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 주요 대학에 이어 ‘학점포기제’ 도입 검토에 본격 나섰다. 치열한 채용 시장에서 학생들의 학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다.
‘학점 지우개’로 불리는 학점포기제란 교과목 성적이 확정된 후 취득한 성적을 학생 스스로 포기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학가에서 운영되다가 '학점 세탁', '성적 인플레이션' 논란이 일자 2014년부터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이후 취업난이 심화하자 학생들이 학점 포기제를 다시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12일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박동’에 따르면 교무처는 2026년 1학기 학점포기제 도입을 목표로 개편을 진행 중이다. 서울·글로벌캠퍼스 총학생회는 당선 이래 지속적으로 학점포기제를 요구했고, 최근 교무처와의 면담을 통해 도입 진척에 대해 답변받았다. ‘박동’은 앞서 지난해 11월 학점포기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바 있다.
교무처와 양 캠퍼스 총학생회는 도입 시 신입생 뿐만 아니라 재학생에게도 적용하는 방식으로 의견 조율 중이다. 조율 중인 사항으로는 △포기 학점 한도 △포기 시기 △이수구분 제한 등이다.
‘박동’ 측은 대학 본부에 이번 제도 시행을 통해 ‘수요자 맞춤 학사제도’ 실천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 인상된 등록금으로 부담 받는 학생들의 교육비 환원 취지에서다. 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난 점도 강조한다.
나민석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정치외교·22)은 외대알리와의 통화에서 “다양한 전공의 탐색 기회를 제공해 학생들의 교육적 도전을 장려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교무처와의 조율을 통해 제도 도입을 이뤄낼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말했다.
재학생인 박 모 학우(미디어커뮤니케이션·22)는 학점포기제에 대해 “타 대학들이 하나둘씩 도입하려는 흐름을 보인다”며 “우리만 도입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취업시장에서 불리해질 것”이라며 도입에 찬성했다.
고려대·한양대 부활, 서강대·연세대·이대 등 검토
‘박동’은 타 대학 사례 조사 결과를 통해서 학점포기제의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권 대학을 중심으로 제도 부활에 대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 주요 대학 중에서는 고려대가 신호탄을 쐈다. 고려대는 지난해부터 필수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최대 6학점까지 포기를 허용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폐강된 과목에 한해서만 포기가 가능했다. 한양대는 2014년 폐지했던 학점포기제를 2025학년도부터 재시행한다.
서강대 총학생회 '나루'는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학점 포기제 도입을 위한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벌여 약 1900명의 서명을 모았다. 총학생회는 이를 바탕으로 작성한 요구서를 총장 측에 전달할 계획이다. 연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 교학협의회에서 학점포기제를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스텝업'은 이달 학점포기제를 상정한 이화 5대 요구안을 학교에 제출했다. 학교 측은 "요구안을 접수했으며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희대, 건국대, 숙명여대, 숭실대, 동국대, 아주대, 홍익대 등도 이미 학점포기제를 운영 중이다.
학점 인플레에 대학들 '고민'
문제는 있다. 학점포기제 확대가 당장은 취업 경쟁력, 전문대학원 진학 등에 유리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점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공신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대 초반까지 널리 운영되던 학점포기제는 2013년 국정감사에서 ‘학점 세탁’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에 개선을 요구하며 자취를 감췄다.
코로나19가 학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도 했다. 국내 대학 상위 15개의 전공 A학점 이상 비율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학기 41.7%에서 2020년 1학기 64.3%로 급증했고 2022년 1학기에도 47.5%를 기록했다.
김명휘 기자 (0pengpeng7@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