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지식의 상아탑이라지만, 현실은 학점 잘 주고 '팀플(팀 프로젝트)' 없는 수업을 찾아 헤매는 곳이 됐습니다. 대학생의 64.6%가 무기력증인 '대2병'을 앓는다고 해요. 침묵의 공간이 된 대학을 다시 비판적인 대화의 장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소현 UFLA 기획단장)
취업 사관학교로 변해버린 대학, 익명성에 기대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친 대학생들이 '진짜 대화'를 찾아 오프라인으로 모였다. 11일 대학문화유니온은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나를 위한 첫 대학 수업'이라는 슬로건의 '2026 새내기 교양대학(UFLA)'을 개최했다.
입학식에서 26학번 새내기 참가자는 자신을 정치외교학과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관심사에 맞춰 정외과에 진학했지만, 정작 과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다. 누군가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진지충' 취급을 받거나, 서로 얼굴 붉히는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학교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은 익명 뒤에 숨어서 온갖 혐오 표현과 비방이 난무한다. 진짜 내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안전한 공론장'이 너무나 고팠다"고 전했다.
사이버관 대강당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마친 학생들은 기후(이용석), 경제(홍기훈), 국제:UN(오시진), 공학(강정한), 미디어(구미숙) 등의 세션이 열리는 인문과학관 강의실을 찾아갔다.
"역사를 왜곡하는 자, 혐오를 먹고 자란다"
가장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 강의실은 최성용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이사가 이끈 '역사' 세션이었다. 세션 참가자들은 12·12 군사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12·3 내란 등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을 되짚으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기원을 추적했다.
최성용 이사는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편집하고 왜곡한다. 5·18을 '민주화운동'이 아닌 '폭동'이라 부르고 싶어 하는 세력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그들이 왜곡된 역사 위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 이사는 역사 왜곡이 필연적으로 '혐오'와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특정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고 배제함으로써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그는 "권력은 혐오를 통해 유지된다"며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 행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그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역사 인식을 우려했다. 최 이사는 "유튜브나 SNS를 통해 확산되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와 역사 왜곡 콘텐츠들이 청년들의 역사관을 흔들고 있다"며 "팩트를 확인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혐오의 언어에 동조하게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학생들은 강연자가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필기를 하며 집중했다. 강연이 끝난 후 사회자는 "오늘 우리는 역사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을 규정하는 치열한 전장임을 확인했다"고 정리했다.
"혐오와 차별에 맞서 목소리 내는 용기 가지자"
강연의 열기는 학생 토론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학생들은 조별로 둘러앉아 ▲내란의 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했나 ▲역사 왜곡과 혐오가 우리 사회에 위험한 이유 ▲대학생으로서의 실천 등을 주제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특히 '내란의 밤' 주제 토론에서는 청년들의 부채의식과 다짐이 교차했다.
한 학생은 "1980년 그날, 군부의 총칼 앞에 섰던 선배들이 느꼈을 공포와 용기를 상상해 보았다"며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광장에 나갈 수 있었을까 자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광장'은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혐오와 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용기 그 자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생은 역사 왜곡이 소수자 혐오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은 항상 약자를 공격한다. 5·18 피해자들을 '간첩'으로 몰거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방식이 그렇다"고 했다. 이어 "이것이 우리 사회의 장애인, 여성,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역사를 배우는 건 결국 약자와 연대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고 전했다.
토론 말미에는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학생들은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을 방관하지 않고 '그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오늘처럼 오프라인에서 서로의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자리를 더 많이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대학, 치열한 고민과 대화할 수 있도록"
대학문화유니온이 기획한 이번 UFLA는 누적 400명의 대학생이 참여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지난 10일에는 간호(이나윤), 국제:트럼프(안병진), 문학(오창은) 예술(권은비), 정치(한성민)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연사로 나서 학생들의 지적 갈증을 채워주었다.
모든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졸업식 형식의 수료식을 가졌다. 한 참가자는 "취업을 위한 스펙 한 줄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감각을 익힌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참가자는 "지금의 대학은 '침묵의 공간'이지만, UFLA는 대학이 여전히 치열한 고민과 대화가 살아숨쉬는 곳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전했다.
차종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자문위원 (chajonggwan.me@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