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뽀얀 볼과 세 치 혀를 가진 남자 그는 정치부 소속이었는데, 국회 생활이 몹시 고되고 힘들다며 하루빨리 후임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땅딸막한 체형에, 아직 젖살이 덜 빠진 뽀얀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P의 언행은 거침이 없었고 또 무례했다. 우리가 자리한 곳이 중국집의 프라이빗 룸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로 P는 해서는 안 될 말과 질문들을 비속어와 함께 쏟아냈다. “랩 했다면서. 노래방 좋아하겠네?” “네. 그렇습니다.” “오래 걷는 것도 괜찮지? 그럼 너 정치부로 와라.” “네, 가고 싶습니다.” “야, 지랄하지 마. 이 새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네? 정치부 안 오기만 해.” 그의 폭주는 이제 막 시작한 참이었다. 입사 전 기자 생활 경력이 있는 동기에게는 ‘네가 기사를 그렇게 잘 치냐’며 시비를 걸었고, 여자 동기에게는 ‘애인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무력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던 우리는 화를 내거나 지적하는 것 대신, 목소리 톤과 표정 관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는 격언이 있지만 그는…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자네 아버지가 말인즉슨 경찰인 그가 다른 경찰을 고소한 사건이었다. 팀장은 격양된 목소리로 사건의 경위를 이야기했다. 거친 경찰 생활을 오래 한 그는 말보다 뉘앙스와 몸짓이 더욱 익숙했다. 그의 팔뚝에 새겨진 흉터처럼 그의 말은 느낌과 감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슬프게도 나는 그러한 말을 그대로 옮길 수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말소리 높낮이나 손발짓과 같은 감각적 언어들을 기사의 언어로 정리해야 했다. 그건 머리 아픈 작업이었고 꼭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까 킥스로 내가 확, 시간이 다르잖아. 완전히 사시미야, 사시미.” “그러니까 확, 했다는 게 정확히 무슨 의미... 그리고 사시미요?” “답답하네, 그러니까 시간이 다르니까, 콱, 흔적, 꼬리를 잡아냈다는 거지. 그거랑 청첩장으로. ” “청첩장은 또 뭔데요?” 두 시간 동안 팀장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사건의 개요를 이해할 수 있었다. 휴일에 자전거를 타던 그가 모종의 이유로 다른 경찰과 시비가 붙게 되었고, 그 해결 과정에서 상대방 경찰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잡음이 생겼다는 것이 대략적인 야마였다. 더불어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서울역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결국 B 경찰서에 들어가지 못했다. 내 또래의 그는 나의 생떼에 무척이나 곤란해했다. 그러나 곤란하기로는 나 역시 피차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들여보내 줄 때까지 로비에 머무르기로 했다. 기다리기를 10분, 이 일을 한 지 얼마나 됐냐고 그가 말을 걸었다. 하루 됐다, 고 대답하자 고생이 많습니다. 라고 화답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였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고, 누군가를 곤경에 빠트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늦은 야근을 마친 경찰들이 하나둘 본관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오는 족족 붙잡고 간곡한 자기소개와 함께 명함을 돌렸다. 안면을 틀 수 있다면 내부에 진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명함을 받지 않았다. 보고 시간은 속절없이 다가왔다. 바이스에게 전화를 해 현재 위치와 행적을 보고했다. “바이스, 죄송합니다. B 경찰서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습니다” “아냐, 됐어.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이만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라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모든 부서의 모든 문 카톡으로 보고 내용을 전송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바이스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소상히 물어봤다. 더불어 보고 형식을 어떻게 하면 더욱 구체적으로 쓸 수 있는지 간단하게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그의 말에는 사적인 감정이 들어 있지 않았다. 분명 욕설이 날아올 것이라 각오하고 있었기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신입 기자가 첫 보고에서 무언가를 알아낼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은 듯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A 경찰서 로비에 앉아 멍하니 남은 시간을 보냈다. 과한 긴장에 지친 상태였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바이스에게 전화해 위치 보고를 했다. “OO기 수습기자 OOO입니다. 현재 A 경찰서 로비입니다” “응, 그래. 경찰서에 열려있는 모든 문에 들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와라.” 파출소나 지구대와 달리, 경찰서에는 수십 개의 부서가 있다. 개중에는 마약 수사팀, 교통 범죄수사팀 등 사회부 기자의 일과 밀접히 닿아 있는 곳도 있지만, 청문감사실, 경비계 등…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당돌하게 쫓겨나기 “수습기자 OOO입니다. 경찰서 도착해 출근 보고드립니다” 인사는 짧았고 지시는 명료했다. 아홉 시까지 관할 경찰서 당직실을 돌아다니며 간밤에 있었던 특이동향을 알아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한 곳에서 이야기가 길어질 경우 충분히 시간을 쓰라고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잠시 눈을 감고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우선 내가 있는 A 경찰서의 형사당직실로 향했다. 형사당직실은 이중 보안 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민원인을 위한 빨간 호출 버튼이 문 오른쪽 아래편에 달려 있었다. 크게 한번 심호흡한 후 버튼을 누르자 사복을 입은 당직 형사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밤을 새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나를 민원인이라 생각했는지 애써 친절한 미소를 띤 채 어떤 일로 찾아왔냐고 물었다. “오늘 처음 온 OO 신문 기자입니다. 다름 아니라 간밤에 별다른 사건 없었는지…” “예? 아무 일 없고요. 나가세요” “제가 오늘 처음 왔는데... 팀원분들께 간단하게 인사만 드리고
[편집자주] 학생운동 시리즈는 재도약네트워크의 기고문입니다.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alookso)'와 동시 연재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학을 비롯한 곳곳에서 ‘비임금 활동가'로 일하는 많은 이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밤낮, 주말할 것 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사비를 써 가며 일을 하지만 이것이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는 경력이 되긴 어렵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바꿔 보고자 하는 일념으로 분투하지만, “와, (돈도 안 받고)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악의 없는 반응에 조금은 힘 빠져 본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이번에 만나볼 인터뷰이, 차종관은 대학을 벗어나 언론인으로 일하기 시작한 ‘졸업활동가'다. 오랜 시간 수많은 번아웃을 겪고, ‘돈 안 되는 일'이라는 편견과 맞서 갈등했지만, 결국은 대학언론인으로 활동한 경험이 본인을 기자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종관으로부터 활동 경험이 어떻게 ‘먹고 사는 일'이 되었는지 들어본다. 인터뷰에는 재도약네트워크의 태린, 선재가 함께했다. 차종관은 어떤 사람? 대학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집권을 가지고 언론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비영리독립언론 ‘대학알리'의 대표, 대학 언론의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대면식, 그리고 질문 “네 음악 가사, 사내에서 말 많은 거 알아?” 질문은 조용한 분위기를 찢고 불쑥 튀어나왔다. 당황스러웠다. 모골이 송연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할 것 같다. 나는 언시 준비 전부터 취미로 음반 녹음과 발매를 해 왔지만, 면접은 물론 대면식 이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또 나는 예명으로 활동해 왔기에, 내 이름을 안다고 해도 내 음악을 찾을 수는 없어야만 했다. 그의 질문은 이미 우리들 신입 기자에 대한 기본적인 뒷조사가 모두 끝나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세히는 못 쓰지만, 당연하게도 나만 뒷조사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정보를 찾는 게 직업인 이들인 만큼, 신입의 과거를 캐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내가 발매한 노래 열 몇 개의 제목과 가사들이 머릿속에 나열됐다. 몇몇 곡의 다소(?) 거친 표현들이 문제였나, 아니면 생활고로 임상실험에 참여한 경험을 쓴 가사가 너무 자극적이었나. 혹은 퀴어를 주제로 했던 곡이 보수적인 이 회사의 논조와 맞지 않았던 것일까. 전부일 수도 있었고, 그중 무엇도 아닐 수 있었다. 남에게…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아마 다시는 갈 일이 없겠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언진재가 자리한 그 정동길을 생각한다. 어떤 종류의 결핍도 느낄 수 없었던,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고 생각되었던 그 길을. 아마 그건 안도감이 아니었을까. 이 도시의 어엿한 구성원이 되었다는 안전의 감각. 실제로 나는 그즈음 내 삶을 구성해 온 오랜 취미들로부터 거의 손을 뗀 상태였다. 더 이상 음악을 만들지도, 야마 없는 글을 쓰지도 않았다. 오래된 물건과 옷 수집을 그만두었고 요리에 대한 열정 역시 식은 상태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이뤄낸 꿈, 그리고 안정적인 직장이란 것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언진재 교육이 끝난 우리는 회사로 복귀했다. 의외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일주일간 못다 한 사내 교육을 끝마친 후 본격적으로 마와리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복귀한 우리를 본 국장이 군기가 빠졌으니 “빠따”를 한 대씩 쳐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런 엄포와는 달리 사진 촬영 교육, 기사 헤드 쓰는 법 따위를 교육받으며 다소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 주가 지나갔다. 사내교육이 한창이자
28년 전, 한국사회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인해 큰 비극을 겪었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경 서울시 강남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삼풍백화점은 단일 매장 기준으로 전국 2위의 매출액을 달성하는 한국 최고의 백화점이었다. 삼풍백화점에서 발생한 붕괴 사건은 무려 502명이 사망하였으며 실종자 6명, 부상자 937명이 발생하여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다. 또한 한 해 전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겹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공포와 상처를 남기며, 우리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이제 우리는 삼풍참사 28주기를 맞이하여 이 비극의 기억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안전 대책을 강화하기 위한 동기부여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삼풍백화점 前회장 이준 曰 "여보쇼 (백화점)무너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손님들에게 피해도 가지만 우리 회사의 재산도 망가지는 거야" 삼풍백화점은 건설 당시 부지용도가 아파트로 설정되어있던 부지였다. 하지만 서울시로부터 용도변경을 허가받아 백화점 건설 공사가 시작됐다. 삼풍백화점은 공사를 진행하면서 수시로 설계도를 변경하며 부실한 공사를 단행하였다. 몇 가지 예
이번 칼럼에서는 실제 대학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대학생들과 학교 간의 분쟁의 본질을 파악한다. 또한, 협력의 필요성과 상호간의 신뢰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대학 생태계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외압과 내풍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기관 꽃처럼 아름답고 바위처럼 강했던, 화랑 교내 첫 체계적인 단과 학생회의 출범 지난 2월 27일, 한국영상대학교 영상디자인과 제25대 학생회 화랑이 창설되었다. " '꽃처럼 아름답고 바위처럼 강했던'이라는 기조처럼 강단있게 나아가는 학생회"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독립적인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운영방향성을 제시했다. 먼저 학생회와 학생들간의 소통이 전무후무했던 전례를 깨고, 안건지 공개와 학과학생회칙 제정 및 카카오톡 채널을 구축하는 등 학생회와 학생간의 소통을 중시했다. 이처럼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인 학생들과 학교와의 소통창구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게끔 변화를 시도하는 한국영상대학교 교내 처음으로 체계적인 단과 학생회의 시도를 짚을 수 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여러 대학들의 갈등 사례 이를테면 여러 대학들의 갈등 사례이다. 이…
[편집자주] 해당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게재됩니다. 들어가며 나는 2022년 12월에 기자가 되었고 이듬해 3월 그만뒀다. ‘마와리’를 끝내고 사회부에 배속된 직후였다. 주변인들은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끝내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설명하려 노력해 봤지만, 이야기는 사람의 말이 되지 못해 가라앉거나 흩어졌다. 그래서인지 더러는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건 그만둘 이유가 아니니 계속 해 보라고도 조언했다. 사람의 말과 글로 이 글은 기록이고 변명인데 내가 풀고자 한 것은 이야기다. 그래도 굳이 이야기의 계통을 나누면 기담(奇談) 축에 드는데, 깨어서는 꿈처럼 흐릿한 기억이 막상 꿈을 꿀 때는 생생하게 재연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밤중 종종 그때의 꿈을 꾸고 깬다. 그러나 내 동기들은 여전히 성실하게 기자 생활을 하고 있기에 나는 이걸 오직 내 문제로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은 좋은 선배들과 함께 회사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치열하게 살고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가 기자를 준비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꺾지 않기를 바란다. 내게 이 일이 지독하게 맞지 않았고, 여기에 더해 나처럼 되지 말라는 반면교사의 표본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14일, 성공회대학교 제38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학우들 동의와 의견 없는 학제 개편은 누구를 위한 개편입니까"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올렸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처음 학제 개편 소식을 접해야 했다. 학생기구들은 총학 비대위의 입장문을 공유했고, 학생들은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학제 개편 과정이다. 총학 비대위의 입장문 역시 "찬성과 반대를 떠나 학우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이 없는" 점을 짚는다. 최영묵 교무처장은 13일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나 자료 한 장 없이 개편안을 구두로 전달했다. 이후 성공회대학교 미디어센터의 24일 보도를 통해 2안이 있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학생에게 전달된 공식 자료는 현재까지도 없다. 전공 교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제 개편 설명회는 3월 15일에 열렸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설명회도, 개편안을 설명하는 자료도 없었다. 현재 개편안에 관한 논의는 공허하다. 공식 자료 없이 개편안은 시차를 두고 전해지는 등, 각 안에 대한 찬반보다 개편안들의 출처와 진위를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현행 학제 진단, 참여 단위, 일정, 개편안과 시행 목적 등 기초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결정까지…
* [외-피니언]은 '외대'와 '오피니언'의 합성어로, 외대알리 기자들의 오피니언 코너입니다. 학생 사회를 넘어 우리 사회의 사안을 바라보며, 솔직하고 당돌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여성이 군대 가는 시대 지난 1월 30일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민방위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여성군사기본교육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개정안은 기존 민방위 교육이 담고 있는 20세 이상 40세 이하 남성의 조직 대상을 '국민'으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20~40세 여성 역시 의무 대원이 된다. 다만 임산부, 유산 혹은 사산한지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은 여성은 제외된다. 개정안 발의 이후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 23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쟁국면으로 사회를 이끌려는 윤정부의 의도를 반영한 위험한 행보"라며 "지지율이 떨어지면 들고나와 반등을 꾀하는 '여가부 폐지'의 국방 버전"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여성 징병제, 모병제 등 병역 제도 개편 논의는 선거철마다 등장해왔다. 문제는 선거철에만 등장하는 '반짝 공약'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매년
자립준비청년의 안타까운 선택...우리는 왜 그들을 지키지 못했는가 2022년 8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광주 지역에서 자립을 앞두고 있던 청년 2명이 며칠 간격으로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자립준비청년은 보육원, 그룹홈, 쉼터와 같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등의 보호를 받는다. 이들은 만 18세 이후 보호 종료와 함께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사회복지사를 꿈꾸며, 보육원을 나와 광주에 있는 한 대학에 입학한 자립준비청년이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남긴 마지막 쪽지에 적힌 말이다. 2022년 8월 21일, 광주 광산구에 있는 모 대학교 기숙사 건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내가 살아온 삶이 고달프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던 다른 자립준비청년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속 내용의 일부이다. 그는 유언과 함께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포기하였고, 2022년 8월 24일, 광주 지역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자립준비청년의 잇따른 극단적 선택 소식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들이 남긴 메시지였다. 메시지 속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와 ‘내가 살아온 삶이 고달프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김연준 사무국장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독자님들과 후원자님들께, 쿠키뉴스에, 법무법인 ‘소울’의 홍지형 변호사님께 이외에도 대학알리와 동행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대학알리 사무국장 김연준입니다. 글로는 처음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지난 8월, 대학알리에 복귀했고 이제 임기가 막 4개월이 지난 초보 사무국장입니다. 그 동안 단체의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다행히도 지원했던 일부 사업에 선정되면서 소기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대학알리는 ‘서울시 시민 개방 홍보’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이제 올해 3월부터 서울 곳곳에 있는 가판대, 지하철, 구두 수선 부스 등에서 대학알리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잠재적 대학언론인들이 우리의 홍보물을 보고 우리와 함께하길 바랍니다. 대문 열어놓겠습니다.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1차 서류 심사에도 붙은 상황입니다. 총 지원비가 2000만 원이나 되는 거대한 사업인데, 4일에 있는 전화 실사로 최종 선정 여부가 결정됩니다. 만약 선정된다면 올해 대학알리가 진행하고자 하는 여러 사업에 날개가 달립니다. 하지만 선정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