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1 (일)

대학알리

[기고] 낙타와 사자와 ‘경도’

최희령 대학알리 전 기자

 

니체의 ‘위버멘쉬(Übermensch, 독일어로 초인을 뜻한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성숙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세 단계를 거친다. 인간의 내면이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아이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사막 위를 묵묵히 걷는 낙타는 인내하는 사람이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따가워도 불평불만을 삼킨 채 나아간다.

 

낙타가 자라면 사자가 된다. 사자는 포효할 줄 안다. 부조리에 이빨과 발톱을 감추지 않고 핍박에 분노한 적 있다면 당신은 사자다. 마지막은 아이다. 아이는 넘어져 생채기가 나도 금세 놀이에 몰두할 줄 안다. 이러한 아이의 태도는 ‘초인’이 갖춰야 할 궁극의 자격이다.

 

 

청년들은 현세에 ‘아이의 놀이’를 소환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해 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옛 풍경은 2026년에 고스란히 재생된다. 당근마켓 앱을 켜면, 맨 위에 걸린 ‘경도(경찰과 도둑)하실분’ 모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2025년 12월 23일 개설, 멤버 652명. 어제 막 ‘달리고 온’ 참가자의 따끈한 후기들이 줄지어 달려 있다. “진짜 재밌게 잘 뛰고 갑니다”, “다 큰 성인끼리 토할 정도로 뛰어다닌 게 낭만 그 잡채”, “경도에 진심인 분들만 있더라고요”. 명분이 ‘경도’지, ‘수건돌리기’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따위 추억의 놀이도 포함됐다.

 

‘경도 열풍’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누군가는 그 속에서 쉽게 트렌드에 뛰어드는 ‘유행에 민감한 MZ’의 모습을 본다. 누군가는 취업난 등 고된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처’란다. 또 누군가는 깊은 감정 교류 없이 만남을 즐기는 ‘부담 없는 관계 맺기’ 행태가 엿보인다고 한다. 이렇듯 사회가 ‘청년’과 ‘동심’을 대하는 태도는 얼떨결에 ‘경도 유행’을 타고 수면 위로 떠오른 듯하다.

 

‘경도’는 놀이를 넘어 청년층의 새로운 생존 방식이다. 니체의 언어를 빌리자면 경찰 혹은 도둑이 되어 공원을 누비기 이전, 그들은 낙타 혹은 사자였다. 그간 ‘어른스러움’, ‘취업’, ‘스펙’ 등 사회적 책무를 짊어지고 살아왔거나, 자신을 둘러싼 녹록지 않은 현실에 ‘화병’이 나 있었을 테다. 홀로 참아 보기도, 때로 소리 지르며 울기도 했을 테다.

 

요즘 애들이 내놓은 ‘고된 현실’에 대한 답은 결국 동심이다. 현실을 견디거나 부수는 대신 동심으로 돌아간 이들은 역설적으로 이 시대 ‘초인’이 됐다. 모두가 생산성을 외칠 때 무용(無用)한 술래잡기에 뛰어든 청년의 역설적 승리인 셈이다. 올겨울 공원에서 땀 흘리며 달렸던 모든 구성원은 니체가 강조하는 ‘유희’의 가치를 체험한 산증인이다. ‘경도 유행’이 저물어도 걱정 없는 이유다. 게임은 끝나도 ‘아이의 태도’를 터득한 청년들의 삶은 이어지는 까닭이다.

 

 

최희령 대학알리 전 기자(cur20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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