물어본 그녀는 그 남자의 사랑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본 기자도 광광우러따ㅠㅠ. 그가 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행군할 때 제일 열심히 한 병사로 뽑혀서 포상으로 전화하게 된 것이었다. 일병으로 가장 일도 많고 훈련도 고됐을 텐데 여자친구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며 훈련을 견뎌낸 최진우 일병은 그렇게 단 한마디로 한 여자의 심장에 사랑의 화살을 제대로 꽂았던 것이다.
물론 이런 장밋빛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군대가서 무뚝뚝하게 바뀐 말투에 오해하기도 했고 서로 싸우기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헤어지기 직전까지 간 적도 꽤 있다고. 그런 갈등을 풀어내고 지금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Big Secret은
“서로 이해해주면서, 서로 힘든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주는 것”
그리고 다른 고무신들을 위해 이런 말을 남겼다. “믿고 자기 할 일 하면서 지내는 게 답인 거 같아요.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여자친구도 군대가기 전처럼 똑같이 대해주길 바라지 말고. 서로 다른 곳에 있으니 서로 이해해주고 상대에게 무언가 더 해주길 바라지도 말고. 나만큼 걔도 힘들 거야 이런 생각으로 이해해주길.”
[상병장-김성은, 조건희 커플]
사랑을 한다면 불같이 그리고 냉철하게
마지막 커플, 상병장이다. 어느덧 군대를 보내고 일년반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쯤되면 군화와 고무신의 관계에 질릴만도 하지만, 이 커플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휴가엔 항상 둘이 함께 하고, 전화를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전화를 한다. 영어영문학과 14 김성은, 제11기계화보병사단 조건희 병장 커플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1000일이 넘은 장수 커플이다. 지금에야 기다린 기간보다 기다릴 기간이 짧아졌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어떻게 2년 간 기다릴 결심을 했냐는 질문에 김성은 학생는 “결혼할 생각을 하고 기다렸다”고 답변했다. 항상 너무 잘해주는 사람이었기에 결혼을 생각했고, 기다릴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군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이들에게 군대는 어떤 의미일까,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테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군대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기다리면서 가장 힘든 건 연락이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아플 때. 제대하고 나서 하고 싶은 것은 소박한 것이다. 원하는 시간에 통화하고, 마음 편하게 맛있는 거 먹고 다니고, 한강에서 하는 데이트 등이다. 함께 대학에 다니면서, 자유롭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못 하게 되니, 그런 것들이 하고싶다고 한다.
꽃신을 기다리며 둘 모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전화를 최대한 많이 해주고, 그녀는 2주에 한 번씩은 꼭 면회를 간다. 또한 소통도 중요하다. 서운한 게 있을 때 쌓아놓으면, 큰 싸움이 될 수 있으니 평소에 서로 얘기를 해야 한다.
군대에 보내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군대에 가면서 주고 간 꽃이었다. 군대에 가는 날 그는 그녀의 집에 들러 꽃다발을 안겨주고 갔다. 외출인 줄 알고 갔는데 외박이었던 날도 있었고, 수료식 때 받는 외출이 메르스 때문에 미뤄져 외박이 된 적도 있다. 외출보다 외박이 좋긴 하지만, 수료식 때 얼굴 볼 것만을 간절히 기다리다가 못 보게 되는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그녀는 기다린 기간보다, 기다릴 기간이 더 짧아진 지금, 다른 커플들에게 “기다린다면, 바쁘게 지내라” 라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자친구가 전역한다면 꽃신과 꽃을 받고싶다고 하니 이 글을 읽으신다면 명심하시길!
글,취재 정규일 ttuuxx321@sejongalli.com 김하늘 haneul@sejongall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