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가치청춘]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깨우는 ‘수리수리협동조합’

2017.02.01 00:00:00

을지로4가역에서 5분정도 걷다 보면 상당히 큰 전자상가가 보인다. 한 때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 흥했지만 지금은 찾는 이가 줄어든 세운상가. 하지만 아직도 세운상가는 고장 나 묵혀지던 물건들에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있고, 간직하고픈 기억이 있는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고 있다. 추억을 고쳐주는 수리 장인분들과 함께 세운상가를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수리수리협동조합의 남윤호씨를 만나보았다.


▲세운대림상가 간판

Q. 수리수리협동조합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비영리단체 'ㅇㅇ은대학연구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 단체에서 세운상가를 살리자는 사업의 일환으로 ‘다시세운프로젝트’를 하던 중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분명히 기술적으로 뛰어나신 분들인데 저평가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이 고장났을 때 어디가 문제인지 알아보는데 있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고객분들은 그냥 부품에 대한 값만 지불하려고 하시죠. 장인분들 스스로도 ‘이 정도만 받아도 돼’라는 생각을 하시기도 하고. 이런 점을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또 여기 수리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혼자 일을 하세요. 혼자 전화 받으시고, 견적 내시고, 수리하시고, 손님 맞이하시고. 그걸 보며 개인화 된 일들을 한 데 모으면 좀 더 효율적이고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수리가 들어왔을 때 본인이 수리할 수 없는 것이나 시간적인 문제로 힘들 때 다른 분들에게 넘겨드리기도 하고, 저희가 진행했던 학생들을 가르치는 ‘손끝학교’라는 프로그램도 두 장인분이 협업하셔서 진행되었죠.

오래된 것, 그리고 물건을 계속 쓰는 것의 가치를 추구하며 수리문화 활성화와 인식 개선, 그리고 모였을 때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할 것 이라는 생각으로 수리수리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Q. 수리수리협동조합이 다른 협동조합에 비해 차별화 된 점이 있을까요?

기술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이 많지 않아요. 특히 수리를 목적으로 하거나 청년과 함께하는 조합은 거의 없죠. 세운상가에 계셨던 분들은 예전부터 물건을 보고 직접 만들어보고 개발하시고 수리하시는 메이커스들입니다. 그런 메이커스들의 창의력, 그리고 노하우가 청년들과 함께 만났을 때 만났을 때 생기는 시너지가 저희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리수리협동조합간판

Q. 과거 세운상가 도시재상사업이 여러 번 엎어지면서 협동조합을 만드실 때 장인분들의 불신이 많았을 것 같아요. 협동조합을 구축해 나가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네 힘들었죠. 처음 조합을 만들었을 때는 ‘얘네들은 뭐하는 애들인가.’ 하셨던 것 같습니다.(웃음) ‘조합을 만든다고는 하는데 그게 잘 되겠느냐.’ 하시기도 했구요. 
기존에도 상인회라든가, 수리하시는 분들 모임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있었는데 잘 안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세운상가의 장인 300여분 정도를 인터뷰 해보고 수리 건들을 드리다보니 점점 친해지면서 적대감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어요. 그 다음 저희가 확실한 기획을 잡고 그걸 통해서 지원 사업이나 공모 사업 등을 할 계획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며 신뢰를 쌓았습니다.

▲프로젝트 홍보 포스터

3회에 걸친 워크샵도 진행했는데요, ‘이 사람은 파트너다. 지원사업 한답시고 대충 1,2년 하고 마는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시면서 믿음을 가지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리하시는 분들과 관계망이 형성되고, 협동조합이 현실화 되는 데 있어 많이 생각을 같이 해주셨습니다.


Q. 장인분들과 청년들이 가까워지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저희도 그런 걱정을 되게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엔지니어적 마인드를 갖고 계신 분들은 일에 있어서 굉장히 트여 있으시더라구요. 장인분들과 청년들은 기술적인 면에서 각자 특출난 부분이 있잖아요? 노하우나 창의력 같이. 그런 것들을 서로 배워가며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특히 수리문화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더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수리하는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이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업무 외적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도 가까워졌습니다. 
또 여담이지만 장인분들이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굉장히 재밌어요. 함께 수다를 떨며 많이 친해져서 저희끼리 있을 때는 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수리수리협동조합의 남윤호씨


Q. 세운상가 외에도 쇠퇴하고 있는 전자상가들이 많은데요, 그런 상가들과 연대할 계획이 있나요?

그러면 좋죠. 용산이라던가 테크노마트나 이런 쪽에 계신 분들도 결국 전에 세운상가에서 같이 일하셨던 분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런 인맥들을 저희가 유입하고 함께할 수 있으면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먼저 자체적으로 확실한 인프라가 있을 때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협동조합을 세운상가 전체로 확산하지 못했어요. 우선 세운상가 내 실력 있는 분들을 지금보다 더 조합원으로 모시고 내실을 키울 것입니다. 

또 저희가 사업적으로 매력적이어야겠지요. 조합원이 됐을 때 본인들에게 이득이 되고, 이 협동조합이 잘 구성된 조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수준까지 오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다른 지역에 계신 분들이 따라하고 싶을 정도의 메리트나 노하우를 갖추는 등 우선 더 자리를 잡은 뒤 기회가 되면 함께 하고 싶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각종 기기들


Q. 앞으로 계획중인 활동이나 목표가 무엇인가요?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외계층분들에게 오래된 물건이나 잘 안쓰이는 물건들을 받아서 수리를 해 볼 계획입니다. 이 때 조합원들 뿐만 아니라 수리에 관심이 있거나 기계, 전자 등을 전공으로 한 청년들을 모아서 함께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청년분들이 실무적인 수리를 접해보고 교육받아 스스로 자립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해요. 소외계층 분들은 도와드리고 청년들은 일자리와 경험을 쌓는거죠.

또한 장인분들이 현재 산업체계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있어요. 청년들은 본인들이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노하우가 부족하거나 여건이 안되기도 하구요. 그런 분들을 연결해 지역 내에서 함께 배울 수 있는 배움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세운상가 내의 팹랩(fab lab)처럼 수리센터라든가 수리문화 랩실이 지역마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 자연스럽게 시니어분들과 청년분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만들어가는 장소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처럼 저희 조합원들 뿐만 아니라 같이 일 해볼 수 있는 청년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들을 계획 중이며, 더 나아가 저희가 하나의 지역공동체처럼 발전하면 어떨까 합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재미난 일들을 많이 만들고 해요. 관심 있으신 청년분들은 같이 협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같이가치청춘’은 획일화된 삶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협동조합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는 코너입니다. 이 콘텐츠는 <같이가치 with kakao>, <서울시 협동조합지원센터>, <대학언론협동조합>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윤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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