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 첫 퀴어퍼레이드 주최
"개최 여부는 찬반이 아닌 여타 학생회 사업처럼 자율에 따른 선택"
6월 20일, 성공회대학교 미니 퀴어퍼레이드 주관 단위(이하 '주관 단위')가 나눔관 광장에서 제1회 성공회대학교 미니 퀴어퍼레이드(이하 미니 퀴퍼)를 개최했다. 성공회대학교 제7대 인권위원회 <등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제6대 학생회 <닿음>, 실천여성학회 <열음>, 실천환경학회 <공기 네트워크>, 사회융합자율학부 제6대 비상대책위원회 <새로>가 주관 단위로 참여했다. 이번 미니 퀴퍼는 국내 대학 캠퍼스에서 주최한 첫 퀴어퍼레이드다. 주관 단위는 제54주년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을 기념하고,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서울광장을 쓸 수 없도록 결정한 서울특별시를 규탄하기 위해 이 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미니 퀴퍼가 열리기까지
<등대>는 5월 8일에 미니 퀴퍼 주관 단위 모집을 온라인으로 알렸다. 서울시가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지 3일만의 일이었다. 같은 달 11일에는 반대 세력이 “미니 퀴퍼 개최를 학우들과 논의하지 않았다”며 총투표 발의를 위한 연서명을 시작했다. 이에 <등대>는 다음 날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학내 단체가 야식사업이나 세미나를 여는 것처럼 미니 퀴퍼 또한 자율적으로 개최할 수 있으며, 개최 여부는 찬성 혹은 반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5월 17일에는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위로의 꽃 나눔 행사를 새천년관 앞에서 진행했다. <등대>는 학우들에게 꽃을 나눠주며 미니 퀴퍼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했다.
5월 18일에는 김경문 성공회대 총장이 "논란이 예상되는 행사를 보류하고 의견을 수렴하라"는 내용을 담은 입장문을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튿날 성공회대 제38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총학 비대위')는 온라인을 통해 입장문을 내놓아 반박했다. 이들은 미니 퀴퍼가 학생 자치권을 바탕으로 한 활동이라는 점을 밝히며, 학교 당국과 행사 주관 단위가 협의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김 총장의 입장문을 바로잡았다. 결국 김경문 총장은 22일에 입장문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통을 위한 주관 단위의 노력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5월 30일에는 총학 비대위가 정보과학관 6110 강의실에서 '미니 퀴어퍼레이드 집담회'를 열었다. 집담회를 통해 학우들과 주관 단위가 모여 미니 퀴퍼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이틀 뒤에는 <등대>가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을 맞이해 새천년관 앞에서 무지개 끈 나눔 행사를 열었다. 같은 날, 주관 단위는 미니 퀴퍼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인스타그램에 서울시에 대한 규탄 의사를 모으기 위한 연서명을 알리는 내용을 게시하는 한편, 사회학과 김영선 교수와 시민평화대학원 실천여성학전공생, 김순남 교수, 송아름 교수, 최성용 교수에게 미니 퀴퍼에 대한 의의와 견해를 묻는 '릴레이 인터뷰' 카드 뉴스를 올렸다.
주관 단위는 본래 미니 퀴퍼를 6월 1일에 진행하려 했으나, '인권재단 사람'이 미니 퀴퍼를 재정지원 사업으로 선정하는 등의 실무적인 이유로 인해 주최를 20일로 미루게 되었다.
미니 퀴퍼 주요 발언 모음
주관 단위는 6월 20일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을 열며 미니 퀴퍼의 시작을 알렸다. <새로>를 제외한 네 개 단위의 대표자들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대표, 성공회대학교 모두를 위한 모두의 화장실 문화 만들기 모임 <모모>의 문봄 학우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들은 성공회대에서 미니 퀴퍼를 연 이유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정상 개최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알렸다.
성공회대학교 제7대 인권위원회 <등대> 최보근 인권위원장
"우리의 광장은 열려 있다! 성공회대학교 제1회 미니 퀴어퍼레이드는 전국 대학 최초의 퀴어퍼레이드입니다. '제54주년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 기념', '서울퀴퍼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서울시 규탄'이라는 기조를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진행하는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부스 행사, 수다회, 공연이 있는 본행사 그리고 성공회대학교의 광장을 누비는 행진 순으로 진행합니다."
실천여성학회 <열음> 오은송 학우
"학내 안전 문제와 백래시를 고민하는 것은 학교 내에서 열리는 미니 퀴어퍼레이드의 성공적인 개최 여부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학교 내 구성원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광장에서 성소수자의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퀴어퍼레이드가 허용될 수 없다면, 이는 학교가 성소수자를 허용하지 않는 공간이며, 끝내 성소수자에게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소수자에게 안전하지 못한 공간은 우리 모두에게 안전하지 못한 공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안전하지 못한 학교는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의미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지금 이 나눔관 광장에서 차별과 혐오가 없는 안전한 공간인 학교로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실천여성학회 열음은 성공회대학교 미니 퀴어퍼레이드의 개최를 적극적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오늘 조금 시끄러울지도 모릅니다. 조금 보기 놀랄지도 흉할지도 모릅니다. 크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 이 광장을 마음껏 누비며 축제를 즐기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사회라는 공간에서 우리 모두의 소수자성 또한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회대학교 <모두를 위한 모장실 문화 만들기 모임 '모모'> 문봄 학우
"서울시는 서울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했습니다. 그 결정을 내린 시민 회의록에는 "퀴어문화축제를 허용하면 마치 대한민국 자체가 성소수자들을 인정하는 문화인 걸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게 청소년들의 바르게 커야 하는 성문화에 대한 인식,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인들이 자유를 표현할 권리도 있지만 보고 싶지 않아 하는 권리라든지, 다른 시민들의 의견도 중요하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물리적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존재를 인정하고 성원권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서울광장이라는 공간을 내어주지 않으면서 성소수자를 이 사회에 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소수자는 마치 대한민국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모두의 화장실이 만들어진 이유도 바로 그것에 문제점을 느껴서입니다.
모두의 화장실 활동 당시에도 학내 익명 커뮤니티에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다수결로 정하는 총투표 서명이 돌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성소수자와 앨라이는 상처받았습니다. 하지만 혐오하는 자들은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상처받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성소수자를 상처받아도 자기와 상관없는 존재, 애초에 학내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미니 퀴어퍼레이드와 모두의 화장실에 대한 반응을 보면, 성공회대는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공간이 아니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불허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학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소수자를 위한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공간은 누구에게나 안전하다, 당신은 이곳에서 존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성공회대학교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을 보며, 이 공간은 소수자에게 더 열려 있는 곳이구나 하는 안심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미니 퀴어퍼레이드도 그런 안심을 성공회대 구성원들에게 줄 것입니다."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제6대 학생회 <닿음> 윤영우 정학생회장
"학우들의 즐거운 학교 생활을 위해서 여러 예능 사업을 진행하고, 더 넓은 경험의 폭을 제공하기 위해서 담론장을 열기도 합니다. 다들 지쳐 있는 시험 기간에 작은 응원을 전달하기 위해서 간식을 나눠 드리기도 하고요. 그리고 우리는 학교에 존재하는 모든 학우를 환대하기 위해서 연대합니다. 동시에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더 다양한 정체성을 마주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소수자와 연대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가치도 떠올려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정체성이 있죠. 우리는 모두 아주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정체성의 존재입니다.
그 말인즉, 학부를 위해 일하고, 모든 학부생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서 일하는 학생회에는 소수자 정체성을 떠올리고 그들을 배제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면서 실천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미니 퀴어퍼레이드 진행에는 많은 의문이 뒤따랐습니다. '왜 행사를 진행하기 전에 학생이 모두 동의하는지 묻지 않았느냐?', '학생회가 왜 소수자의 인권에 연대하느라 다수의 학생은 뒷전에 두느냐?', '총투표를 발의하여 찬반을 갈라서 다수결을 따져봐야 하는 문제가 아니냐?' 등의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발신인과 형체가 흐릿한 이 질문들에 나서서 대답하는 대신에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단순한 다수제가 공의를 완벽히 대변할 수 있을까요? 인권과 존재의 문제가 찬반의 대결로 해결되는 문제인가요? 공공성이란 무엇이고, 학내 민주주의의 실천이란 어떤 것인가요? 기존의 합의점만을 착실히 따르는 학생회 사업이 무조건 옳은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합의는 대체 어떤 논리와 관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나요? 과연 학생회가 작은 생명들과 연대하는 것이 정말로 방임일까요? 질문에 대한 답을 그리다 보면 학생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오히려 뚜렷해집니다. 확신은 늘 어렵고 망설여지는 일입니다만, 다수의 논리에만 매몰되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명확해집니다.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학생회 닿음이 소수자와 연대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미콘학부 학생으로 존재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대사업은 결국 학생의 복지 증진을 위한 일입니다. 낯선 이름을 하고 있지만 연대사업에는 학생 권리 보장과 복지라는 익숙한 본질이 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공동대표
"장애를 입는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장애 때문에 차별받는 사회는 변해야 하고, 철폐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식이 성소수자임을 알게 된 부모 모임을 꾸린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부모님은 처음 자기 자식을 치료로 나을 수 있게 할 줄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님은 성소수자의 문제가 치료의 문제도, 죄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고 지금 함께하고 있습니다. 장애도 치료의 문제가 아닙니다. 차별을 철폐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성소수자의 문제도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을 철폐해야 하는 일입니다. 차별을 철폐할 때 가장 힘든 작업은 혐오를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혐오에 맞서는 만큼 사람을 갉아먹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혐오에 당당히 맞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회대학교 제7대 인권위원회 <등대> 강나라 부위원장
"누군가는 '왜 인권위원회는 소수자의 인권에만 신경을 쓰냐'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인권위원회가 소수자의 인권을 신경 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소수자는 지금까지 혐오 받고 차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소수자의 인권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위원회가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지금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습니다. 이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회 성공회대학교 미니 퀴어퍼레이드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많은 혐오 반응이 있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 표현, 주관 단위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겠다는 내용,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것은 아니지만 퀴어퍼레이드를 내 눈앞에서는 하지 말라고 얘기하면서, 또 그것은 혐오가 아니라고 혐오를 부정하는 내용까지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혐오가 일상이 된 상황 속에서 중립을 지키며 또 다른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단하는 것이 기본 같은 사회에서는 이미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위원회는 성소수자와 소수자에게 더욱더 연대하겠습니다."
실천여성학회 <열음> 정준희 학우
"어떤 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성 연인에 대해 질문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화장실을 갈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길에서 동성 연인과 손을 잡는 것조차 할 수 없었고, 어떤 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며 길을 걷는 것에서 조차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모릅니다. 우리가 겪는 차별을 모릅니다. 그래서 매년 서울광장에 모였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도 이 세상에 있다며 존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성공회대학교 제7대 인권위원회 <등대> 최보근 인권위원장
"청소년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고 청년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성공회대학교에 다니는 우리들도 청년입니다. 우리 성공회대학교의 학우들은 서울 퀴어퍼레이드의 정상 개최를 염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성소수자의 차별이 사라진 평등한 세상, 아무도 혐오 받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가 우리 성공회대학교 학생의 오랜 염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회대학교의 광장을 열었습니다. 내가 사는 서울시가,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 나에게 광장을 내놓지 않는다면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규모는 서울 퀴어퍼레이드보다 작지만, 부스를 열고, 발언과 공연을 통해 이 자그마한 학교를 즐겁게 행진하며 우리의 자유로움을 표출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우리의 광장을 보고 배우십시오. 광장은 소외당하고 차별 받아온 사람의 목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서슴없이 혐오 표현을 내뱉는 기득권이 독점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즐거움과 자유로움으로 무장해 다시 한번 서울광장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