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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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의 한국 영화 점유율, 관객의 선택은 달라졌다

 

극장 산업 위기론에 무색하게, 주말의 영화관 로비는 여전히 혼잡하다. 매점 창구마다 길게 늘어선 관객들의 줄 끝에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보는 행위를 넘어, 그날만 손에 넣을 수 있는 한정판 굿즈나 특수관에서의 특별한 체험을 기다리는 이들이 서 있다. 전반적인 침체 국면 속에서도 특정 소비 지점만이 활기를 띠는 이 풍경은, 극장을 찾는 목적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더 이상 스크린 속 이야기만을 소비하지 않는다. 한정판 굿즈, 특수관 상영, 현장 체험처럼 오직 극장에서만 가능한 경험이 관람의 주요 동기가 되고 있다.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보다 '극장 안에서의 경험'에 주목하는 이 변화는 영화 산업의 흥행 공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숫자가 증명한 흥행 공식의 변화


올해 한국 영화산업의 주요 지표는 앞서 언급한 관람 경험 중심 소비 구조의 전환을 수치로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23일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의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2월 한국 영화의 매출 점유율은 12.0%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제외하면 2005년 이후 12월 관측치 중 최저 수준에 해당한다. 연간 누적 매출액 또한 전년 대비 39.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산업 전반의 위축세가 지표상으로 가시화되었다.

 

 

 

이러한 지표의 하락은 단순한 흥행 부진을 넘어 극장 시장의 구조적 전환을 시사한다. 특히 2012년 이후(팬데믹 제외) 처음으로 연간 ‘천만 영화’가 배출되지 않은 점은, 대중적 블록버스터를 중심으로 한 기존 흥행 모델의 동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공백을 글로벌 IP(Intellectual Properties·지적재산권)와 이벤트형 콘텐츠들이 메우면서, 관객의 관람 기준 역시 서사 중심의 보편적 감상에서 경험 중심의 선택으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 영화가 주력해온 드라마 중심 콘텐츠가 극장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2025년 흥행 상위권에 오른 외국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검증된  IP를 바탕으로 단순 관람 이상의 가치를 제공했다는 특징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연간 흥행 1위를 기록한 <주토피아 2>와 팬덤 소비가 뚜렷했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주차별 한정판 굿즈 증정과 같은 이벤트 기획을 통해 관객의 반복 관람을 유도하며 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했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특수상영 매출의 비중 확대다. 12월 흥행 2위에 오른 <아바타: 불과 재>는 전체 매출액 중 42.7%를 IMAX, 4DX 등 특수상영관에서 거두어들였다. 이는 일반 상영관보다 높은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만 가능한 몰입형 시청각 경험에 추가 비용을 지불하려는 관객 수요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관람 선택이 콘텐츠 자체보다 체험의 강도에 의해 좌우되면서, 특수관 활용도가 높은 글로벌 IP 기반 대작들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실제로 같은 시간대의 일반 상영 회차 대신 4DX 상영을 선택한 관객 A씨는 “관람료는 더 들지만 체험의 밀도가 전혀 다르다”며 “영화관에 오는 의미를 다시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OTT 이후 극장의 재정의


이러한 관람 행태 변화의 배경에는 OTT 확산으로 약화된 극장의 희소성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극장은 신작을 만날 수 있는 독점적 공간이었으나, 홀드백(Hold-back·극장 개봉 후 다음 플랫폼으로 넘어가기까지의 기간) 단축과 OTT직행 콘텐츠의 증가로 인해 ‘언제든 접근 가능한 플랫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되었다. 그 결과 관객에게 극장은 일상적 관람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경험이 있을 때만 찾는 장소로 성격이 변하게 된 것이다. 대학생 B씨는 “영화 한 편 티켓값으로 여러 콘텐츠를 볼 수 있는 OTT를 구독하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 느껴진다. 이벤트가 아니면 굳이 극장에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극장의 기능이 경험 중심 공간으로 재편되면서, 상영 콘텐츠의 경쟁 조건 역시 변화하고 있다. 오직 대형 스크린과 특수 시스템에서만 체감할 수 있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갖춘 작품이나, 팬덤 기반 소비를 끌어낼 수 있는 글로벌 IP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관람 우선순위를 점유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변화한 극장 소비 구조는 한국 영화에 구조적으로 불리한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드라마 중심 서사를 강점으로 삼아온 한국 영화는 관객들 사이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OTT로 볼 수 있는 콘텐츠’로 인식되며, 극장 관람의 필수성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사이 글로벌 대작들은 이벤트와 체험 요소를 앞세워 반복 관람을 유도하는 반면, 한국 영화는 극장에서만 성립 가능한 관람 가치를 동시에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운영 전략의 전환과 가능성


극장 소비 구조의 변화는 운영 방식 전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이벤트 상영이 개봉 초기 화제성을 높이기 위한 무대인사나 관객과의 대화 등 한시적 장치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특별 회차 편성이나 특수관 상영이 극장 운영의 상시적 핵심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는 극장 공간이 작품 감상보다는 관객 경험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운영 전략의 변화는 상영 콘텐츠 구성에도 반영되고 있다. 12월 한국 영화 흥행 상위 10위권에 <에이티즈 브이알 콘서트: 라이트 더 웨이>, <몬스타엑스: 커넥트 엑스 인 시네마>와 같은 공연 실황 및 VR 콘텐츠가 포함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전통적 극영화의 침체 속에서도, 현장성과 체험성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가 새로운 관람 수요를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바뀐 관람 문화, 다음 장면은


2025년의 결산 데이터는 극장이 더 이상 영화 상영에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소비하는 장소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침체와 회복이 교차하는 환경 속에서 극장은 이벤트를 핵심 동력으로 삼는 새로운 산업 질서로 이동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변화는 관람 문화의 균열에 대한 우려도 낳고 있다. 상영 중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하는 이른바 ‘반딧불만없음 상영’은 경험 확장의 시도로 주목받는 한편, 극장 특유의 몰입과 정숙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경험 중심 전략이 영화 감상의 본질과 충돌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결국 2026년 한국 영화 산업의 핵심 과제는 이벤트 공간으로 재편된 극장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관람 구조를 모색하는 데 있다. 정부는 1,498억 원 규모의 예산과 200억 원의 중예산 영화 지원을 통해 제작 생태계의 균형을 꾀하고, 홀드백 제도와 구독형 관람권의 도입으로 극장의 운영 방식을 조정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창동, 나홍진, 류승완 감독 등 거장들의 신작 라인업이 예고된 2026년은 이러한 정책적 실험이 콘텐츠 경쟁력과 결합해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실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영화가 경험 중심 산업 질서 속에서 새로운 생존 공식을 구축할 수 있을지, 그 전환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허부현 기자(beee08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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