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일)

대학알리

오피니언

[알리트래블] 여행: 행복할 결심

 

1M 남짓한 책상은 한 인간의 세계다. 책상은 전자기기, 여러 책, 자질구레한 도구 따위로 빠듯이 채워져 있는데 각 물건의 쓰임이 잇대어져 사람의 필요를 적확하게 만족시킨다. 그 덕에 업무, 취미, 식사, 취침(쪽잠), 대화(SNS)를 아우르는 인생사가 책상 위에서 흐른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는 책상과 친하려면 몸을 움츠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손가락으로 플라스틱 키보드를 건드리고, 오래 앉아 습해진 엉덩이를 들썩이는 행위는 허락되지만, 힘차게 팔이나 다리를 내젓는 행위는 벽면에 부딪혀 얼얼한 고통으로 경고받는다. 머리도 책상과 친하도록 훈련 받아 직사각형 노트북을 쳐다보며 직사각형 사고를 하는 식이다. 사고가 직사각형 너머로 뻗어가면 책상에 머물기 어려워서다.

 

 

장시간 동일한 자세로 있으면 압박 부위에 욕창이 생기듯, 몸과 머리가 오래 억눌려서 둔하면 탈이 난다. 뼈를 지탱하는 근육이 야위어 앉은 자세가 오그라들었고, 주어진 테스크(task) 안에서만 생각이 맴돌아 사람 됨됨이가 편협하고 안쓰러웠다. 테스크(task)와 데스크(desk)의 음성적 유사성이 필연인 듯 절묘하다. 책상에 얽매인 몸과 머리가 빈약해지면서 책상의 세계와 대척점에 있는 세계로 건너가는 상상을 자주 했는데 도착지가 항상 바다였다.

 

바다는 갈망의 크기와 비례해 점점 가까워졌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던 게 숙소와 비행기 편을 잡기에 이르렀다. 한 학기의 종료 후, 다음 학기의 시작 전 틈바구니에 부산광역시 해운대구로 갔다.

 

 

해운대해수욕장은 활달하다. 신식 건물과 구식 건물이 땅이 비지 않도록 복잡하게 얽혀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고, 바다에서 밀려오는 열기, 짠 내음, 소리 등이 풍부하다. 긴 해안선을 따라 빈틈없이 맞물려 있는 숙박시설은 해가 뜨면 바다를 향해 일제히 사람을 쏟아낸다. 바다로 밀려간 사람과 육지로 밀려온 바닷물이 넘나들며 흥겨움으로 소란했다. 덩어리진 사람을 잘게 쪼개면 각각의 고유한 행위가 보인다. 어린아이들은 바다와 멀어지지 않으려 튜브를 끼고 더 깊은 물로 몸을 내던졌고, 어른들은 모래사장에 몸을 누인 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태양열이 후끈해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웠는데 하의만 입은 채 뜀박질을 하는 노인, 청년이 곁을 스쳐 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살피느라 움츠러든 이가 없고 도리어 무섭도록 스스로한테 몰입해 즐거움을 탐색했다. 그러면서도 옆 사람과 쉽게 접촉하고 나아가 바다를 오감으로 느껴, 타자, 자연과 맞닿음에 어색함이 없었다.

 

 

포구는 배가 드나드는 곳이라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안겨있다. 포구에서 포구(미포-청사포)로 걸으니 자연히 모든 걸음이 바다와 가까웠다. 발을 딛는 내내 고개가 바다가 있는 측면으로 고정돼 어깨가 가볍게 뻐근했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얕은 돌담이 솟았고, 그 위에 사람과 마찬가지로 바다와 가까워지려는 고양이가 배를 깔고 누웠다. 지근거리엔 먹다 만 사료 그릇이 놓였다. 흔히 밥을 얻어먹는 동물은 사람에게 속하는데 고양이는 밥을 얻어먹으면서 사람을 반기지도, 따르지도 않았다. 사료가 넉넉해도 배부를 정도만 요기했다. 사료가 없으면 알아서 먹고 살길을 찾으니 행동거지가 자유롭고 거침없다. 사람은 슬프게도 고양이를 닮지 못해 배가 불러도 밥줄에 매달려 욕심이 성실하고, 나아가 밥줄이 삶을 쥐고 흔들어 행동거지를 사린다. 고양이는 여전히 남은 밥과 밥을 내준 사람한테 미련이 없었고, 유일한 관심사는 촘촘한 털을 부드럽게 훑는 해풍이었다.

 

 

동백섬은 삼 면이 바다와 면하고 한 면이 땅과 이어진 육계도다.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주요 식생이다. 동백나무는 10월부터 4월까지 꽃을 피우는데 철을 맞춰 가지 않아 소나무와 더불어 푸른빛만 무성했다. 섬 가장자리에 둘린 산책로를 따르면 시야에 숲과 바다가 번갈아 걸려 어디에 주저앉아도 풀이며 물이며 가깝다. 엉덩이를 붙이니 동백섬의 경치 대신 어머니의 어설픈 똥머리가 눈에 찼다. 긴 머리카락을 반으로 접어 동여맸는데 묶은 자리가 헐거워 끈은 금방 사라질 듯하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쳐 혼란했다. 똥머리를 단단하게 묶는 법을 시범하자 어머니의 손이 머리께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어머니의 어설픈 똥머리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은 탓에 한참이 지나서야 그 형상과 구체성을 깨달았다. 사람을 안다 말하는 건 무지가 낳은 속단이다. 어머니의 어설픈 똥머리를 보며 어머니의 지워진 부분에 관해 생각했다.

 

 

수영구와 인접한 해운대구 바닷가에선 업체들이 요트 관광업을 벌인다. 수영구에 위치한 광안대교를 보기 용이해서다. 업체 수가 어림잡아 50을 넘고, 업체마다 요트를 보유해 선착장이 배와 부표로 빼곡하다. 요트는 해운대구 선착장에서 출발해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물을 가르며 나아가다, 광안대교가 보이는 지점에 일정 시간 머무르고 선착장으로 돌아간다. 코스를 마치는 데 1시간이 소요된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요트 위에서 낮바다, 노을바다, 밤바다를 모두 볼 수 있는 7시 배표가 가장 인기다. 손에 쥔 게 8시 배표라 육지에서 낮바다, 노을바다, 밤바다를 건너다봤다. 해가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면서 붉은빛의 영역과 농담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다양한 색감이 비정형적으로 어울린 덕에 해 질 녘 아름다움은 풍부하다. 고개 숙여 돌바닥을 보고는 발붙이고 사는 곳이 해 질 녘을 닮길 바랐다. 다양한 존재가, 비정형적으로 어울려, 그래서 풍부한. 경치에 매료된 육지 사람들이 선착장에 삼삼오오 자리를 틀었다.

 

 

여느 관광객처럼 부산 엽서와 자석을 손에 쥐고 돌아왔다. 냉장고 표면에 엽서를 얹고 자석을 포갰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엽서와 자석이 몸을 부비며 쓱싹이는 마찰음을 낸다. 엽서가 냉장고 표면 한켠을 차지하듯 여행 장면이 머릿속 여백을 줄이고, 쓱싹이는 소리를 닮은 자극이 획일적인 패턴에 미세한 균열을 낸다. 사소한 변화가 반갑다. 지인 추천으로 찾은 북카페의 여행 코너 소개 문구가 생각난다. “여행: 행복할 결심”. 삶이 행복의 반대 방향으로 흘러 견디기 어렵다면 저마다의 바다를 여행해 보면 어떨까. 사소한 변화를 마주할 수 있을 거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