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마다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강의평가 참여 독려 문자를 받는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적지 않게 들려오는 “귀찮다”는 말과 함께 학생들은 성적 확인을 위해 마지 못해 녹색 창에 ‘한림대학교 통합정보시스템’을 검색한다. 왜 학생들은 이토록 강의 평가에 무심할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한림대학교 학생 109명을 대상으로 강의평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의 학생은 강의평가 참여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한림알리는 학생들의 의문점을 바탕으로 취재하고, 교무팀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강의평가에 대한 학생들의 의문은 크게 ‘평가 결과의 이용’과 ‘익명성 문제’로 나뉘었다.
“성적 확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죠”
“우리 대학은 교육환경 및 수업 개선을 위하여 강의평가를 시행하오니 학생들은 이러한 목적에 의하여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답변을 해주기 바랍니다”
강의평가를 실행하면 가장 먼저 뜨는 메시지다. 이처럼 강의평가는 한 학기에 두 번, 더 나은 강의를 위해 실시된다. 중간 강의평가는 교수가 수업 중 학생들이 느끼는 문제나 어려움을 인지하고 남은 수업에 참고하기 위함으로 결과를 교수에게만 공개한다. 기말 강의평가의 경우 다음 학기에 이 강의를 수강할 학생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한 취지를 지니고 있어 모든 학생에게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학생이 성적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말 강의평가 기간에 중간 강의평가까지 몰아서 하는 경우 또한 다반사다. 때문인지 강의평가 결과 탭의 ‘자유 의견’을 확인해보면, 솔직한 의견보다는 “......”과 같이 성의 없이 작성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교무팀은 “적극적인 의견 수용을 위해 자유의견을 6자 이상 작성해야 강의평가를 완료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제는 점을 여러 개 찍는 학생들이 있다”며 “고쳐지지 않아 걱정이다”라고 밝혔다.
강의평가는 학생들의 권리이자 교수가 학생들의 솔직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무팀으로부터 ‘강의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니 참여를 부탁드린다’는 문자만 받을 뿐, 강의평가의 중요성과 결과의 이용과 같은 시행 목적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들을 수 없다. 미디어스쿨에 재학 중인 A씨는 “입학 후 강의평가에 대한 제대로 된 시행 목적에 대해 한번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며 “1학년 때까지는 열심히 자유 의견을 작성했는데 의견이 전혀 수용되지 않는 것을 보고 소용없는 제도처럼 느껴져 점점 귀찮아졌다”고 밝혔다. 이러한 탓에 강의평가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되고, 많은 학생이 평가 자체를 귀찮아한다. 그러나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 강의평가에는 한림대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강의평가에 비해 비교적 솔직한 의견들이 많다. 한림알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에브리타임 강의평가와 통합정보시스템 강의평가 중 더 신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절반을 훨씬 넘어선 77.1%가 에브리타임을 선택했다. 통합정보시스템 강의평가를 더 신뢰한다는 학생은 단 22.9%뿐이었다. 이처럼 많은 학생은 한림대학교에서 실시하는 강의평가의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행 목적을 잊어버린 지금의 강의평가는 성적 확인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라는 따끔한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이 체감할 수 있는 학교의 노력은 ‘강의평가를 하지 않은 학생분들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라는 형식적이고 짧은 참여 독려 문자와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공지사항뿐이다. 한림대학교 공식블로그에서의 강의평가에 대한 홍보 글은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강의평가 참여 독려를 위한 활발한 홍보 활동뿐만 아니라, 강의평가의 ‘목적’과 ‘결과의 이용’에 대해 알려줘야 할 의무를 주기적으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교무팀은 “강의평가를 설명을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추가하고, 강의평가의 의식 전환과 독려의 내용을 담은 짧은 클립 영상도 제작하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설문 조사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감사합니다’였다”며 “아마 많은 학생이 예의상 또는 할 말이 없어서 작성하는 것 같다. 더 나은 강의를 위해 건전한 비판과 의견 부탁드린다”고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의평가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더 나은 강의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의견 반영이다. 한림알리가 실시한 설문조사 중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는 질문에 20.2%는 ‘전혀 그렇지 않다’를 34.9%는 ‘그렇지 않다’를 선택하며 부정적인 의견이 55.1%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35.8%는 ‘보통이다’, 9.1%는 ‘그렇다’로 긍정적인 의견은 적었다. 강의평가의 반영도에 대해 특정 교수님들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나아지고 있는지 체감하지 못했다는 학생들의 의견이 주를 이뤘다. 심지어 "전공 교수님이 작년 강의평가 자료를 캡처해서 피피티를 만들어 그 학생들을 비난하고 강의평가를 잘하라는 압박을 주신 적이 있다", “강의평가를 읽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교수님들이 종종 있어 강의평가 반영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교수들이 강의평가를 다 확인하고 있는지 교무팀에 묻자 “교수가 강의평가를 확인했는지는 체크를 할 수 없다”며 “교수의 수업권, 강의 철학 등에는 함부로 개입하기 어렵다. 하지만 하위 10%에 해당하는 교수님들을 상대로 교육역량혁신원에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통합정보시스템 ‘강의평가 결과’ 탭에서 최근 3년간의 강의평가 결과를 확인해보니, 특정 교수들에게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 문제들이 많았다. 교양과목 중 스포츠 수업의 강의평가 자유 의견에는 교수가 성차별적, 성희롱 발언을 했으며 “여학생들에게 야한 농담을 했다”, “남학생들의 성기를 잡았다”는 충격적인 의견이 있었다. 한 학생은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들으며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수도 없이 고민했고, 자퇴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각했다”라며 불쾌했던 감정을 드러냈다. 이는 엄연한 성희롱, 성추행에 해당하지만 해당 교수의 강의는 계속됐다. 성(性)적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 성향을 대놓고 드러내며 주입하려 하거나 본인 지필 서적 구매 강요, 권위주의적인 수업방식에 대한 지적이 존재하는 강의들도 있었지만, 평가 결과에 따르면 긍정적인 변화는 없었다.
이렇듯 ‘더 나은’ 강의를 만들기 위해 실시한다는 강의평가의 취지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은 강의평가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교무팀은 “강의평가에 이러한 자유 의견이 달리면 해당 교수님과 직접 문제 부분에 대해 확인과정을 거치고 주의를 내리고 있다”며 “다만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이 소수인 경우 확인 과정을 거치는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교무팀에게 한림알리가 확인한 강의평가 자유의견 중 심각한 사례들에 대해 질문하자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당 교수를 찾아가 문제에 대해 조치를 내렸으며, 다음학기 자유 의견이 눈에 띄게 긍정적으로 달라진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의평가 참여가 저조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확인이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한림대학교는 강의평가 결과를 어떻게, 어디에 이용할까? 교무팀에게 강의평가의 결과 이용에 대해 묻자 “강의평가 문항별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우수 교원을 상대로 ‘베스트 어워즈’를 실시하고 있다. 학교에서 수상자를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며 “강의평가는 교수님들의 업적 평가에 반영된다. 전체 4분의 1을 차지하는 교육 부분의 25%를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림대학교 홈페이지와 공식 블로그를 둘러보니 ‘베스트 어워즈’에서 수상한 우수 교원에 대한 홍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익명성에 대한 신뢰감 제로”, “익명이 아닐까봐 두려워요”
학생들이 가장 의문을 갖는 문제 중 하나는 ‘익명성’이다. 지난 몇 년간 학생들 사이에서는 강의평가 결과가 출석 순으로 뜨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과거에는 학번 순서대로 강의평가 결과가 교수들에게 공개됐다. 때문인지 설문조사에서 “교수님이 해당 강의평가를 쓴 학생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쓰게 된다”, “익명이 아닐까봐 두려워요” 등 다수의 학생이 익명성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점점 강의평가에 솔직하게 답변할 수 없다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강의평가의 의미가 축소됐다. 미디어스쿨에 재학 중인 B씨는 "강의에 대해 제대로 비판을 하고 싶어도 익명성에 대한 소문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하지 못하고 돌려 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교무팀은 “2013년 전부터 시스템 개편으로 암호화되어 데이터 관리가 되기 때문에 누가 작성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학생들이 익명 시스템에 많은 불안감을 체감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현재 확실하게 익명성이 보장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러나 소수정예로 이루어진 강의의 경우 특정 내용을 적으면 교수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학문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은 저마다의 학문적 호기심에 따라 특정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다. 당연하게도 대학생들은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교수로부터 ‘강의’를 듣는다. 의무교육이 아닌 대학의 교육은 엄연한 ‘시장재’다. 올해 한림대학교 연평균 등록금을 기준으로 계산한 결과, 재학생들은 한 주에 약 23만원의 수업료를 지불한다. 대학 강의가 수업료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 가치를 공식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 한 학기에 두 번 실시하고 있는 ‘강의평가’다. 강의평가는 질 높은 강의를 위한 학생들의 권리이자 학생과 교수가 더 나은 강의를 위해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제도다. 실효성 있는 강의평가를 위한 학교의 제도 개선과 더불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권리 행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취재, 인터뷰= 박다슬 기자(pds39590@naver.com), 유지호 기자(yoojiho1004@naver.com)
글= 박다슬 기자(pds39590@naver.com), 유지호 기자(yoojiho1004@naver.com), 조한솔 기자(whgksthf98@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