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혐오표현 대학교수,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 등록 2020.05.26 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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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 발언 L교수, 4년간 명예교수 재직 예정

학생사회 적극적 행동 없이는 변화도 없어

교수사회 뿌리 깊은 뒤틀림 이제는 바로잡아야

<L교수의 수필. 남자는 교수, 여자는 창녀> 

 

▲L교수가 학생들에게 과제로 부여한 글 '더 벗어요?' 중 일부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대학 L교수의 여성 혐오 글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학생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L교수는 블로그에 여성을 상품화하고 성적 대상화하는 글을 다량 게시했다. 

https://univalli.com/news/article.html?no=23021 (외대알리 기사: 한국외대 경영대학 L교수, 블로그에 여성혐오 게시글 다량 발견)

 

또한 그는 자신이 담당하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블로그의 수필을 읽게 한 뒤 감상문을 제출하는 과제를 부여했다. 학생들은 이에 ‘일부 글의 내용이 부적절하다’며 항의했으나 L교수는 “글의 주제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며 성평등센터를 운운하며 교수를 협박하지 말라”는 공지를 게시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L교수는 감상할 수필 목록을 직접 지정했으나 목록에는 여전히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불쾌감을 주는 글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어지는 논란에도 학교 측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

 

L교수 논란에 한국외대는 5월 25일, L교수의 강의를 전면 중단하고 해당 안건의 성평등위원회 회부를 결정했다. 하지만 L교수의 명예교수 자격 유지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거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 S교수에게 3개월 정직처분이라는 경징계를 내리고 순금을 포상한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L교수에게 더 이상의 처분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상의 파시즘: 당연시 여겼던 많은 것들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L교수 논란에 학교 관계자는 “10년 전에 농담 삼아 삶을 어떻게 살지 성찰하는 글을 뒤져서 문제제기하면 안 된다”라고 입을 열었다. 분명 L교수의 수필은 10년 이상 전에 쓰인 오래된 글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L교수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첫째, L교수의 여성 혐오적 글은 과거에도, 지금도 잘못된 글이다. 불과 10여 년 전 이야기지만, 과거 한국의 성 감수성은 매우 낮았다. 10여 년 전, L교수의 ‘불륜의 주범은 년’이라는 글이 책으로 출판됐고, ‘내 딸도 야하게 자라길 바란다’는 글은 신문에 기고됐다.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이러한 모습을 ‘일상의 파시즘’이라고 설명한다. ‘일상의 파시즘’이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야만적 행태를 낯설게 여기지 않고, 익숙하게 여기는 현상을 의미한다. 분명 과거 한국 사회는 젠더 혐오에 있어서 ‘일상의 파시즘’적 요소가 다분한 사회였다. 그러나 사회가 용인했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L교수의 글은 과거에도, 지금도 분명히 잘못됐다.

 

둘째, 여성 혐오적 표현에 대해 ‘잘못됐다’고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성감수성이 제고된 현재에도 혐오 게시물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많은 학생들이 수필 내용에 반발했음에도 L교수는 게시글을 삭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해당 글에는 문제가 될 내용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현재 L교수가 가진 성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셋째, 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글을 강제로 읽게 했다. 수필 감상문은 중간고사 대체 과제였다. 학생들은 성적을 위해 불쾌한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교수 개인의 부도덕함이 학생들에게까지 피해를 준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평가하는 글이 단순히 ‘농담 삼아 삶을 성찰하는 글’로 치환될 수는 없다. 이렇듯 2020년에도 ‘일상의 파시즘’은 산재해 있다.

 

<용인하는 사회, 반복되는 교수사회 성차별-혐오표현>

 

▲2016년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석순’은 강의실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여성 혐오 발언들을 모아 대자보를 게시했다. 

 

교수사회의 여성 혐오 표현 논란은 비단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L교수의 사례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는 의미다. 

 

2016년 서울시립대 교수는 수업 중 “30살 넘은 여자들은 자신이 싱싱한 줄 알지만 자녀를 출산했을 때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빨리 결혼해야 한다”, “여자는 남자아이를 낳아야 하니까 컴퓨터를 많이 하지 마라”등 성차별적 발언을 일삼았다. 이 교수는 해임 처분을 받았지만 2019년 재판부는 징계 처분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성차별적 발언은 출산율 저하 문제 때문에 하게 된 것으로 성희롱 의도는 약했다”며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2017년 중앙대학교 교수는 “중국에 공산주의가 들어오며 여자들 기가 세져 남자 알기를 우습게 안다”며 “중국 여자들과 사귀지 마라”등의 혐오발언을 했다. 이외에도 ‘커피 파는 아가씨’라는 단어를 강의 중 사용했고 위안부 피해자의 본의가 ‘돈을 받으려는 것’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교수는 경징계인 견책 처분 외 어떤 징계도 받지 않고 강의를 이어갔다. 

 

한 사립 여자대학 교수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커서 결혼할 수 있겠냐, 여자가 키 크면 장애다”, “(결혼 안 하려는 이유가) 문란한 남자 생활 즐기려고?”, “여자는 시집이 취직이다”등 혐오 발언을 직접 하거나 SNS에 게재했다. 

 

이와 같이 대학 내 교수들의 강단 내 성차별적-여성 혐오적 발언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개인 문제가 아닌 권위적 교수사회의 구조적 문제>


위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L교수라는 개인이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논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 한국외대 내부에서도 수차례 교수의 성 관련 문제가 일어났다. 더 나아가 한국 대학사회에서 교수라는 권력을 내세워 강단에서 성희롱 발언을 내뱉거나 성폭력을 일삼는 사례는 꾸준히 발생해왔다.

 

가해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견고한 권위주의적 교수사회 구조 아래에서 제2, 제3의 L교수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 사실을 이미 귀납적으로 확인했다. 가해 교수 몇몇을 단죄한다고 해서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적극적 행동만이 혐오표현 용인하는 사회의 구조를 개혁할 수 있어>

 

여성 혐오 비하 발언을 일삼은 사립 여자대학 교수의 강의 수강생 중 146명은 수업 출석을 거부하며 사퇴를 요구했다. 재판부는 “이 점(학생들의 강의 출석 거부)을 고려할 때 원고가 향후 직무를 계속하는 경우 교수로서 직무수행 공정성과 신뢰가 저해될 구체적 위험도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교수의 해임처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학생들의 관심과 적극적 행동이 실제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번 L교수 처분 또한 학생사회의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는 L교수를 규탄하는 성명문을 게재하고 학교 측에 조치를 요구했다. 학생들은 교수사회의 혐오적 문화에 분노하며 언론사에 사건을 제보했다. 그 결과 L교수의 강의 중단과 성평등위원회 회부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 외대 구성원들은 큰 효능감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L교수의 명예교수 직책은 4년간 유지될 예정이다. 또한 권력형 성폭력 가해자인 S교수는 정직 3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받고 재직 중이다. 권위주의적 교수사회의 구조와 성폭력 및 성차별적 · 혐오적 표현 남발, 그리고 이를 가볍게 여기고 교수를 보호하는 학교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부조리에 분노하고 ‘당연한’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소리쳐야 한다. 침묵하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정지우 기자 (star_dust_ji@naver.com)

정설 기자 seol@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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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부조리를 감각하고 분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