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입학금의 호구였다

  • 등록 2017.10.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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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돈 아까워요. 백만 원 마련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출처도 이유도 없이 가져가니 어이가 없습니다.”

“입학금을 왜 낸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정확하게 어디에 사용했다고 말하면 몰라. 그런 것도 하나 없고”

“입학금 너무 비싸요. 아예 없애는 게 힘들면 줄여주기라도 했으면... 입학 처리 행정비용이 우리가 내는 만큼 드는 게 아니잖아요ㅠㅠ 학생들 상대로 장사...”

지난달 8일, 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 회장단 회의 장소에서 시민단체와 대학 총학생회 등이 입학금 폐지를 요구하는 피켓팅을 진행했다. ⓒ회대알리

 

N대알리는 9월 22일부터 10월 2일까지 835명을 대상으로 ‘입학금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각 대학별로 한국외대 292명, 세종대 230명, 한림대 161명, 단국대 70명, 서울시립대 28명, 성공회대 8명, 그 외 46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알리 독자들은 입학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N대알리는 한국외대, 성공회대, 세종대, 한림대, 서울시립대 등 각 대학에서 활동하는 대학 자유독립언론 연합이다.

 

한국의 입학금 제도는 어디서 온 걸까?

N대알리는 설문조사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입학금 제도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입학금’의 유래는 무엇일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1950년대에 이미 대학교에 입학금이 있었다는 일부 기록이 남아있는 점, 한국과 일본의 입학금제도가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 유입됐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일본의 입학금은 조직에 속할 자격을 준 집단에 감사 표시를 하는 전통에서 시작됐다. 일부 사설 학원에 들어갈 때도 입회비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일본 대학 입학금은 한 학기 등록금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니가타현립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일본인 A(22) 씨는 “일본 문화에서는 입학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며 “입학금을 내야 입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A씨는 “대학이 위치한 현(県) 내 거주자와 외 거주자의 입학금이 다르다”면서 “현 외 거주자인 나는 입학금을 56만 엔(약 572만 원) 정도 내서 부담이 됐지만 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야 하는 입학금

한국 대학의 입학금은 실제 입학에 사용되는 실비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본식 입회비 개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2월 청년참여연대가 발표한 전국 34개 대학 입학금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답변을 보내온 28개 대학 대부분은 입학금에 대한 산정 기준이 없거나 불확실했다. 세부 지출내역 및 지출액을 파악하고 있는 학교는 6개교(국공립: 부산교대, 인천대, 울산과기대, 춘천교대, 한국과학기술원/ 사립: 한신대)에 불과했다.

학생은 입학금과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입학 자체를 할 수 없다. 여기에서 학생과 대학 사이의 권력 관계가 발생한다. 사용처에 대한 정보도, 타당한 산출 근거도 모른 채 단지 입학을 위해 최대 100만 원에 달하는 돈을 내야만 한다. 명백한 불공정거래다.

실제 입학금은 등록금과 함께 ‘교비’가 되어 모든 행정에 사용된다. 결국 교비의 사용 내역만이 남고, 입학금의 정확한 사용 내역은 없다. ‘입학금’이라는 이름은 돈을 납부하는 명목에 따라 붙었을 뿐, 이 돈이 입학을 위해서만 쓰인다고 보기 어렵다. 즉 입학금은 ‘제2의 등록금’ 혹은 ‘일시선납등록금’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입학금을 입학 처리 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산정 근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이 ‘입학’을 저당 잡아 학생들의 주머니를 털어가지 못하도록 정부 차원의 감시와 견제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입학금 폐지 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입학금은 명확한 규정이 없는 비용이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실제 교육부가 발표한 4년제 사립대의 입학금 사용 현황을 보자. 일반회계에 사용된 금액이 33.4%가 넘고, 장학금, 홍보비, 입학 관련 부서 운영비 등 학교의 상시적 업무에 사용된 금액도 50% 가까이 된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전체 입학금의 5.9%(행사비+인쇄출판비. 인쇄출판비는 신입생에게 나눠주는 팜플랫 등의 제작에 소요됨)만 입학실비로 소요했고, 그 외는 일반경비처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위 조사결과의 정확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2016년에 청년참여연대 측이 정보공개청구를 했을 때, 입학금 지출 내역만을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학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만 없어, 다 있는데 입학금만 산출근거 없어

많은 대학에서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입학금에 대해 논의하기 때문에 근거 없이 산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등심위 중에는 재학생의 문제인 등록금에 집중하기 때문에 신입생 몫인 입학금에 대해 깊은 논의가 나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입학금에는 별다른 환불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입학한 직후 자퇴를 하더라도 돌려받을 수 없다. 또한 같은 학교의 대학원으로, 석사 과정에서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더라도 다시 한 번 입학금을 내야 한다.

 

덩치 큰 입학금, 한국과 일본에만?!

한국, 일본과 비슷한 입학금 문화를 가진 곳은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나라에는 입학금의 개념이 없다. 미국, 중국 등 일부 나라의 대학에서 입학금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이들 학교는 입학금을 실제 입학 절차에 사용하는 실비로 사용하여 등록금의 1~3% 정도로 책정한다. 원한다면 입학금 사용 내역을 확인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교육을 사회가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복지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등록금 철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뿐 입학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2013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프랑스인 B(25) 씨는 “프랑스에는 입학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한국에 왔을 때 많이 당황했다”며 “입학하는 데 100만 원이나 필요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큰돈을 내고도 어떤 혜택을 받는지 알 수 없어 억울했다”고 당시 기억을 전했다.

 

입학금을 폐지하라 VS 입학금 못 잃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 입학금 폐지를 공약했다. 취임 후에는 100대 국정과제에 ‘대학 입학금 단계적 폐지’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군산대를 시작으로 전국 41개 국립대학이 정부 기조에 따라 입학금 폐지를 전격 결정했다. 사립대 중에서는 원광대가 처음으로 인하안을 발표하며 10년에 걸쳐 80%를 인하하겠다고 약속했다.

사회적으로 입학금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비싼 입학금을 받고 있는 사립대 쪽은 입학금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가 입학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해나가는 대신 재정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나섰지만, 사립대 측은 오히려 입학금 폐지의 대가로 등록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달 8일 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 회장단 회의가 끝난 뒤 회의 장소를 빠져나가는 한림대학교 김중수 총장 ⓒ한림알리

 

사립대 측은 입학금·등록금이 사실상 학교 수입의 전부이며 입학금 폐지는 등록금을 낮추는 것과 같고, 대학의 재정난이 심해져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사립대학의 적립금은 전체적으로 증가추세다. 2010-2014년 5년 사이 80개 학교가 적립금을 불렸고, 전체 사립대학의 적립금 총액은 9조 7,723억 원(2015년)이나 된다.(대학교육연구소) 게다가 대부분의 사립대에서 재정을 책임져야 할 재단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2015년 사립대학교 수입총액 중 법인전입금의 비율은 4.4%에 불과했다.(대학교육연구소) 결국 재단이 책임져야 할 학교 재정을 입학금이라는 명목으로 학생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사립대 입학금 제도 개선 협의회’를 구성해 “국가장학금Ⅱ 유형 지원, 일반재정지원 확대(2019년 4천억 원 목표), 규제 완화 등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지원책을 내놨다. 특히 일반재정지원금은 강사 인건비, 실험실습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어 교비 회계의 일부를 충당할 수 있다. 이어서 교육부는 지난 13일 사립대학총장협의회(이하 사총협)와 공동으로 ‘입학금 인하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단계적 입학금 폐지가 가시화되는 듯 했지만 잠깐이었다. 사총협이 지난 20일 교육부와의 간담회에서 “실제 입학업무에 쓰이는 실비를 뺀 나머지 금액만큼 단계적으로 입학금을 폐지하고, 대신 등록금을 1.5% 인상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사총협의 최종합의는 결렬됐고, 교육부는 27일로 예정되어있었던 김상곤 교육부장관과 사총협 회장단의 간담회 계획을 취소했다.

 

오늘(23일)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준비위원회 소속 총학생회가 모여 사총협의 등록금 인상 요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준비위원회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오늘(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대로라면 내년 입학생들 역시 갈취나 다름없는 입학금 고지서를 받아들게 될 것”이라며 “입학금 폐지를 볼모로 요구한 것이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허가였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욱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교육부 역시 “입학금 대신 등록금을 인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부당하고 2-4학년 학생들에게도 피해가 간다”며 사총협 측을 비판했다. 교육부는 입학금을 폐지하는 사립대학에 국가장학금 II유형과 일반재정금 등을 지원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한편 시행령을 마련하여 사용기준 및 사용처 공개, 등록금 심의위원회 입학금 심의, 입학금 수입·지출의 별도 계리” 등 엄격한 관리 기준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내 입학금을 돌려줘

입학금을 냈던 학생들도 입학금 폐지와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2016년 10월 15개 학교 9,769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내 입학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한신대학교 입학금 반환 청구 소송 대표자 강윤덕 씨는 “입학금은 대학 측이 입학에 대한 절실함을 볼모로 잡고 부당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라며 “입학금 반환 청구 소송은 실질적인 입학금 반환은 물론, 진행 중인 입학금 폐지 운동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근거 없이 징수된 입학금의 부당함을 판례로 남겨 입학금 폐지의 근거로 삼겠다는 의도다.

아직 판결이 나지는 않았지만 대학의 입학금 사용 실태를 드러내는 성과도 거뒀다. 지난 6월 27일 한신대 입학금 반환 청구 소송 두번째 공판에서 학교는 “입학금 산정 근거 자료는 없고 등록금 산정 근거 자료만 있다”고 말했다. 대학이 입학금을 사실상 등록금처럼 사용하고 있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입학금폐지 운동을 진행 중인 청년참여연대 이조은 간사도 “입학금을 남긴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되었다. 입학금 폐지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현상”이라며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에서 고등교육은 학생 개개인에게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누구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문장은 제헌 이래 한 번도 헌법에서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평균 77만 원, 심하면 1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내야만 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주어진다. 헌법이 말하는 ‘능력’이 ‘경제적 능력’은 아닐 텐데 말이다.

알리공동기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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