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_익명의 두 얼굴 (저격탕탕? 침해탕탕!)

  • 등록 2018.02.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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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_익명의 두 얼굴
저격탕탕? 침해탕탕!

1. 대나무숲

 대나무숲(이하 대숲)은 익명으로 자신이 원하는 글을 제보할 수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이다.

 

2. 대숲이 왜 흥했는고 하니

 대숲에서 사람들은 익명의 힘을 빌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다른 사람의 공감이 담긴 댓글에 위로를 받는다. 대숲의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얼굴 모르는 누군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에 은밀하고도 따뜻한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슬픈 마음을 만져줄 때 우리는 작은 손짓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대숲은 중요한 이슈를 공론화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대숲의 익명성 덕분이다. 작년과 재작년 학생회의 잇따른 공금 횡령 사건과 글로벌캠퍼스 총학생회 단체 카톡방의 '삼일한' 논란, 그리고 '영어대학 성희롱 사건'은 대숲 없이 공론화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사건들은 누군가 내부고발을 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내부고발자는 대부분 해당 집단에서 비난과 집단으로부터의 고립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협박까지 받는다. 대숲은 관리자조차도 누가 글을 제보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제보에 따른 보복으로부터 내부고발자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다. 

(그림1) '영어대학 성희롱 사건' 공론화 과정

 

3. 내 트그흐즈 믈르그. (나 태그하지 말라고)

 하지만 대숲의 익명성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사람을 찾는 제보글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보통 저격글이라고 불리는 이 글은 찾고자 하는 사람의 신상 정보를 포함한다.

(그림2) 대나무숲 저격글 사례

 제보자가 저격글을 보내면 대숲은 단과대학, 학과, 이름을 초성으로 바꾸어 페이스북에 게시한다. 글의 형식은 사진(그림2)과 같이 "ㄱㄱ과 00학번 ㄴㄴㄴ 애인 있으신가요? 없으시면 저랑 밥 한 끼 같이 먹어요."와 같은 식이다. 저격당한 사람의 신상 정보는 초성으로 바뀌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게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린다. 지인 또는 친구들이 저격당한 사람을 저격글에 태그한다. 마침내 저격당한 살마도 자신이 저격당한 것을 알게 된다. 제보자는 태그된 저격대상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그 사람의 신상을 자세히 보거나 그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지나가던 사람도 단순히 호기심에 태그 된 프로필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저격당한 사람의 사적인 정보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오고 간다. 저격글은 당사자의 의사는 상관없이 개인 정보를 제3자에게 노출시킨다. 일부 대숲은 저격글을 흥신소 성격을 띠는 글로 정의했다. 대숲에 돈을 지불하지는 않지만 타인의 정보를 몰래 캐는 흥신소와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의 신상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같아도 봤기 때문이다. (흥신소 : "고객의 요청에 따라 대가를 받고 기업이나 개인의 신용, 재산상태, 개인적인 비행 따위를 몰래 조사하여 알려주는 일을 하는 사설 기관" 표준국어대사전.)

 

(저격 대상 인터뷰)

사례1.

"노트북 열람실에서 중간고사 준비를 하고 있던 날 저격을 당했는데 제가 입고 있던 옷차림을 아주 상세하게 쓰셨어요. 그렇게 옷차림을 상세히 적었다는 건 적어도 한 번 이상 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는 걸로 밖에는 해석이 안 되더라고요. 누군지도 알 수 없기에 그 점이 찝찝했습니다."

사례2.

"저격글은 주변 이들로부터 자신이 원치 않는 소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사실유무가 불확실한 장난성 (저격글)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해당 매체의 문제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지만 대숲을 오용하는 이용자들의 의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례3.

"대숲 특성상 거의 모두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죠! 특히 저는 교수님이 출석 시간에 ‘너 저격 당했다며?’라고 물어보기까지 하셔서 민망함이 한층 더해졌어요. 대단한 일도, 자랑할 일도 아닌데 그걸 가지고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 저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불쾌한 경험인 것 같아요."

 

 응답자들은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거나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관찰을 당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꼈다. 저격을 당한 이후에 겪는 상황들 역시 썩 즐겁지는 않았다고 한다. 더불어 자신이 모르는 사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에 거북해했다.

 저격으로 인한 태그, 원치 않는 소문 등 모든 것은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됐다. 그 결과 애인 유무, 나이와 같은 개인 정보가 노출됐다. 이는 당사자의 동의 없이 불특정다수가 개인정보를 열람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격 당사자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다. 헌법재판소는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저격 당사자는 제3자에 의해 본인의 신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특정다수에게 알려졌다. 저격글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 즉 인권침해이다.

 물론 저격글 제보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연락처를 건네줄 적기를 놓쳤을 수 있다. 섣불리 고백했다가 어색한 사이로 남기 싫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숲에 제보한 글이 당사자의 감정을 해치고, 당사자를 곤란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들은 당신의 그윽한 시선을 원치 않았을 수 있다. 자신의 신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널리 퍼지는 것 역시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놓친 기회를 구실로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4. 그렇다면 다른 대숲은?

 페이지 팔로우수와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와의 거리상 근접도를 기준으로 24개 대학의 대숲을 조사했다. 그 결과 단국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세종대, 숭실대, 아주대, 한국외대, 홍익대를 제외한 16개 대학의 대숲은 특정 개인을 찾는 글을 일절 금지하고 있다. 저격글을 허용하는 대숲은 한국외대의 ‘저격탕탕’, ‘사람을찾습니다’와 같이 고유의 해시태그(예시: #니모를찾아서, #사찾, #훈남훈녀, #그남누그여누, #반했어요, #자정의_흥신소)를 통해 저격글만 따로 분류해 업로드하고 있다. 

(24개 대학 : 가천대학교, 건국대학교, 경기대학교, 경희대학교, 고려대학교, 국민대학교, 단국대학교, 동국대학교, 서강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세종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숭실대학교, 아주대학교, 연세대학교, 중앙대학교, 한국교통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한양대학교, 홍익대학교.)

(그림3)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대숲

(그림4)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대숲

(그림5) 홍익대학교 대숲

(그림6) 아주대학교 대숲

 

(그림7) 동국대학교 대숲

(그림8) 서울시립대학교 대숲

(그림9) 세종대학교 대숲

(그림10) 단국대학교 대숲

(그림11) 숭실대학교 대숲

 아직까지는 저격글을 금지하자는 목소리가 대숲 전반에 퍼지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일부 대학의 대숲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글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저격글을 폐지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대나무숲(이하 중앙대 대숲)의 경우 2015년 9월에 흥신소 카테고리를 추가했다가 2017년에 다시 폐지했다.

 중앙대 대숲이 흥신소 카테고리를 폐지한 이유는 ‘익명과 실명의 경계를 줄타기하는 글’로 직접적인 피해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어둠의 대나무숲 관리자는 성폭력 가해자의 제보를 여과 없이 올렸다가 인권침해로 경찰서에 소환됐다. 해당 글로 인해 가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 역시 신상 정보가 노출되는 2차 피해를 입었다. 이후 운영자는 다르지만 같은 중앙대학교의 중앙대 대숲은 흥신소 카테고리를 폐지했다. 다만 제보 속의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올린다. 중앙대 대숲의 관리자는 “중앙대 대숲의 규제가 다른 대숲에 비해 엄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위 판별이 되지 않는 익명의 제보를 함부로 게시하는 것은 막대한 책임이 따른다. 또한 개인의 신상이 노출되어 인권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저격글 규제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ㄱㄱ과 00학번 ㄴㄴㄴ 애인 있으신가요? 없으시면 저랑 밥 한 끼 같이 먹어요.’와 같은 글은 “당사자들만 즐겁고 이해하는 제보일 뿐 대다수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가 항상 임의의 사람들에게 감시 받는 느낌을 조성한다.”고 덧붙였다.

(그림12) 중앙대학교 대숲 규칙

 경희대학교 대나무숲의 경우 필터링 대상에 ‘사람 찾는 글’을 명시했고,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역시 ‘흥신소글(예시: 화요일 안암역 2출 고잠 입은 남자분 찾아요)은 제보 선택 및 업로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라며 저격글 금지 입장을 밝혔다. 서강대학교 대나무숲(이하 서강대 대숲) 역시 마찬가지로 ‘타인의 신상이 드러난 경우, 사람을 찾는 제보(흥신소성 제보), 애인 유무를 묻는 제보 등’을 제외 또는 부분 필터링한다. 서강대 대숲은 특정인 태그를 통한 개인의 노출을 지양하고 사적 정보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이라고 규제의 이유를 밝혔다.

 

5. 저격글, 누구의 책임인가?

 한국외대를 포함해 여타 대학교의 대숲에서 저격글로 인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사적 정보를 경각심 없이 대중에게 전달하는 대숲 관리자는 인권침해의 책임 소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 책임을 오로지 대숲 관리자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대숲 이용자 역시 여태까지 대숲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언뜻 보기에 저격을 당한 사람은 그 사실에 기뻐하고 다른 사람들도 저격글을 하나의 놀이로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저격글에 대한 문제제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이는 저격글에 대해서 괜히 예민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 자기검열을 했을 지도 모른다.

 대숲은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곳이다. 모두가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대숲은 올바르게 운영될 수 있다. 누군가가 불쾌함을 느끼고 피해를 입었다면 구성원들이 함께 현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저격글의 폐해를 알고도 모른 척 해온 것은 아닌지, 내가 누렸던 즐거움이 누군가의 불쾌함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그저 가볍게 생각한 저격글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희지 기자(boa5219@gmail.com) 

장희지 기자 boa52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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