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고, 벼랑 끝의 대학 공론장을 살려내기 위해 전국 각지의 대학언론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대학알리,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가 공동 주최하고 단비뉴스·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이 후원한 '2026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도약'이 14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사이버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인력난과 예산 삭감, 편집권 침해라는 구조적 늪에 빠진 대학언론의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타개할 실질적인 로드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80여 명의 대학언론인이 참가했다.
개회사에서 이은정 외대교지 편집장은 "대학언론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대학 사회의 기억이자 질문의 출발점"이라며 "불편하더라도 다시 묻는 일, 기록을 멈추지 않는 그 집요함이 대학언론을 대학언론답게 만든다"고 말했다.
데이터로 증명된 위기 현황…놓쳐버린 '골든타임'
발제에 나선 전설 단비뉴스 기자는 전수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학언론의 연쇄 폐간 실태를 드러냈다. 전 기자는 "폐간이 확인된 31개 학보사 중 16곳(64%)이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이후 사라졌으며, 31곳 중 30곳이 사립대"라고 전했다. 특히 "폐간 대학의 약 80%가 재학생 5000명 미만인 대학이며, 울산·경남(36%), 광주(30%), 강원(28.5%) 등 지방일수록 폐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방 학보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그 지방 청년들의 목소리도 같이 사라진다는 뜻"이라며 "기록이 사라지면 권력이 책임을 지지 않게 되고, 이는 곧 대학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신호"라고 말했다.
윤희각 부산외대 교수는 대학언론이 위기 극복을 위한 시대의 골든타임을 번번이 놓쳐왔음을 지적했다. 윤 교수는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 성장 시대, 2000년대 스마트폰 등장, 2010년대 SNS 시대의 생존 전략으로 대학언론은 아무것도 못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예산이 없으니 학보사는 홍보실 소속의 대외 홍보지로, 영자신문은 영문과 학술 동아리로, 방송국은 입학 홍보대사로 만들자는 식의 구조조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대학언론 위기 극복에 AI가 과연 실질적 도움이 될지 묻는 질문에 윤희각 교수는 "AI를 기사 작성에 쓰면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윤 교수는 "학생들이 가장 취재하기 힘든 상대가 바로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대학 본부다. AI가 구독률을 폭증시키진 않겠지만, 취재에 필요한 통계나 관련 자료를 뚫어내고 확보하는 데 있어서는 가장 뛰어나다"고 첨언했다.
연대와 매체혁신…"구조적 한계를 뚫어낼 돌파구"
대학언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성공 사례도 전해졌다. 박주현 전 부산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위원장은 지역 의제를 다루기 위해 뭉친 부산 지역 학보사의 연대기를 소개했다. 동아대학보, 부경대신문 등이 모여 '지역 대학 위기'를 조명한 공동 취재로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한 그는, 이를 발판으로 구조적 한계를 넘기 위한 제도적 시도까지 나아갔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대학 본부의 예산 삭감이나 편집권 침해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하도록 부산시로부터 지원을 받을 근거를 조례로 만들었다"며 "의지만 있다면 지역 단위의 연대로 무궁무진한 돌파구를 열 수 있다"고 역설했다. 대학언론 간 공동 취재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박주현 전 위원장은 "조별과제를 하는 느낌과 비슷하다"면서도 "구심점이 되어 소통과 협의를 끊임없이 이끄는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정윤서 부대신문 편집국장은 통합 미디어센터로 거듭나며 폐간 위기를 극복한 '채널PNU'의 사례를 공유했다. 정 국장은 "신문, 영자신문, 방송국 3사가 통합하여 원소스 멀티유즈(OSMU) 체제를 도입했고, 학생 간사를 폐지하고 기자 경력의 전문 간사를 도입해 체계적인 수습기자 교육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간 지면 발행을 과감히 폐지하고 뉴스레터와 월간 지면으로 전환하며, 기사의 완성도와 정보의 신뢰성을 엄밀히 검토해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고 전했다. 채널PNU는 이를 통해 부산 스쿨존 안전 문제를 고발해 MBC 주최의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학내외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위기의 본질은 콘텐츠의 부재…"박탈당한 편집권부터 되찾아야"
원지현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의장은 "대학언론 위기의 본질은 우리가 콘텐츠로 존재 의미를 증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며 "이는 편집권이 보장되지 않아 독자들이 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비판적인 콘텐츠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원 의장은 총장 비판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기자 전원을 해임하고, 학생기자들의 편집권을 행정적으로 박탈했으며, 지도 불응 시 징계하겠다는 조항을 신설해 언론탄압을 합법화한 숭대시보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개인의 파편화된 저항이 아니라 단단한 집단의 행동으로 변해야 한다"며 "대학언론법 추진과 비민주적 학도호국단 학칙 폐지 캠페인을 전면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서지우 대학알리 대표는 "20대 종이신문 열독률은 3.1%에 불과하다. 패러다임이 '읽는 뉴스'에서 '보는 뉴스'로 넘어갔다"며 "위기라고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독자를 끌어당길 압도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기성언론 현장 기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오직 청년들만의 시각과 통찰력으로 사회적 의제를 선도해야 한다"며 2억5000만 원 규모의 '가짜동아리 배후기업'을 4개월간 추적 보도해 프레시안과 협업하여 포털 실시간 조회수 1위를 달성한 사례를 제시했다.
두려움 없는 질문과 지역언론과의 상생
'신진기자 발언대'에서는 이제 막 펜을 쥔 새내기 학생기자부터 현직 기성기자들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깊은 성찰이 오갔다. 대학언론이 지역언론과의 협업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김보현 뉴스민 기자는 "지역언론은 예비 언론인들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기성언론이 보지 못하는 청년의 시각과 새로운 의제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박상혁 프레시안 기자 역시 "학생기자 입장에서도 기성언론과 협업해 네이버 등 포털에 기사가 노출되고, 수많은 댓글을 통해 대중의 진짜 반응을 확인하는 경험은 기자로서 효능감을 느끼게 해줄 것"이라며 적극적인 연계를 추천했다.
대학언론에 막 발을 들인 이루원 외대알리 기자는 "대학 강의실에는 왜 태극기가 없을까 의문을 가졌고, '대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곳이고 그 진리는 국가에 반할 수도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두려움 없는 질문의 시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유정민 전 수원대학보사 편집국장 역시 "우리의 모든 일상이 취재원이다. 후회 없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인생 기사를 꼭 써보라"고 후배들을 격려했다.
매체별 생존 전략 모색…'대학언론 위기 극복 가이드라인'으로 탄생
간별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참가자들이 학보사, 방송국, 영자신문, 교지, 자치·독립언론 등 5개 매체별로 나뉘어 '대학언론 위기 원인과 솔루션'에 대한 140분간의 난상토론을 펼쳤다. 토론 이후 참가자들은 단상에 서서 논의 내용을 발표했고, 행사 사무국은 이러한 논의가 휘발되지 않도록 정리했다.
차종관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사무국 스태프는 이날을 포함한 지난 3년 동안의 토론 내용, 최근 연구 및 기사를 참고해 '대학언론 위기 극복 가이드라인'을 제작했다. 그는 "본 가이드라인은 위기의 본질 진단, 대학언론인 개인 차원의 실천 과제, 대학본부 차원의 혁신 과제, 국가(입법·행정부) 차원의 제도적 과제, 대학언론 혁신 조직의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에는 구체적으로 대학 본부 측에 '대학언론을 홍보지가 아닌 독립된 공적 매체로 인정하고 일체의 사전 검열을 철폐할 것'이 적혔다. 더불어 국회에 '편집권 독립과 예산 보장을 명문화한 대학언론법을 조속히 제정하여 캠퍼스 내 언론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 교육부에 '비민주적 학도호국단 학칙으로 인한 학생 피해를 막기 위해 전수조사 및 시정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점'도 포함됐다. 차 스태프는 "이 자료가 대학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기하늘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사무국장은 "오늘 전국의 대학언론인들은 심화된 위기 상황에 절망하는 대신 연대의 빅텐트를 쳤다"며 "콘퍼런스가 앞으로도 열려 대학언론의 미래를 도모하길 바란다. 그럼 대학언론은 생존을 넘어 진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성료 소감을 전했다.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사무국은 행사 내용을 총망라한 자료집과 영상을 차후 제작해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홈페이지로 배포할 예정이다. 대학언론 위기 극복 가이드라인도 함께 배포된다.
김태섭 기자 taesub0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