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국제학부 입문 수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단어는 어느 게임의 최종병기(?) 같은 이름을 가졌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BC 460?~BC 400?)가 본인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주장한 것에서 비롯됐다. 저서에서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리스 전역의 패권국이었던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성장에 패권을 빼앗길까 두려워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 표현은 신흥 강자국이 등장하면 기존 패권국과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국제현실주의 이론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인다. 실제 역사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예시로 기존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 프랑스와 신흥 강자인 독일의 갈등으로 촉발된 양차 세계대전 역시 이 함정에 빠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 우리 역사 속 수·당과 고구려의 전쟁 역시 함정이 발동되어 발생한 전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미국과 중국의 갈등 역시 함정이 발동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기존의 "더 이상의 냉전은 없다.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이 다가왔다"고 자신하던 패권국 미국과 이를 따라잡고 있는 ‘대륙굴기’ 신흥 강자국 중국 사이에는 필연적인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둘의 무력 충돌 가능성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등 다양한 곳에서 높아지고 있다.
물론, 두 나라 모두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핵을 보유했기 때문에 과거 미소 냉전 시기처럼 핵무기에 의한 ‘상호확증파괴’에 대한 우려로 실제 군사력을 사용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최근 AI 시대의 도래로 그들은 무력충돌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AI 열전이라 부를 수 있는 최근 미국과 중국의 기술개발 경쟁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으로 인해 더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주요 반도체 수출을 금지했으며, 중국은 미국에 반도체의 주요 원료인 희토류 수출로 맞대응하고 있다. 또 이들은 주요 미디어 매체 시장 경쟁, AI 기술에서도 서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각자의 동맹국에 기술 권위주의를 앞세워 편을 가르고 있다.
현재 국제정치의 세계는 마치 갱스터들이 넘쳐나는 무법지대와도 같이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국 ‘힘’뿐이다. 트럼프 2.0 및 중국 및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약진으로 국제기구가 힘을 발휘하던 시기는 끝났다.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로지 힘을 기르는 '자력갱생(自力更生)'뿐이다. AI 3대 강국을 표방한 지금 우리는 관련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3대 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기술력을 보유해야 한다. 또한 대중 견제라는 전략적인 위치와 제조업 강국의 이점을 살려 트럼프의 미국과 협상하고, 시진핑 중국의 압박을 떨쳐내야 한다.
함정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안보 지형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으로 인해 북한군의 실전 경험과 러시아의 우수한 군사 기술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또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들의 싸움에서 북한은 자신의 위치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이용해 우리나라를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시키려 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두 국가’ 정책과 트럼프의 북한 핵보유국(nuclear power)인정 언급이 그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에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한반도 안보 상황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도 덩치를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덩치를 키우는 것은 AI 기술에 대한 국가적인 개발과 군사력 증강을 통한 자주국방의 실현에 달려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사실 강대국 주변에 있는 국가들이 더 피해를 보는 약소국의 함정일지도 모른다. 애꿎은 우리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오로지 덩치를 키우는 법밖에 없을 것이다.
조우진 편집국장 권한대행 및 부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