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대학로 공연 보러가기①: 예매만 2시간

  • 등록 2024.02.24 16: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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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고객센터, 다시 극장... 평소엔 2분 걸렸던 티켓 예매, 장애인석은 2시간 걸렸다
지하철역 곳곳에 '장애인 시위 금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인 기분 들었다

 

눈앞에 생생하게 너도 누릴 자격 있어”
“작은 별 작은 마을 작은 방에서 난 우주의 거인으로 다시 태어났네”
-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 중

 

STEP 0. 무대에선 주인공인 장애인, 객석에서는?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흔히 ‘대학로’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매일 수십 개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대극장과 달리 적게는 300석, 많게는 700석의 공연장이 들어서 있고, 극의 줄거리나 연출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노약자나 여성, 환자나 장애인, 넓게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공연들까지 등장했고,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적 편견이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주인공들의 서사가 관객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극장에서는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꿈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들은 무대 위에만 있다. 현실의 저들은 과연 무사히 공연을 보러 올 수 있을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왜 무대 위의 장애인들이 꿈을 노래할 때 혜화역의 장애인들은 집회를 열고 체포를 당해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대학로의 이동권 시설을 체감하고자 직접 수동 휠체어를 끌고 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대학로 공연을 인터파크 예매 순위휠체어 접근 가능 여부 을 확인해 5개로 추려냈다. 당시 예매 창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장애인석이 가장 많았던 공연은 유니플렉스의 오픈런 뮤지컬 ‘빨래’였으며, 반면 장애인석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공연장도 두 곳이나 됐다. 

 

최종 선택은 예스24스테이지(이하 예스24)에서 올라오는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이었다. 예매 창에서 장애인석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극장에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무엇보다 시각장애를 가진 소년 ‘조반니’가 주인공인 공연이었다.


STEP 1. 예매하기 : 일반좌석 예매는 2분, 장애인석 예매는 2시간  

 

"장애인석 예매는 어디서 하나요?"

 

온라인에서 바로 장애인석을 예매할 순 없어 따로 전화 문의를 해야 했다. 처음엔 어디로 전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를 찾을 수 없었다. 예스24 극장 측에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다. 예매 창에선 하나뿐인 장애인석이 이미 나갔는지 아닌지도 확인 할 수 없었다. 전화를 건 시간은 점심시간 전의 평일 오전이었다.

통화에 실패한 후 다시 예매 페이지를 뒤진 끝에 ‘할인 안내표’ 밑의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 장애인석 예매처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극장 측이나 인터파크 고객센터로 문의하셔야 한다”였다.

 

다시 극장 측에 전화했다. 역시 받지 않아 인터파크 고객센터로 전화했다. 예매하려는 공연의 이름과 날짜를 확인한 상담원은 “예매 페이지에서 확인하신 번호로 전화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다시 예매 페이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전과 다른 상담원이 “여기서 예매하시는 게 맞다”며 직원의 안내 미숙이었다는 설명을 했다.
재차 공연의 이름과 예매자 정보를 알려줬지만, 예매는 바로 되지 않았다. 상담원은 “현재 해당 극장의 장애인석을 예매할 수 있는지 확인 후 다시 전화드리겠다”고 답했다. 

 

전화가 온 것은 약 1시간 뒤였다. 처음 예스24에 전화할 때 오전 10시 52분이었던 시계는 예매가 끝나자 오후 1시 30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일반좌석을 예매할 땐 간단하게 온라인에서 원하는 좌석을 선택한 뒤 결제하면 끝이었으나, 장애인석 예매에는 2시간이 넘게 걸렸다.

 

 

 

STEP 2. 휠체어 타고 혜화역 가기 : 엘리베이터 안내판보다 먼저 보였던 ‘퇴거 조치’ 현수막

 

‘허가 없는 역사 내 연설, 권유 행위 등은 퇴거 조치…’

 

1호선 광운대역에서 출발해 4호선 혜화역까지 가던 중, 환승 과정에서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거리가 넓어 바퀴가 걸릴 뻔했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지하철에 탑승할 수 있었으나, 내릴 때 역시 도움을 받아야 했다. 휠체어 바퀴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를 굴러가기 힘들다는 건 이번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때 SNS에서는 일본 지하철 역무원이 직접 받침대를 들고나와 하차 중인 휠체어 앞에 놓아주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혜화역은 지하 2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역사 양 끝에 각각 2개의 출구가 있다.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돼있어 1, 4번 출구와 2, 3번 출구의 거리가 꽤 먼 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역사로 올라오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겨냥한 경고성 현수막과 시위 방지용 바리케이드였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역 안을 돌아다니는 내내 곳곳에 설치된 현수막과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바리케이드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열릴 시 통행을 막기 위한 것으로, 평소엔 접어서 역사 내에 보관한다. 통행로 한쪽에 정리된 바리케이드에는 ‘특정 장애인 단체의 시위로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안내판이 걸려있었다. 기자가 탄 휠체어의 바퀴는 그 앞을 굴러갔다. 휠체어를 타고 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 기분이 들었다.


STEP 3. 역에서 극장까지

 

공연을 관람할 예스24 극장으로 이동하기 전, 식당에 들르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을 가로질렀다. 마로니에 공원은 혜화역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휴일이 되면 프리마켓이나 각종 단체의 시위, 퍼포먼스가 이곳에서 자주 열린다. 공연 당일의 마로니에 공원은 한산했으나 공원 바닥 곳곳에 심어진 돌 장식이 휠체어의 바퀴를 잡았다. 돌을 미처 피하지 못하면 바퀴가 턱에 걸려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결국 근처를 순찰하던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식당을 나온 후 극장까지는 전진만 하면 됐지만 사람과 차량이 같이 다녀야 하는 길이 문제였다. 평소에는 불편하다는 감상 정도로 그쳤던 차량이 휠체어를 타고 오자 위험 요소가 됐다. 휠체어 바로 곁으로 화물트럭 등의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갓길에 몸을 바짝 댄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극장까지 가는 길에 마주한 다른 극장들의 출입구도 휠체어가 진입하긴 어려워 보였다. 대학로 중심에 위치한 TOM극장은 휠체어가 올라가려면 건물 블록 하나를 빙 돌아 건너편 입구로 가야 했다. 아트원씨어터는 오르막길에 위치하고 입구가 작아 휠체어가 원활하게 진입하긴 힘들어 보였다. 이 외에 다른 극장들 역시 엘리베이터가 아예 없거나 입구가 작아 휠체어 통행이 불편했다.

 


STEP 4. 극장으로 : 휠체어가 가기 힘든 길 끝에 ‘노약자용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는 건물 안에 있어요.”
“건물가는 길이 막혀있는데요?”

 

지도에 표시된 극장 앞에 다다르자 극장 로비와 매표소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인터넷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글을 보고 왔지만 막상 극장에 와보니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앞에서 헤매고 있자 다른 관객들이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안내해 줬지만,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지하극장이 있는 건물 1층에 있었으나, 건물이 위치한 인도로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인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경사로가 벽돌로 막혀있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그 사이로 올라설 수 있었다. 올라선 인도는 옆으로 경사져 있는 데다 울퉁불퉁한 장식용 돌까지 촘촘히 박혀있었다. 혼자 바퀴를 굴리다간 옆으로 넘어질 것 같았다. 인도로 올라서서도 다른 사람이 휠체어를 끌어줘야 했다.

 

 

 

[2편에 계속]

 

최세희 기자 darang12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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